일러두기
저본에 관하여
이 책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을 독일어 원전에서 직접 옮긴 완역본입니다. 영어 번역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소설은 1774년 가을 라이프치히에서 지은이 이름 없이 처음 나왔고, 괴테는 열세 해 뒤인 1787년 『괴테 저작집』 제1권에 넣으며 제1부 끝과 제2부를 손보고 엮은이의 보고 상당 부분을 새로 썼습니다. 농군 머슴 이야기가 비극으로 이어지는 줄기도 이때 더해졌습니다. 이 책은 오늘날 표준으로 읽히는 이 1787년 개정판을 옮겼습니다. 함부르크판 괴테 전집 제6권의 본문을 옮겨 적은 퍼블릭도메인 독일어 전자 텍스트를 저본으로 삼았습니다.
엮은이의 머리말, 제1부, 제2부, 「엮은이가 독자에게」까지 원문 436문단을 한 문단도 합치거나 쪼개지 않고 옮겼습니다. 편지마다 붙은 날짜도 한 줄짜리 문단으로 그대로 두었습니다.
저본에서 바로잡은 것
- 저본 전자 텍스트에는 책 맨 앞 엮은이의 머리말 두 문단이 빠져 있습니다. 1787년판 본문으로 채워 넣었습니다.
- 전자 텍스트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한 줄이 통째로 빠진 자리(제1부 무도회 날 뇌우 장면, 제2부 두 곳, 「셀마의 노래」의 한 행)와 글자가 뒤바뀐 낱말 스무 곳 남짓은 앞뒤 뜻과 1787년판 본문에 따라 바로 읽어 옮겼습니다. 1854년에 나온 보일런(R. D. Boylan)의 영역본을 확인용으로만 대조했고, 그 문장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 제2부 오시안 편지의 날짜는 저본에 바로 앞 편지와 같은 「10월 10일」로 찍혀 있으나, 1787년판과 보일런 영역을 따라 「10월 12일」로 적었습니다.
- 1787년판에 있는 엮은이의 짧은 각주 몇 개는 저본에 없어 넣지 않았습니다. 원문이 일부러 지운 이름과 지명은 「……」와 「***」로, 머리글자만 밝힌 이름은 「B 양」, 「C 백작」처럼 적었습니다.
두 목소리
이 소설에는 목소리가 둘입니다. 하나는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거의 날마다 써 보낸 편지입니다. 감탄과 물음이 쏟아지고 문장은 숨 가쁘게 길다가 갑자기 끊깁니다. 그 호흡을 살리려고 긴 문장을 토막 내지 않았고, 원문에 있는 감탄은 다 살리되 없는 감정의 말은 하나도 보태지 않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편지를 모아 엮은 엮은이의 목소리입니다. 머리말에서 처음 들리고, 제2부가 끝난 뒤 「엮은이가 독자에게」에서 베르테르의 마지막 나날을 침착하게 보고합니다. 엮은이의 문장은 해라체 과거형으로 담담하게 옮겼고, 그 사이에 끼운 베르테르의 편지와 쪽지는 곧바로 편지의 말투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어미가 바뀌는 그 순간이 이 책의 짜임입니다.
베르테르가 로테 앞에서 읽는 「셀마의 노래」는 괴테가 직접 독일어로 옮긴 오시안의 시입니다. 이 대목은 원문의 대구와 호격, 되풀이를 지키며 운율 있는 말로 옮겼습니다.
말투에 관하여
- 베르테르와 빌헬름은 허물없는 동무 사이라 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로 옮겼습니다. 옛 번역에서 흔히 쓰던 하게체(「자네」, 「-네」)는 나이와 위계를 덧씌우므로 쓰지 않았습니다.
- 베르테르와 로테는 원문에서 끝까지 서로 Sie로 부릅니다. 그래서 둘의 대화와 편지는 해요체로 옮겼습니다. 그러다 베르테르가 죽기 전에 쓴 마지막 편지에서 처음으로 로테를 du라고 부릅니다. 이 전환을 살리려고 마지막 편지만 반말과 「당신」으로 옮겼습니다. 해요체에서 반말로 넘어가는 그 자리가 이 책의 마지막 고비입니다.
- 알베르트는 약혼 시절 로테에게 Sie를, 결혼한 뒤에는 du를 씁니다. 앞은 해요체로, 뒤는 반말로 옮겼습니다.
- 로테의 아버지 Amtmann은 제후 영지의 한 관할을 맡아 행정과 재판을 보는 관리여서 「법무관」으로 옮겼습니다. 로테의 어린 동생들이 부르는 Lottchen은 우리말 관습에 따라 「로테 언니」, 「로테 누나」로 옮겼습니다.
그 밖의 것
- 옮긴이 주는 달지 않았습니다. 낯선 이름과 작품은 본문 안에서 풀어 읽히게 했습니다.
- 편지의 날짜는 「1771년 5월 4일」, 「5월 10일」처럼 적었고, 나이와 사람 수는 「열한 살」, 「아홉 남매」처럼 한글로, 돈은 「25두카텐」처럼 아라비아 숫자로 적었습니다.
- 원문의 줄표는 쓰지 않고 문장을 나누거나 쉼표로 이었으며, 생각이 멎거나 말이 끊긴 자리만 말줄임표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