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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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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1771년 10월 20일

어제 이곳에 도착했다. 공사는 몸이 좋지 않아 며칠 방에 틀어박혀 있을 모양이야. 그 사람이 그렇게 무뚝뚝하지만 않다면 다 괜찮을 텐데. 느껴져, 느껴져. 운명이 내게 혹독한 시련을 마련해 둔 모양이야. 그래도 기운을 내자! 마음이 가벼우면 무엇이든 견딘다! 마음이 가벼우면? 이 말이 펜 끝에 떠오르다니 웃음이 나는군. 아, 피가 조금만 더 가볍게 돌았더라면 나는 이 하늘 아래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뭐라고! 다른 사람들은 쥐꼬리만 한 힘과 재주를 가지고도 내 앞에서 흐뭇하게 우쭐대며 큰소리를 치고 다니는데, 나는 내 힘과 재능을 두고 절망한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을 내게 주신 선하신 하느님, 어째서 그 절반을 거두시고 그 대신 자신감과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참자! 참자! 나아질 거야. 친구야, 네 말이 옳아. 날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이리저리 떠밀리며 그들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게 된 뒤로, 나는 나 자신과 훨씬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 우리는 어차피 모든 것을 자기와 견주고 자기를 모든 것과 견주도록 생겨 먹었으니, 행복이든 불행이든 우리가 무엇과 어울려 지내느냐에 달려 있게 마련이고, 그러니 고독만큼 위험한 것도 없지. 우리의 상상력은 본디 높이 날아오르려 들고 시가 그려 내는 환상의 그림을 먹고 자라서, 저 위로 존재들의 사다리를 쌓아 올린다. 그 맨 밑바닥에 우리가 있고, 우리 밖의 모든 것은 더 찬란해 보이고, 다른 사람은 하나같이 더 완전해 보이지.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는 무언가가 모자라다는 것을 자주 느끼는데, 바로 우리에게 없는 그것을 다른 누군가는 가진 것처럼 보이곤 해.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까지 모두 그 사람에게 얹어 주고, 거기에 어떤 이상화된 흐뭇함까지 덤으로 보태 준다. 그렇게 해서 행복한 사람 하나가 완벽하게 다 만들어지는 거야. 우리 자신이 빚어낸 피조물 말이야.

반대로 우리가 온갖 나약함과 고달픔을 안은 채로 그저 묵묵히 일해 나가다 보면, 어슬렁거리고 갈지자로 배를 몰면서도 돛을 올리고 노를 젓는 남들보다 더 멀리 나아갔다는 것을 꽤 자주 알게 되지. 그러니까…… 남과 나란히 가거나 오히려 앞질러 달릴 때 느끼는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자기 자신을 느끼는 일이야.

11월 26일

이곳 생활이 그럭저럭 견딜 만해지기 시작했어. 무엇보다 좋은 건 할 일이 넉넉하다는 거고, 그다음으로는 온갖 사람들, 갖가지 새로운 얼굴들이 내 영혼 앞에 알록달록한 연극을 펼쳐 보여 준다는 거야. C 백작과 알게 되었는데, 날마다 더 우러르게 되는 사람이야. 머리가 넓고 큰 사람이고, 많은 것을 두루 내다보기 때문에 오히려 차갑지 않은 사람이며, 함께 지내다 보면 우정과 사랑을 아는 감정이 그토록 환하게 배어 나오는 사람이야. 업무로 심부름을 가서 일을 전했을 때, 백작은 첫마디부터 우리가 서로 통한다는 것을, 나하고는 아무하고나 하듯 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나에게 마음을 써 주었어. 나를 대하는 그 툭 터놓은 태도는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란데, 위대한 영혼이 자기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는 걸 보는 것만큼 참되고 따뜻한 기쁨은 이 세상에 없어.

12월 24일

공사 때문에 속상한 일이 많아. 미리 짐작했던 대로야. 그 사람은 세상에 다시없을 만큼 꼼꼼한 바보야. 한 걸음 한 걸음 늙은 아주머니처럼 시시콜콜하고, 자기 자신에게 한 번도 만족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라 누구도 그의 마음에 들게 해 줄 수가 없어. 나는 일을 가볍게 해치우고 된 것은 된 대로 두는 걸 좋아하는데, 그 사람은 내가 쓴 문서를 도로 내밀면서 서슴없이 이렇게 말하고도 남을 위인이야. "좋소. 그래도 다시 한번 훑어보시오. 언제든 더 나은 낱말, 더 깔끔한 토씨가 있는 법이오." 그러면 나는 부아가 치밀어 미칠 것 같아. '그리고' 하나, 접속사 하나도 빠뜨려서는 안 되고, 내가 이따금 무심코 쓰는 도치법이라면 원수 보듯 하고, 문장을 늘 해 오던 가락대로 오르간 뽑듯 줄줄 뽑아내지 않으면 그 사람은 거기서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해. 이런 사람과 일을 해야 한다니 고역이야.

C 백작의 신임만이 아직 나를 버티게 해 주는 유일한 보상이야. 얼마 전 백작은 내 공사가 일을 느리게 처리하고 지나치게 머뭇거리는 게 얼마나 못마땅한지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자기도 남도 힘들게 만들지. "그래도 산을 넘어야 하는 나그네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소." 백작이 말했어. "물론 산이 없다면 길이 훨씬 편하고 짧겠지. 하지만 산은 엄연히 거기 있고, 넘어가야 하오!"

내 늙은이도 백작이 자기보다 나를 더 아낀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고, 그게 비위에 거슬려서 기회만 있으면 내 앞에서 백작을 헐뜯는데, 나는 당연히 맞서니 일은 더 꼬일 뿐이야. 어제는 나까지 싸잡아 하는 말이라 기어이 화가 났는데, 백작은 그런 세상일에는 아주 쓸 만하고, 일을 가뿐하게 해치우고 글솜씨도 좋지만, 문필가들이 다 그렇듯 철저한 학식은 모자란다는 거야. 그러면서 "찔리는 데가 있지?" 하고 말하려는 듯한 얼굴을 했어. 하지만 내게는 먹혀들지 않았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처신할 수 있는 인간을 나는 경멸했으니까. 나는 물러서지 않고 꽤 격하게 맞섰어. 백작은 인품에서나 학식에서나 존경해야 마땅한 분이라고 했지. "저는 자기 정신을 넓혀 수없이 많은 대상에 두루 펼치면서도 일상의 삶을 위한 활동을 그대로 지켜 낸 사람을 그분 말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말했어. 그건 그 꽉 막힌 머리로는 알아듣지 못할 딴 나라 말이었고, 나는 엉터리 소리를 더 듣다가 속을 더 끓이지 않으려고 서둘러 인사를 하고 물러 나왔어.

그리고 이게 다 너희 탓이야. 나를 꼬드겨 이 멍에를 씌우고 활동이니 뭐니 하는 노래를 그토록 불러 대던 너희 말이야. 활동이라니! 감자를 심고 곡식을 팔러 말을 타고 시내로 가는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 사슬로 묶여 있는 이 노예선에서 십 년은 더 노를 저어도 좋아.

그리고 여기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고약한 족속들의 번지르르한 비참함과 따분함이란! 서로 한 발짝이라도 앞서려고 눈을 부릅뜨고 엿보는 그 자리다툼, 걸칠 옷 한 자락 없이 맨몸을 드러낸 더없이 비참하고 한심한 정열들! 예를 들어 여기 어떤 여자가 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자기 가문과 자기 고장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낯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 저 여자는 쥐꼬리만 한 귀족 혈통과 자기 고장의 이름을 두고 대단한 공상을 품고 사는 바보로구나. 그런데 그보다 훨씬 고약한 게 있어. 바로 그 여자가 이 근처 관아 서기의 딸이라는 거야. 봐, 나는 그토록 분별이 없어서 그렇게 천박하게 제 꼴을 드러내 웃음거리가 되는 인간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물론 날이 갈수록 깨닫는 건데, 친구야, 남을 자기 잣대로 재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그리고 나는 나 자신만으로도 감당할 일이 너무 많고 이 가슴이 이토록 사나우니…… 아, 남들이 저마다 제 길을 가도록 기꺼이 내버려 두겠어. 그 사람들도 나를 내 길로 가게 내버려 둘 수만 있다면.

나를 가장 약 올리는 건 그 고약한 신분 관계야. 물론 신분의 차이가 얼마나 필요한지, 그 덕에 나 자신도 얼마나 많은 이득을 보는지 나도 누구 못지않게 잘 알지만, 다만 내가 이 땅에서 아직 조금이나마 기쁨을, 행복의 희미한 빛을 누릴 수 있을 바로 그 자리에서 내 앞길을 가로막지만 말았으면 좋겠어. 얼마 전 산책길에서 B 양을 알게 되었어. 이 딱딱한 생활 한가운데서도 꾸밈없는 자연을 아주 많이 간직한 사랑스러운 아가씨야.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마음에 들었고, 헤어질 때 나는 찾아가 뵈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청했는데, 아가씨가 어찌나 스스럼없이 허락해 주던지 나는 찾아가도 될 만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기 힘들 지경이었어. 아가씨는 이곳 사람이 아니고 숙모 댁에서 지내. 그 노부인의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나는 노부인에게 아주 정성을 기울였고 말도 대부분 그쪽으로 건넸는데, 반 시간도 안 되어 나중에 아가씨가 직접 털어놓은 것을 거의 다 알아챘어. 그 다정한 숙모님은 그 나이가 되도록 모든 게 모자라서, 체면을 차릴 만한 재산도 없고 재치도 없고, 기댈 것이라고는 조상들의 줄밖에 없고, 몸을 가릴 방패라고는 말뚝 울타리처럼 둘러친 신분밖에 없고, 즐거움이라고는 자기가 사는 높은 층에서 시민들의 머리 너머로 내려다보는 것밖에 없다는 거야. 젊었을 때는 예뻤다고 하는데, 평생을 들떠 놀며 보내면서 처음에는 제멋대로 굴어 숱한 가난한 젊은이를 괴롭혔고, 나이가 좀 든 뒤에는 늙은 장교에게 고분고분 몸을 굽혔대. 그 장교는 그 대가와 그럭저럭한 생활비를 받고 노부인과 함께 청동의 시대를 보내다가 죽었다는 거야. 이제 노부인은 철의 시대에 홀로 남았고, 조카딸이 그토록 사랑스럽지 않다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거야.

1772년 1월 8일

온 영혼이 의례에만 매달려 있고, 몇 해 동안이나 어떻게 하면 식탁에서 한 자리라도 더 위로 비집고 올라앉을까 하는 데만 궁리와 애를 쏟는 이런 사람들이란 대체 뭘까! 그렇다고 그 사람들에게 달리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야. 아니, 오히려 일은 쌓여만 가. 바로 그런 자잘한 언짢은 일들에 매달리느라 중요한 일을 처리하지 못하니까. 지난주에는 썰매 놀이에서 자리를 두고 다툼이 벌어져 모처럼의 재미가 다 망가졌어.

자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첫자리에 앉은 사람이 첫째 노릇을 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는 걸 못 보는 바보들! 얼마나 많은 왕이 대신에게 휘둘리고, 얼마나 많은 대신이 비서에게 휘둘리는가! 그렇다면 누가 첫째일까? 내 생각에는 바로 다른 사람들을 두루 꿰뚫어 보고, 그들의 힘과 정열을 자기 계획을 이루는 데 마음대로 부릴 만한 권세나 꾀를 지닌 사람이야.

1월 20일

다정한 로테, 편지를 써야겠어요. 사나운 날씨를 피해 들어온 허름한 시골 주막의 방 안에서요. 그 쓸쓸한 소굴 D에서, 낯설고 내 마음에는 더없이 낯선 사람들 틈을 헤매고 다니는 동안에는 한순간도, 단 한순간도 마음이 로테에게 편지를 쓰라고 이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 오두막에서, 이 고독 속에서, 이 좁은 테두리 안에서, 눈과 우박이 내 작은 창문에 미친 듯이 몰아치는 이곳에서 맨 먼저 떠오른 건 로테였어요. 들어서는 순간 로테의 모습이, 로테의 기억이 나를 덮쳤어요. 오, 로테! 그토록 거룩하게, 그토록 따뜻하게! 선하신 하느님! 다시 찾아온 첫 행복한 순간이에요.

소중한 로테, 정신없이 흩어지는 이 소용돌이 속에 있는 나를 보신다면! 내 감각이 얼마나 메말라 가는지!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순간은 한 번도, 더없이 행복한 시간은 단 한 시간도 없어요! 아무것도! 아무것도요! 나는 요지경 상자 앞에 선 것처럼 작은 사람들과 작은 말들이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바라보며, 이게 눈속임이 아닌가 하고 자주 스스로 물어요. 나도 함께 놀아요. 아니, 꼭두각시처럼 남의 손에 놀아나지요. 그러다 이따금 옆 사람의 나무 손을 잡고는 몸서리치며 물러나요. 저녁이면 내일은 해돋이를 즐기겠다고 마음먹지만 아침에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고, 낮에는 밤에 달빛을 즐기겠다고 기대하지만 방에 틀어박혀 있어요. 내가 왜 일어나는지, 왜 자러 가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내 삶을 부풀어 오르게 하던 누룩이 없어요. 깊은 밤에도 나를 깨어 있게 하던 그 설렘은 가 버렸고, 아침이면 나를 잠에서 깨우던 그것도 사라지고 없어요.

여기서 여자다운 사람이라고는 딱 한 사람을 찾았어요. B 양이라는 아가씨인데, 다정한 로테, 로테를 닮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아가씨가 로테를 닮았어요. "어머나!" 로테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이 사람이 이제 간드러진 인사치레까지 늘어놓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얼마 전부터 나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어서 아주 상냥하게 굴고 재치도 많이 부리는데, 여자들은 나만큼 섬세하게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해요(그리고 거짓말도 그렇다고 로테는 덧붙이겠지요. 그게 없으면 안 되니까요, 아시겠어요?). B 양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어요. 그 아가씨는 영혼이 풍부해서, 그 영혼이 파란 눈에서 넘쳐 나와요. 아가씨에게는 신분이 짐이에요. 마음속 소원을 하나도 채워 주지 못하니까요. 아가씨는 이 소란에서 벗어나기를 그리워하고, 우리는 티 없는 행복이 가득한 시골 풍경을 그리며 공상으로 여러 시간을 보내요. 아! 그리고 로테 이야기로도요! 아가씨는 얼마나 자주 로테를 우러러 칭송해야 하는지 몰라요. 아니, 해야 해서가 아니라 제 마음에서 우러나 그래요. 로테 이야기를 그렇게 즐겨 듣고, 로테를 사랑해요. 오, 그 정답고 아늑한 방에서 로테의 발치에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우리 귀여운 꼬마들이 내 둘레에서 뒤엉켜 뒹굴고, 그 애들이 로테에게 너무 시끄러워지면 으스스한 옛이야기로 그 애들을 내 곁에 불러 모아 얌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해가 눈부신 눈 덮인 들판 위로 장엄하게 지고, 폭풍은 건너가 버렸고, 나는…… 다시 내 새장에 나를 가둬야 해요. 잘 있어요! 알베르트는 로테 곁에 있나요? 그리고 어떻게……? 이런 걸 묻다니, 하느님께서 나를 용서하시기를!

2월 8일

여드레째 날씨가 더없이 고약한데 나한테는 그게 오히려 고마워, 여기 온 뒤로 하늘에 고운 날이 하루라도 떴다 하면 그날은 누군가가 꼭 망쳐 놓거나 정떨어지게 만들어 버렸거든. 그런데 비가 제대로 퍼붓고 눈보라가 치고 으슬으슬 얼었다가 녹기라도 하면, 하! 나는 생각해. 안이 밖보다 더 나쁠 수는 없겠지, 아니면 그 반대거나, 그러니 잘됐어. 아침에 해가 떠올라 맑은 하루를 약속하면 나는 이렇게 외치지 않고는 못 배겨. 저것 봐, 저 사람들이 서로 빼앗아 갈 하늘의 선물이 또 하나 생겼구나! 그 사람들이 서로 빼앗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어. 건강, 좋은 이름, 즐거움, 휴식! 그것도 대개는 어리석음과 몰이해와 좁은 속 때문이고, 그 사람들 말을 들어 보면 더없이 좋은 뜻에서 그런다는 거야. 이따금 나는 무릎을 꿇고서라도 그 사람들에게 빌고 싶어. 제 창자를 그렇게 미친 듯이 물어뜯지 말라고.

2월 17일

아무래도 공사와 나는 이제 오래 함께 버티지 못할 것 같아. 그 사람은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어. 일하고 업무를 보는 꼴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나는 참지 못하고 대들게 되고, 종종 내 생각과 내 뜻대로 일을 처리하는데, 그게 그 사람 마음에 들 리가 없지. 그래서 얼마 전 그가 궁정에 나를 고자질했고, 대신은 내게 견책을 내렸어. 부드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견책은 견책이었지. 그 일로 사직을 청하려던 참이었는데, 바로 그때 대신이 손수 쓴 편지 한 통을 받았고, 나는 그 편지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높고 고귀하고 지혜로운 뜻을 우러러 받들었어. 대신은 나의 지나친 예민함을 얼마나 너그럽게 바로잡아 주는지! 일의 효과니 남에게 미치는 영향이니 업무를 밀고 나가는 힘이니 하는 내 들뜬 생각을 젊은이다운 좋은 패기라고 인정해 주면서도, 그것을 뿌리 뽑으려 하지 않고 다만 누그러뜨려서, 그 생각들이 제대로 자리를 찾아 힘 있게 쓰일 수 있는 곳으로 이끌어 주려 하는지! 덕분에 나는 여드레 동안 힘이 나고 마음이 하나로 모였어. 영혼의 평온이란,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얻는 기쁨이란 참 근사한 거야. 친구야, 그 보물이 아름답고 귀한 만큼 깨지기 쉽지만 않다면 좋으련만.

2월 20일

하느님께서 두 사람을 축복하시고, 나한테서 거두어 가시는 좋은 날들을 모두 두 사람에게 주시기를, 나의 다정한 사람들!

고마워, 알베르트, 나를 속여 줘서. 나는 두 사람의 결혼식 날이 언제인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바로 그날 엄숙하게 벽에서 로테의 실루엣을 떼어 다른 서류들 밑에 묻어 버리려고 마음먹고 있었어. 그런데 두 사람은 이미 부부가 되었고, 로테의 그림은 아직 여기 걸려 있어! 그래, 그럼 그대로 두자! 안 될 게 뭐야? 나도 알아. 나도 두 사람 곁에 있고, 너한테 해가 되지 않게 로테의 마음속에 있다는 걸. 나는, 그래, 나는 그 마음속에 둘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자리를 지키고 싶고 지켜야 해. 오, 로테가 잊을 수 있다면 나는 미쳐 버릴 거야…… 알베르트, 그 생각 속에는 지옥이 있어. 알베르트, 잘 있어! 잘 있어, 하늘의 천사! 잘 있어, 로테!

3월 15일

언짢은 일을 겪었는데, 그 일로 나는 여기서 쫓겨나게 될 거야. 이가 갈려! 빌어먹을! 돌이킬 수가 없는 일이야. 그리고 이건 다 너희 탓이야.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자리에 들어가라고 나를 다그치고 몰아대고 들볶은 너희 말이야. 이제 꼴좋게 됐어! 너희도 꼴좋게 됐고! 내 들뜬 생각이 모든 걸 망친다고 네가 또 말하지 못하게, 친구 양반, 여기 연대기 쓰는 사람이 적어 둘 법하게 꾸밈없고 깔끔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게.

C 백작이 나를 아끼고 남달리 대해 준다는 건 다 아는 일이고, 너한테도 백 번은 말했지. 그런데 어제 나는 백작 댁에서 식사를 했어. 마침 저녁이면 그 댁에 귀족 신사 숙녀들의 고상한 모임이 열리는 날이었는데, 나는 그 모임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우리 같은 아랫사람은 거기 끼지 못한다는 것도 떠올린 적이 없었어. 좋아. 나는 백작 댁에서 식사를 하고, 식사가 끝나자 우리는 큰 홀을 이리저리 거닐어. 나는 백작과 이야기를 하고, 거기 끼어든 B 대령과도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는 사이 모임 시간이 다가와. 나는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없어. 그때 지나치게 은혜로우신 S 부인이 부군과, 납작한 가슴에 앙증맞은 코르셋을 조인, 잘 품어 깐 거위 새끼 같은 따님을 데리고 홀 안으로 들어와. 그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늘 하던 대로 고귀하신 귀족의 눈과 콧구멍을 해 보이고, 나는 그 족속이 진심으로 싫었기 때문에 막 인사를 하고 물러나려고 백작이 그 지긋지긋한 수다에서 풀려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나의 B 양이 들어왔어. 그 아가씨를 보면 늘 마음이 조금 열리기 때문에 나는 그대로 남아 아가씨의 의자 뒤에 섰고, 한참 지나서야 아가씨가 여느 때보다 덜 터놓고 조금 난처해하며 나와 이야기한다는 걸 알아챘어. 그게 마음에 걸렸어. 이 아가씨도 저 족속들과 똑같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해서 가 버리려 했지만, 그래도 남았어. 아가씨를 감싸 주고 싶었고, 아가씨가 그렇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고, 아가씨에게서 다정한 말 한마디를 아직 기대했고, 그리고…… 네 마음대로 생각해. 그사이 모임은 사람들로 꽉 찼어. 프란츠 1세의 대관식 때부터 내려온 옷가지를 몽땅 걸친 F 남작, 여기서는 체면상 R 씨라고 불리는 R 궁정 고문관과 그 귀먹은 부인 등등, 그리고 낡아 빠진 옛날 옷의 구멍을 새 유행 헝겊으로 기워 입은, 차림새가 엉망인 J도 빼놓을 수 없지. 그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나는 아는 사람 몇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다들 말이 아주 짧아.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의 B 양에게만 신경을 썼어. 홀 끝에서 여자들이 서로 귓속말을 하고, 그게 남자들에게로 돌고, S 부인이 백작과 이야기하는 걸 나는 눈치채지 못했어(이건 다 나중에 B 양이 이야기해 주었어). 그러다 마침내 백작이 내게로 다가와 나를 창가로 데려갔어. "우리네 묘한 사정은 잘 아시지 않소." 백작이 말했어. "보아하니 모임 사람들이 여기서 마주치는 걸 언짢아하는 것 같소. 나로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각하." 내가 말을 막았어. "천 번 만 번 용서를 빕니다. 진작 그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각하께서 저의 이 앞뒤 없는 짓을 용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까부터 물러가려 했는데 못된 귀신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그렇게 덧붙였어. 백작은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감정을 담아 내 두 손을 꼭 쥐었어. 나는 그 고귀한 모임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이륜마차를 타고 M으로 갔어, 거기 언덕에서 해 지는 걸 보며 내 호메로스에서 오디세우스가 훌륭한 돼지치기에게 대접받는 그 멋진 노래를 읽으려고. 그건 다 좋았어.

저녁에 식사하러 여관에 돌아왔더니 식당에는 아직 사람이 몇 없었고, 그 몇 사람은 한쪽 구석에서 식탁보를 걷어 젖혀 놓고 주사위를 굴리고 있었지. 그때 정직한 아델린이 들어와 나를 보며 모자를 내려놓더니, 내게 다가와 나직이 말했어. "언짢은 일이 있었다며?" "내가?" 내가 말했어. "백작이 모임에서 너를 내보냈다던데." "그 사람들 다 악마가 잡아가라지!" 내가 말했어. "나야 바깥 공기를 쐬게 되어 좋았어." "다행이네, 네가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니." 아델린이 말했어. "다만 속상한 건 벌써 소문이 쫙 퍼졌다는 거야." 그제야 그 일이 슬슬 나를 갉아먹기 시작해서, 식사하러 와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마다, 저 사람들이 그 일 때문에 너를 보는 거야, 하고 생각했지. 그러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어.

그런데 오늘은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나를 동정하고, 나를 시샘하던 자들이 이제 의기양양해서 떠든다는 소리까지 들리는데, 그것 봐라, 쥐꼬리만 한 머리를 믿고 우쭐대며 그 때문에 온갖 신분 관계를 뛰어넘어도 된다고 믿는 건방진 녀석들의 끝이 저렇다니까, 하면서 개 짖는 소리 같은 수다를 늘어놓는다니, 이럴 땐 칼로 가슴을 찔러 버리고 싶어. 자립이니 뭐니 아무리 떠들어도 좋아. 악당들이 자기를 두고 떠들어 대는 걸, 그것도 그놈들이 자기보다 유리한 처지에 있을 때 꾹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 한번 보고 싶어. 그놈들의 수다가 빈말일 때라면야, 아, 그때는 쉽게 내버려 둘 수 있지.

3월 16일

모든 게 나를 몰아대. 오늘 가로수 길에서 B 양을 만났는데, 나는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고, 일행에게서 조금 떨어지자마자 지난번 아가씨의 태도에 내가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내보였어. "아, 베르테르." 아가씨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어. "제 마음을 아시면서 제가 당황한 걸 그렇게 받아들이실 수 있었어요? 홀에 들어선 순간부터 베르테르 씨 때문에 제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저는 다 내다보고 있었어요. 말씀드리려고 백 번도 넘게 혀끝까지 올라왔어요. S 부인과 T 부인이 남편들과 함께 베르테르 씨와 한자리에 있느니 차라리 먼저 일어나리라는 걸 알았고, 백작님이 그분들과 사이가 틀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이런 소동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아가씨?" 나는 놀란 마음을 감추며 말했어. 그저께 아델린이 해 준 말이 모두 그 순간 끓는 물처럼 내 핏줄을 타고 흘렀거든. "그 일로 제가 벌써 얼마나 치렀는지 몰라요!" 그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눈에 눈물을 머금고 말했어. 나는 더는 나 자신을 다스릴 수 없어서 하마터면 아가씨 발밑에 몸을 던질 뻔했어. "속 시원히 말해 주세요!" 내가 외쳤어. 눈물이 아가씨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어. 나는 넋이 나갔어. 아가씨는 눈물을 감추려 하지도 않고 닦아 냈어. "제 숙모님을 아시지요." 아가씨가 말을 꺼냈어. "숙모님이 그 자리에 계셨는데…… 아, 그걸 어떤 눈으로 보셨는지! 베르테르, 저는 어젯밤 시달렸고 오늘 아침에는 베르테르 씨와 어울린다고 설교를 들었어요. 숙모님이 베르테르 씨를 깎아내리고 업신여기는 걸 듣고만 있어야 했고, 반밖에 변호해 드리지 못했어요. 그럴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으니까요." 아가씨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칼처럼 내 가슴을 꿰뚫었어. 그걸 모두 내게 말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자비로운 일이었을지 아가씨는 느끼지 못한 채, 앞으로 무슨 말이 더 나돌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그 일로 얼마나 의기양양해할지까지 덧붙였어.

내 건방짐과, 그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나를 두고 탓해 온 남 깔보는 태도가 이제 드디어 벌을 받았다며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고소해하고 기뻐할지까지. 빌헬름, 그 모든 말을 그 아가씨에게서, 더없이 참된 동정이 담긴 목소리로 들어야 했다니! 나는 무너졌고 지금도 속으로 분이 치밀어. 누가 감히 그 일로 나를 나무라기라도 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그놈 몸에 칼을 꽂아 줄 수 있을 텐데. 피를 보면 속이 좀 풀릴 것 같아. 아, 이 답답한 가슴에 숨통을 틔워 주려고 나는 백 번도 넘게 칼을 집어 들었어. 듣자니 어떤 고귀한 혈통의 말은 몹시 달아오르고 쫓기면 본능적으로 제 핏줄을 물어뜯어 숨을 돌린다고 해. 나도 자주 그런 기분이야. 나에게 영원한 자유를 안겨 줄 핏줄 하나를 열고 싶어.

3월 24일

궁정에 사직을 청했어. 받아들여지리라 믿어. 미리 너희 허락을 받지 않은 걸 너희는 용서해 주겠지. 나는 어쨌든 떠나야 했어. 나를 붙잡으려고 너희가 할 말이 무엇이었을지 다 알아. 그러니까…… 이 일을 어머니께 달콤한 물약에 타서 드리듯 살살 전해 드려. 나는 나 자신도 어쩌지 못하니, 어머니를 도와 드리지 못하더라도 어머니께서 그냥 받아들이셔야지. 물론 마음이 아프시겠지. 자기 아들이 추밀 고문관과 공사를 향해 막 내딛던 멋진 길이 한순간에 멈춰 서고, 그 작은 짐승을 끌고 도로 마구간으로 돌아가는 꼴을 보셔야 하니! 너희 좋을 대로 생각해. 내가 남을 수 있었고 남아야 했던 경우를 이리저리 따져 봐. 어쨌든 나는 가. 그리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게 말해 두자면, 여기 ** 제후가 계시는데, 내 곁에 있는 걸 무척 즐거워하시는 분이라, 내가 그만둘 생각이라는 걸 들으시고는 함께 영지로 가서 아름다운 봄을 거기서 보내자고 청하셨어. 나를 아주 내 뜻대로 지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서로 통하니, 운에 맡기고 따라가 볼 생각이야.

알림

4월 19일

편지 두 통 고마워. 답장을 하지 않은 건 궁정에서 사직 허가가 나올 때까지 이 편지를 부치지 않고 놓아두었기 때문인데, 어머니가 대신께 부탁해서 내 계획을 어렵게 만드실까 걱정했거든. 이제는 다 끝났어. 사직이 허락되었어. 사람들이 얼마나 마지못해 허락했는지, 대신이 내게 무어라 써 보냈는지는 너희에게 말하지 않을래, 들으면 너희가 또 새로 한탄을 늘어놓을 테니까. 세자께서 작별 선물로 25두카텐을 보내 주셨는데, 곁들인 말씀에 나는 눈물이 날 만큼 감동했어. 그러니 얼마 전 편지에 썼던 그 돈은 어머니께 받지 않아도 돼.

5월 5일

내일 여기를 떠나는데, 내가 태어난 곳이 가는 길에서 6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 그곳도 다시 보고, 꿈결처럼 행복했던 옛날을 되새겨 보려고 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그 정답고 아늑한 곳을 떠나 견딜 수 없는 그 도시에 틀어박히러 가실 때 나를 데리고 수레를 타고 빠져나갔던 바로 그 성문으로 걸어 들어가려고 해. 잘 있어, 빌헬름. 내 여행 이야기를 들려줄게.

5월 9일

나는 순례자다운 경건한 마음을 다해 고향 순례를 마쳤고, 그사이 뜻밖의 느낌들이 여러 번 나를 사로잡았어. 시내에서 S 쪽으로 걸어서 십오 분쯤 되는 곳에 서 있는 큰 보리수 앞에서 마차를 세우게 하고 내린 다음, 마부에게는 먼저 가라고 일렀는데, 걸어가면서 모든 추억을 하나하나 아주 새롭고 생생하게,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맛보고 싶었거든. 그렇게 나는 그 보리수 아래 섰어. 어린 시절 내 산책의 목표이자 끝이던 그 보리수 아래.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때 나는 행복하게도 아무것도 모른 채, 내 마음을 먹일 양식과 그토록 많은 즐거움을 찾아 무언가를 향해 애쓰고 그리워하는 내 가슴을 채우고 달래 주리라 기대하며 낯선 세상으로 나가기를 그리워했어. 이제 나는 넓은 세상에서 돌아와. 오, 친구야, 얼마나 많은 어그러진 희망을 안고, 얼마나 많은 무너진 계획을 안고! 내 앞에 산줄기가 펼쳐져 있었어. 천 번도 넘게 내 소망이 머물던 산들이야. 몇 시간이고 여기 앉아 저 너머를 그리워하며, 그토록 다정하게 어스름 속에 눈앞에 펼쳐지던 숲과 골짜기에 온 영혼을 쏟아 나를 잃어버리곤 했지. 그러다 정해진 시간이 되어 돌아가야 할 때면 얼마나 마지못해 그 정다운 자리를 떠났던지! 시내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낯익은 옛 정원 오두막들에 하나하나 인사를 건넸고, 새로 생긴 것들은 눈에 거슬렸고, 사람들이 그 밖에 바꿔 놓은 것들도 다 그랬어. 성문으로 들어서자 나는 곧바로, 그리고 온전히 옛 나를 되찾았어. 친구야,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래. 나에게는 그토록 마음 설레는 일이었지만, 이야기로 들으면 그만큼 단조로울 거야. 나는 장터에, 우리 옛집 바로 옆에 묵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리로 가다가 보니 정직한 늙은 아주머니 하나가 어린 우리를 가축처럼 몰아넣고 가르치던 학교 방이 잡화 가게로 바뀌어 있었어. 그 굴속에서 겪었던 불안과 눈물과 멍한 마음과 가슴 졸임이 다 떠올라. 내가 내딛는 걸음마다 뜻깊지 않은 데가 없었어. 성지를 찾은 순례자라도 이렇게 많은 신앙의 추억이 깃든 자리를 만나지는 못할 테고, 그의 영혼도 이만큼 거룩한 감동으로 가득 차지는 못할 거야. 천 가지 가운데 하나만 더 말할게. 나는 강을 따라 어느 농장까지 내려갔는데, 그건 예전에도 내가 다니던 길이고, 그 길가에는 우리 사내아이들이 납작한 돌을 물 위로 몇 번이나 튀길 수 있는지 겨루던 작은 자리들이 있어. 이따금 서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던 때가 그토록 생생하게 떠올랐어. 얼마나 신비로운 예감을 품고 물을 눈으로 따라갔는지, 물이 흘러가는 고장을 얼마나 모험 가득하게 그려 보았는지, 그러다 내 상상력이 얼마나 금세 한계에 부딪혔는지. 그래도 물은 계속 흘러가야 했어. 자꾸만 더 멀리, 마침내 내가 보이지 않는 먼 곳을 바라보는 데 완전히 넋을 잃을 때까지. 봐, 친구야, 그 훌륭한 옛 조상들은 그렇게 좁은 테두리 안에서 그토록 행복했어! 그 감정, 그 시는 그토록 어린아이 같았어! 오디세우스가 헤아릴 수 없는 바다와 끝없는 땅을 이야기할 때, 그건 그토록 참되고 인간적이고 절절하고 좁고 신비로워. 땅이 둥글다는 걸 이제 학교 다니는 아이마다 따라 말하듯 나도 따라 말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게 내게 무슨 소용이야? 사람에게는 그 위에서 누릴 흙덩이 몇 개면 족하고, 그 아래에서 쉴 흙덩이는 그보다 더 적어도 돼. 이제 나는 여기, 제후의 사냥 성에 와 있어. 이 어른과는 아직 그럭저럭 잘 지낼 만해. 참되고 소박한 분이야. 그 둘레에는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묘한 사람들이 있어. 악당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정직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아. 이따금 정직해 보이다가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또 아쉬운 건, 제후가 그저 남에게 듣거나 책에서 읽기만 한 것을, 그것도 다른 사람이 들려준 바로 그 관점 그대로 이야기하는 일이 잦다는 거야. 게다가 제후는 이 마음보다 내 지성과 재능을 더 높이 사. 이 마음이야말로 내 유일한 자랑이고, 모든 것의, 모든 힘과 모든 행복과 모든 비참함의 유일한 샘인데. 아, 내가 아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어. 내 마음은 나만 가졌어.

5월 25일

다 이루기 전에는 너희에게 말하지 않으려던 일이 하나 있었는데, 이제 아무것도 안 되었으니 말해도 마찬가지야. 나는 전쟁에 나가려고 했어.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 온 일이야. 내가 제후를 따라 이리로 온 것도 주로 그 때문이야. 제후는 *** 나라 군대의 장군이거든. 산책하다가 그 계획을 털어놓았더니 제후는 말렸어. 그 이유를 듣고도 따르지 않았다면, 그건 내게 한때의 변덕이 아니라 정열이었다는 뜻이겠지.

6월 11일

네가 뭐라 하든 나는 더는 여기 있을 수 없어. 여기서 내가 무얼 하겠어? 시간이 지루하기만 해. 제후는 더할 나위 없이 나를 잘 대해 주지만, 그래도 나는 내 자리에 있는 것 같지 않은데, 따지고 보면 우리는 서로 통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제후는 분별 있는 사람이지만 아주 흔해 빠진 분별을 지녔을 뿐이라, 그와 어울리는 건 그저 잘 쓴 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조금도 더 즐겁지 않아. 여드레만 더 머물고, 그다음에는 다시 정처 없이 떠돌 거야. 내가 여기서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건 그림 그리기야. 제후는 예술을 느낄 줄 알고, 그 고약한 학문 냄새와 흔해 빠진 용어에 갇혀 있지만 않다면 훨씬 더 깊이 느낄 텐데. 내가 뜨거운 상상력으로 자연과 예술 속을 이리저리 안내하고 있는데, 제후가 갑자기 제대로 해 보겠다며 판에 박힌 전문 용어 하나를 들고 불쑥 끼어들 때면 나는 이따금 이를 갈아.

6월 16일

그래, 나는 그저 나그네, 이 땅 위를 떠도는 순례자일 뿐이야! 그렇다면 너희는 그보다 나은 뭐라도 된단 말이야?

6월 16일

내가 어디로 가려는지? 너한테만 살짝 털어놓을게. 어차피 여기 두 주는 더 있어야 하는데, 그다음에는 *** 지방의 광산을 둘러보고 싶다고 나 자신을 속여 왔어. 그런데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그저 로테 곁으로 다시 가까이 가고 싶을 뿐이야. 그게 다야. 그리고 나는 내 마음을 비웃으면서도…… 그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해 주지.

7월 29일

아니, 이걸로 됐어! 다 잘됐어! 내가…… 로테의 남편이라니! 오, 나를 지으신 하느님, 이 더없는 행복을 저에게 마련해 주셨더라면 제 평생이 끊이지 않는 기도가 되었을 겁니다. 따지지 않겠습니다. 이 눈물을 용서하시고, 저의 부질없는 소망을 용서해 주십시오! 로테가 내 아내라니! 해 아래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을 내 품에 안았더라면! 빌헬름, 알베르트가 로테의 가는 허리를 감싸 안을 때면 온몸에 소름이 끼쳐.

그리고, 말해도 될까? 안 될 게 뭐야, 빌헬름? 로테는 그 사람보다 나와 함께였다면 더 행복했을 거야! 오, 그 사람은 이 마음의 소원을 다 채워 줄 사람이 아니야. 어딘가 감수성이 모자라고, 어딘가 모자라…… 네 좋을 대로 받아들여. 정다운 책의 어느 대목에서 내 마음과 로테의 마음이 하나로 만날 때, 오! 그런 대목에서 그 사람의 마음은 함께 뛰지 않아. 우리가 제삼자의 어떤 행동을 두고 느낌을 털어놓게 되는 수많은 다른 경우에도 그래. 빌헬름, 친구야! 물론 그 사람은 온 영혼으로 로테를 사랑하고, 그런 사랑이라면 무엇인들 받을 자격이 없겠어!

견딜 수 없는 사람 하나가 찾아와 편지를 끊어 놓았어. 눈물은 말라 버렸어. 정신이 흩어졌어. 잘 있어, 친구야!

8월 4일

나만 그런 게 아니야. 모든 사람이 희망에 속고 기대에 배신당해. 보리수 아래 그 착한 아주머니를 찾아갔더니, 맏아들이 나를 보고 뛰어왔고, 그 아이가 기뻐 외치는 소리에 어머니가 나왔는데 몹시 풀이 죽어 보였어. 아주머니의 첫마디는 이랬어. "나리, 아이고, 우리 한스가 죽었어요!" 아주머니의 막내아들이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리고 남편은 스위스에서 돌아왔는데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어요." 아주머니가 말했어. "좋은 분들이 아니었으면 빌어먹으며 돌아와야 했을 거예요. 오는 길에 열병에 걸렸거든요." 나는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어서 어린것에게 뭘 좀 쥐여 주었고, 아주머니가 사과 몇 알을 받아 달라고 해서 그걸 받아 들고 그 슬픈 추억이 깃든 곳을 떠났어.

8월 21일

손바닥 뒤집듯 내 마음이 바뀌어. 이따금 삶의 기쁜 눈빛이 다시 어렴풋이 밝아 오려 해. 아, 한순간뿐이지! 그렇게 꿈속에 빠져 있으면 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만약 알베르트가 죽는다면? 그러면 너는……! 그래, 로테는…… 그리고 나는 그 헛된 생각을 쫓아가다가, 마침내 그것이 나를 낭떠러지 앞으로 데려가면 몸서리치며 물러서.

성문을 나서서, 로테를 무도회에 데리러 처음 마차를 타고 가던 그 길을 걸을 때면, 그때와는 얼마나 딴판인지!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지나가 버렸어! 옛 세상의 눈짓 하나 없고, 그때 내 감정의 맥박 하나 남아 있지 않아. 내 기분은 꼭 이런 유령의 기분일 거야. 한때 꽃다운 제후로서 성을 짓고 온갖 영광의 선물로 꾸민 다음, 죽으면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희망을 품고 물려준 그 성에, 이제 불타고 무너진 그 성에 돌아온 유령 말이야.

9월 3일

나는 이따금 이해가 안 돼. 나는 로테를 이토록 오롯이, 이토록 절절하게, 이토록 가득히 사랑하고, 로테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고 알지도 못하고 가진 것도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로테를 사랑할 수 있는지, 사랑해도 되는지!

9월 4일

그래, 그런 거야. 자연이 가을로 기울듯 내 안에도 내 둘레에도 가을이 와. 내 잎은 누렇게 물들고, 이웃 나무들의 잎은 벌써 떨어졌어. 내가 이리 오자마자 어떤 농군 머슴 이야기를 써 보낸 적이 있지 않아? 이번에 발하임에서 다시 그 사람 소식을 물었더니, 일하던 집에서 쫓겨났다고들 하고,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제 다른 마을로 가는 길에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났어. 말을 걸었더니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내가 그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면 너도 쉽게 알겠지만, 나는 그 이야기에 두 배 세 배로 마음이 흔들렸어.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나를 불안하게 하고 괴롭히는 걸 왜 혼자 간직하지 않지? 왜 너까지 슬프게 하지? 왜 너한테 늘 나를 딱하게 여기고 나무랄 거리를 주는 거지? 그래도 좋아, 이것도 내 운명에 속하는 일인지 모르니!

그 사람은 처음에는 조용한 슬픔에 잠겨, 조금 겁을 먹은 듯한 기색으로 내 물음에 대답만 했어. 그러다 금세, 마치 갑자기 자기 자신과 나를 다시 알아본 것처럼 더 터놓고 자기 잘못을 고백하고 자기 불행을 하소연했어. 친구야,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법정에 세우듯 네 앞에 내놓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털어놓았어. 아니, 되새기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기라도 한 듯 이야기했어. 여주인을 향한 정열이 날이 갈수록 커져서 나중에는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고, 그 사람 말대로 하자면 머리를 어디 둬야 할지도 몰랐다고 했어.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못하고, 목이 꽉 막혔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시킨 일은 잊어버리고, 마치 못된 귀신에게 쫓기는 것 같았다고 했어. 그러다 어느 날 여주인이 위층 방에 있는 걸 알고 뒤따라 올라갔는데, 아니, 오히려 거기로 끌려갔다고 했어. 여주인이 애원을 들어주지 않자 억지로 차지하려 했다는 거야. 자기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하느님을 증인으로 모시고 말하지만 여주인에게 품은 뜻은 언제나 떳떳했고, 여주인이 자기와 결혼해 함께 평생을 보내 주기를 무엇보다 간절히 바랐다고 했어. 그렇게 한동안 이야기하다가 그 사람은 머뭇거리기 시작했어. 아직 할 말이 있는데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사람처럼. 마침내 수줍게 털어놓았어. 여주인이 자기에게 자잘한 친밀함을 얼마쯤 허락했는지, 어느 만큼 가까이 다가가게 해 주었는지. 그 사람은 두세 번 말을 끊고는, 여주인을 나쁘게 말하려는 게 아니라고, 그 사람 표현대로 하자면 전처럼 여주인을 사랑하고 우러른다고, 그런 이야기는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이 없으며 자기가 아주 엇나가고 정신 나간 사람은 아니라는 걸 나에게 알려 주려고 말할 뿐이라고 더없이 힘주어 거듭 맹세했어.

그리고 여기서, 내 좋은 친구, 나는 영원히 부를 내 옛 노래를 다시 시작해. 그 사람이 내 앞에 서 있던 모습을, 지금도 내 앞에 서 있는 그 모습을 너한테 그려 보일 수 있다면! 내가 그 사람의 운명을 얼마나 함께 아파하는지, 아파하지 않을 수 없는지 네가 느낄 수 있게 모든 걸 제대로 말할 수 있다면! 하지만 이만하자. 너는 내 운명도 알고 나도 알잖아. 그러니 무엇이 나를 모든 불행한 사람에게로, 특히 이 불행한 사람에게로 끌어당기는지 너무나 잘 알 거야.

편지를 다시 읽어 보니 이야기의 끝을 빠뜨렸네.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여주인은 그 사람을 뿌리쳤어. 그때 여주인의 오라비가 들이닥쳤는데, 그는 오래전부터 그 사람을 미워했고 오래전부터 집에서 내보내고 싶어 했어. 누이가 새로 시집을 가면, 지금은 누이에게 아이가 없어서 자기 아이들이 넉넉히 바라볼 수 있는 그 유산을 고스란히 놓치게 될까 봐 겁을 냈거든. 오라비는 그 자리에서 당장 그 사람을 집 밖으로 내쫓고 그 일로 어찌나 소란을 피웠는지, 여주인이 원했더라도 그 사람을 다시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대. 이제 여주인은 다른 머슴을 새로 들였는데, 그 머슴 일로도 또 오라비와 사이가 틀어졌다고들 하고, 여주인이 그 머슴과 결혼할 거라고 다들 장담한대. 하지만 그 사람은 그 꼴만은 결코 살아서 보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는 거야.

내가 들려준 이야기는 하나도 부풀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곱게 꾸미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하게, 약하게 이야기했고, 우리가 늘 쓰는 점잖은 도덕의 말로 옮기는 바람에 투박하게 만들어 버렸다고 해도 좋아.

그러니까 이 사랑, 이 신의, 이 정열은 시인이 지어낸 것이 아니야. 그건 살아 있어. 우리가 교양 없다고, 거칠다고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살아 있어. 우리 배운 사람들은…… 잘못 배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어! 부탁이야, 이 이야기를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 줘. 나는 오늘 이걸 쓰면서 마음이 고요해. 내 글씨를 보면 알 거야, 여느 때처럼 휘갈기고 끄적거리지 않잖아. 읽어 줘, 사랑하는 친구야. 그리고 이게 네 친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 생각해 줘. 그래, 나도 그렇게 되었고, 그렇게 될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사람과 나를 견주는 것조차 감히 하지 못할 만큼, 그 가엾은 불행한 사람에 견주면 반만큼도 용감하지 않고 반만큼도 단호하지 않아.

9월 5일

로테는 일 때문에 시골에 머무르고 있는 남편에게 짧은 쪽지를 썼어. 쪽지는 이렇게 시작했어. "여보, 사랑하는 당신, 되도록 빨리 와 줘. 너무너무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게." 그때 들어온 친구 하나가, 알베르트가 어떤 사정으로 그렇게 빨리 돌아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가져왔고, 쪽지는 그대로 놓여 있다가 저녁에 내 손에 들어왔어. 나는 그걸 읽고 미소를 지었고, 로테가 왜 웃느냐고 물었어. "상상력이란 얼마나 신이 내린 선물인지요." 내가 외쳤어. "한순간 이게 나한테 쓴 쪽지인 것처럼 꿈꿀 수 있었어요." 로테는 말을 끊었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고, 나는 입을 다물었어.

9월 6일

로테와 처음 춤을 추던 날 입은 그 수수한 파란 연미복을 벗기로 마음먹기까지 무척 힘들었어. 하지만 나중에는 아주 볼품없어졌거든. 그래서 앞의 것과 똑같이, 옷깃과 소맷부리까지 그대로 한 벌 새로 지었고, 또 그때처럼 노란 조끼와 바지도 맞췄어. 그래도 아주 똑같은 느낌은 들지 않아. 모르겠어……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더 정이 들겠지.

9월 12일

로테는 알베르트를 데리러 며칠 집을 비웠어. 오늘 로테의 방에 들어서자 로테가 나를 맞으러 다가왔고, 나는 너무너무 기뻐하며 그 손에 입을 맞추었어.

카나리아 한 마리가 거울에서 날아와 로테의 어깨에 앉았어. "새 친구예요." 로테가 새를 손 위로 꾀어 올리며 말했어. "꼬마들한테 주려고요. 정말 귀엽지 뭐예요! 보세요! 빵을 주면 날개를 파닥이면서 얼마나 얌전하게 쪼아 먹는지. 저한테 입도 맞춰요, 보세요!"

로테가 그 작은 새에게 입을 내밀자, 새는 마치 자기가 누리는 더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기라도 한 듯 그 달콤한 입술에 그토록 사랑스럽게 몸을 비볐어.

"베르테르 씨한테도 입을 맞추라고 할게요." 로테가 새를 건네며 말했어. 작은 부리가 로테의 입에서 내 입으로 길을 옮겨 왔고, 그 콕콕 쪼는 감촉은 한 줄기 숨결 같았고, 사랑에 가득 찬 기쁨의 아련한 예감 같았어.

"이 새의 입맞춤에는 욕심이 아주 없지는 않네요." 내가 말했어. "먹이를 찾다가, 텅 빈 애무에 만족하지 못하고 돌아가요."

"제 입에서 받아먹기도 해요." 로테가 말했어. 로테는 자기 입술로 빵 부스러기 몇 개를 새에게 건넸는데, 그 입술에서는 티 없이 함께 나누는 사랑의 기쁨이 온갖 환희 속에 웃고 있었어.

나는 얼굴을 돌렸어. 로테는 그러지 말아야 했어. 하늘처럼 맑은 순진함과 더없는 행복을 담은 이런 모습으로 내 상상력을 부추기지 말아야 했고, 삶의 무심함이 이따금 흔들어 재우는 그 잠에서 내 마음을 깨우지 말아야 했어! 그런데 왜 안 된다는 거지? 로테는 나를 그토록 믿어! 내가 로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9월 15일

미칠 것만 같아, 빌헬름. 이 땅에 아직 값어치 있는 몇 안 되는 것에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니. 너도 알지, St 마을의 정직한 목사 댁에서 내가 로테와 함께 그 아래 앉아 있던 호두나무들 말이야. 하느님은 아시겠지만 늘 내 영혼을 더없는 기쁨으로 채워 주던 그 멋진 호두나무들! 그 나무들 덕에 목사관 뜰이 얼마나 아늑했는지, 얼마나 시원했는지! 그리고 가지들은 얼마나 근사했는지! 거기에 여러 해 전 그 나무를 심은 정직한 성직자들에 대한 추억까지. 학교 선생은 자기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다는 그 가운데 한 분의 이름을 자주 들려주었는데, 아주 훌륭한 분이었다고 하고, 그 나무들 아래에서 그분에 대한 기억은 늘 거룩했어. 정말이야, 어제 그 나무들이 베어졌다는 이야기를 할 때 학교 선생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어. 베어졌다니! 나는 미칠 것 같아. 첫 도끼질을 한 그 개 같은 놈을 죽여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내 뜰에 그런 나무가 두어 그루 서 있다가 그 가운데 하나가 늙어서 말라 죽기만 해도 슬픔에 잠겨 지낼 나인데, 이걸 그냥 손 놓고 지켜봐야 하다니. 그래도 친구야, 한 가지는 있어. 사람의 감정이란 게 어떤 건지! 온 마을이 투덜대고 있으니, 목사 부인은 버터와 달걀과 그 밖의 인심으로 자기가 마을에 얼마나 큰 상처를 냈는지 느끼게 되겠지, 나는 그러기를 바라. 바로 그 여자, 새 목사의 아내(우리 늙은 목사님도 돌아가셨어)가 한 짓이거든. 비쩍 마르고 골골하는 여자인데, 세상에 아무 관심도 두지 않을 까닭이 충분해. 아무도 그 여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학자인 체하는 바보 같은 여자야. 성경 정경 연구에 끼어들고, 요즘 유행하는 도덕적이고 비판적인 그리스도교 개혁에 열심히 손을 대고, 라바터의 열광에는 어깨를 으쓱하고, 건강은 완전히 망가져서 하느님이 주신 이 땅 위에 아무 기쁨도 없는 여자야. 그런 인간이니까 내 호두나무를 벨 수 있었던 거야. 봐, 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생각해 봐. 떨어지는 잎이 뜰을 더럽히고 눅눅하게 만들고, 나무가 햇빛을 가리고, 호두가 익으면 사내아이들이 돌을 던져 따는데, 그게 그 여자의 신경을 건드리고 케니콧과 제믈러와 미하엘리스를 서로 저울질하는 그 깊은 생각을 방해한다는 거야. 마을 사람들, 특히 노인들이 그토록 못마땅해하는 걸 보고 내가 물었어. "왜 그걸 그냥 두고 보셨어요?" "이 고장에서는 이장이 하자고 하면 무슨 수가 있겠어요?" 사람들이 말했어. 그런데 한 가지는 잘되었어. 이장과 목사가(목사도 어차피 수프에 기름기 하나 보태 주지 않는 아내의 변덕에서 뭐라도 건지고 싶었던 거지) 그 나무를 서로 나눠 가지려고 했는데, 그 소식을 들은 재무청이 "이리 내놓아라!" 했어. 재무청은 나무가 서 있던 목사관 뜰의 그 부분에 예전부터 권리를 주장해 왔거든. 그러고는 나무를 가장 비싸게 부르는 사람에게 팔아 버렸어. 나무는 쓰러져 누워 있어! 오, 내가 제후라면! 그 목사 부인과 이장과 재무청을…… 제후라니! 그래, 내가 제후라면 내 나라의 나무 따위가 무슨 상관이겠어!

10월 10일

로테의 까만 눈을 보기만 해도 나는 벌써 기분이 좋아! 그런데 봐, 속상한 건 알베르트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그 사람이 바라던 만큼…… 내가 누리리라 믿었던 만큼은…… 만약 내가…… 나는 말을 끊어 가며 쓰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여기서는 달리 나타낼 길이 없어. 그리고 이만하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겠지.

10월 12일

내 마음속에서 오시안이 호메로스를 밀어냈어. 이 장엄한 시인이 나를 이끌어 가는 세상은 얼마나 놀라운지! 김 서린 안개 속 어스름한 달빛 아래 조상들의 혼령을 몰고 가는 폭풍에 휩싸여 황야를 헤매는 것, 숲속 급류가 울부짖는 가운데 산 쪽에서 들려오는, 동굴에서 새어 나와 반쯤 바람에 흩날린 혼령들의 신음 소리를 듣고, 고귀하게 쓰러진 연인의 이끼 덮이고 풀 자란 돌 네 개 둘레에서 죽도록 슬피 우는 아가씨의 통곡을 듣는 것! 그러다 그를 찾아낼 때면, 넓은 황야에서 조상들의 발자취를 찾다가, 아, 그들의 무덤돌을 찾아내고는 구르는 바다 속으로 숨어 드는 정다운 저녁별을 슬피 바라보는 떠도는 백발의 음유 시인을 찾아낼 때면, 그리고 다정한 별빛이 아직 용사들의 위험을 비추고 달이 화환으로 꾸민 채 승리하고 돌아오는 그들의 배를 비추던 지난날이 그 용사의 영혼 속에 되살아날 때면! 그의 이마에서 깊은 슬픔을 읽고, 버려진 마지막 영웅이 기진맥진하여 무덤으로 비틀비틀 걸어가는 것을 볼 때면, 떠나간 이들의 그림자가 힘없이 곁에 머무는 가운데 그가 언제나 새롭게, 아프게 타오르는 기쁨을 빨아들이고, 차가운 땅과 높이 흔들리는 풀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외칠 때면! "나그네가 오리라, 오리라. 아름답던 날의 나를 알던 그가 와서 물으리라. '그 노래꾼은 어디 있는가, 핑갈의 훌륭한 아들은?' 그의 발걸음이 내 무덤 위를 지나가고, 그는 이 땅 위에서 나를 헛되이 찾으리라." 오, 친구야! 나는 고귀한 방패지기처럼 칼을 뽑아, 서서히 꺼져 가는 삶의 경련하는 고통에서 나의 주군을 단번에 풀어 드리고, 자유로워진 그 반은 신인 영웅의 뒤를 따라 내 영혼을 보내고 싶어.

10월 19일

아, 이 빈자리! 내 가슴속에 느껴지는 이 끔찍한 빈자리! 나는 자주 생각해. 네가 로테를 단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이 가슴에 꼭 안을 수 있다면 이 빈자리가 다 채워질 텐데.

10월 19일

그래, 친구야, 나는 확신하게 돼. 갈수록 더 확신하게 돼. 한 사람이 있고 없고는 별것 아니라는 걸, 정말 별것 아니라는 걸. 로테에게 친구 한 사람이 찾아와서 나는 옆방으로 들어가 책을 집어 들었지만 읽을 수가 없어서, 펜을 들고 글을 쓰려 했어. 두 사람이 나직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어. 누구는 시집을 가고, 누구는 앓는데 몹시 앓는다는, 시내 소식 같은 하찮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어. "마른기침을 하고, 얼굴에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걸핏하면 정신을 잃는대. 그 사람 목숨에 나는 크로이처 한 닢도 걸지 않겠어." 한 사람이 말했어. "아무개 씨도 형편이 아주 나쁘대." 로테가 말했어. "벌써 몸이 부었다던데." 다른 사람이 말했어. 그러자 내 생생한 상상력이 나를 그 가엾은 사람들의 침대 곁으로 데려갔어. 그 사람들이 얼마나 마지못해 삶에 등을 돌리는지, 그 사람들이…… 빌헬름! 그런데 내 다정한 여인네들은 그 이야기를 그저 남들이 하듯 했어. 낯선 사람 하나가 죽는다는 이야기를 하듯. 그리고 고개를 돌려 이 방을 둘러보고, 내 둘레의 로테의 옷가지와 알베르트의 서류와, 이제는 정이 든 이 가구들과 이 잉크병까지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해. 봐라, 너는 지금 이 집에 무엇이냐! 전부지. 친구들은 너를 소중히 여기고, 너는 자주 그들을 기쁘게 하고, 네 마음에는 그들 없이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지. 그런데…… 지금 네가 떠난다면, 이 울타리에서 떠나간다면? 그들은 느낄까, 얼마나 오래 느낄까, 너를 잃어서 그들의 운명에 찢겨 난 빈자리를? 얼마나 오래? 오, 사람이란 이토록 덧없어서, 자기 존재를 참으로 확신할 수 있는 곳, 자기가 있다는 단 하나의 참된 자국을 남기는 곳, 사랑하는 이들의 기억과 영혼 속에서조차 꺼지고 사라져야 하는구나, 그것도 그토록 빨리!

10월 27일

사람이 서로에게 이토록 아무것도 되어 줄 수 없다니, 나는 자주 가슴을 쥐어뜯고 머리를 들이받고 싶어. 아, 내가 사랑과 기쁨과 따뜻함과 환희를 들고 가지 않으면 남이 그걸 내게 줄 리 없고, 더없는 행복으로 가득 찬 마음을 통째로 들고 가더라도 차갑고 맥없이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나는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할 거야.

나는 가진 게 이토록 많은데, 로테를 향한 감정이 모든 걸 삼켜 버려. 나는 가진 게 이토록 많은데, 로테가 없으면 모든 게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게 돼.

10월 27일 저녁

로테의 목을 끌어안을 뻔한 게 벌써 백 번도 넘어! 그토록 사랑스러운 것이 눈앞에서 이리저리 오가는 걸 보면서도 손을 뻗어서는 안 된다는 게 어떤 심정인지 위대하신 하느님은 아시겠지, 손을 뻗어 붙잡는 건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본능인데. 아이들은 마음에 떠오르는 건 무엇이든 붙잡으려고 손을 뻗잖아? 그런데 나는?

10월 30일

하느님은 아시겠지! 나는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아니 이따금은 그러리라 기대하며 잠자리에 드는 일이 잦아. 그런데 아침이면 눈을 뜨고 다시 해를 보고, 비참해져. 오, 내가 변덕스러운 사람이라면, 날씨 탓이나 제삼자 탓이나 어그러진 일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이 견딜 수 없는 언짢음의 짐이 반만 내게 얹힐 텐데. 아, 가련한 나!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다는 걸 나는 너무나 참되게 느껴. 아니, 잘못이 아니야! 그저 모든 비참함의 샘이 내 안에 숨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해. 예전에 모든 더없는 행복의 샘이 내 안에 있었듯이. 나는 아직 그때의 그 사람 그대로가 아닐까? 예전에 넘치는 감정 속에서 떠다니고, 걸음마다 낙원이 뒤따르고, 온 세상을 사랑으로 끌어안을 마음을 지녔던 그 사람 말이야. 그런데 이 마음은 이제 죽었어. 거기서는 더 이상 황홀함이 흘러나오지 않고, 내 눈은 메말랐고, 내 감각은 이제 상쾌한 눈물로 적셔지지 못해 불안하게 내 이마를 찌푸리게 해. 나는 몹시 괴로워. 내 삶의 유일한 환희를, 내 둘레에 세계를 지어내던 그 거룩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힘을 잃었으니까. 그 힘은 가 버렸어! 창밖으로 먼 언덕을 바라보면, 아침 해가 언덕 위로 안개를 뚫고 고요한 풀밭 골짜기를 비추고, 부드러운 강이 잎 진 버드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내게로 흘러오는데, 오! 그럴 때 이 장엄한 자연이 칠을 한 작은 그림처럼 굳은 채 내 앞에 서 있고, 그 모든 환희가 더없는 행복 한 방울도 내 마음에서 머리로 퍼 올리지 못하고, 이 사내 꼴이 통째로 말라 버린 샘처럼, 바닥이 갈라진 물통처럼 하느님 앞에 서 있을 때면! 하늘이 청동처럼 굳게 닫히고 둘레의 땅이 목말라 갈라질 때 농부가 비를 빌듯이, 나는 자주 땅바닥에 몸을 던지고 하느님께 눈물을 달라고 빌었어.

그러나 아, 나는 느껴. 하느님은 우리가 성급하게 조른다고 비와 햇빛을 내려 주시지 않아. 그리고 그 기억이 나를 괴롭히는 그 시절들은 왜 그토록 행복했을까, 내가 참을성 있게 그분의 영을 기다리고 그분이 내게 쏟아부어 주신 환희를 온 마음으로,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라면!

11월 8일

로테가 내 지나침을 나무랐어! 아, 그토록 사랑스럽게! 내 지나침이란, 이따금 포도주 한 잔에 이끌려 한 병을 다 마셔 버린다는 거야. "그러지 마세요!" 로테가 말했어. "로테를 생각하세요!" "생각하라니요!" 내가 말했어. "그걸 꼭 말로 시키셔야 해요? 나는 생각해요! 아니, 생각하지 않아요! 로테는 늘 내 영혼 앞에 있으니까요. 오늘은 얼마 전 로테가 마차에서 내린 그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로테는 내가 그 이야기에 더 깊이 빠져들지 않게 다른 이야기를 꺼냈어. 내 좋은 친구, 나는 끝장이야! 로테는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어.

11월 15일

고마워, 빌헬름, 진심으로 마음 써 주고 좋은 뜻으로 충고해 줘서. 그리고 부탁이니 마음 놓아. 나를 끝까지 견디게 내버려 둬. 이렇게 지쳤어도 아직 끝까지 버틸 힘은 충분해. 너도 알다시피 나는 종교를 존중하고, 종교가 지친 많은 사람에게는 지팡이가 되고 목말라 쓰러져 가는 많은 사람에게는 생기가 된다는 걸 나도 느껴. 다만…… 종교가 누구에게나 그럴 수 있을까, 그래야만 할까? 넓은 세상을 둘러보면, 종교가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 수천이고, 설교를 듣든 안 듣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사람이 수천이야. 그런데 종교가 꼭 나에게 그래야 해? 하느님의 아들도 몸소 아버지께서 주신 사람들이 자기 곁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어? 그런데 내가 그분께 주어지지 않았다면? 내 마음이 말하듯 아버지께서 나를 당신 곁에 두려 하신다면? 부탁이야, 이걸 잘못 받아들이지 마. 이 순진한 말에서 비웃음을 보지 마. 내가 너에게 내보이는 건 내 온 영혼이야.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나았을 거야, 누구도 나보다 더 알지 못하는 이 모든 일에 대해서는 원래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니까. 제 몫의 고통을 다 견디고 제 잔을 다 마시는 것, 그것 말고 사람의 운명이 무엇이겠어? 하늘에서 오신 하느님께서 사람의 입술로 마시기에도 그 잔이 너무 썼다면, 내가 왜 큰소리를 치며 그 잔이 달콤한 척해야 해? 그리고 내 온 존재가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떨고, 지나간 날이 미래의 캄캄한 심연 위로 번개처럼 번쩍이고, 내 둘레의 모든 것이 가라앉고 나와 함께 세상이 무너지는 그 끔찍한 순간에, 내가 왜 부끄러워해야 해? 오로지 자기 안으로 몰리고 자기 자신을 잃고 걷잡을 수 없이 굴러떨어지는 피조물이, 헛되이 몸부림치는 제 힘의 깊은 밑바닥에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왜 저를 버리셨습니까?" 하고 이를 갈며 외치는 것, 그게 바로 그 피조물의 목소리가 아니겠어? 그런데 내가 그 말을 부끄러워해야 해? 하늘을 천처럼 말아 거두시는 그분조차 피하지 못하신 그 순간을 내가 두려워해야 해?

11월 21일

로테는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 자기가 나와 자기를 함께 망칠 독약을 빚고 있다는 걸. 그리고 나는 로테가 나를 망치려고 건네는 잔을 더없는 쾌락에 젖어 들이켜. 로테가 자주…… 자주? 아니,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따금 나를 바라보는 그 다정한 눈길, 내 감정이 저도 모르게 드러날 때 그걸 받아 주는 그 호의, 내가 참고 견디는 걸 안쓰러워하며 이마에 떠오르는 그 연민은 다 무엇이란 말이야?

어제 내가 떠날 때 로테가 손을 내밀며 말했어. "잘 가요, 다정한 베르테르!" 다정한 베르테르! 로테가 나를 '다정한'이라고 부른 건 처음이었고, 그 말이 뼛속까지 스며들었어. 나는 그 말을 백 번이나 되뇌었고, 어젯밤 잠자리에 들려다 혼자 이런저런 혼잣말을 하다가 불쑥 "잘 자, 다정한 베르테르!" 하고는 나중에 나 자신을 두고 웃지 않을 수 없었어.

11월 22일

나는 "로테를 제게 남겨 주십시오!" 하고 기도할 수가 없어. 그런데도 로테는 자주 내 사람처럼 여겨져. "로테를 제게 주십시오!" 하고 기도할 수도 없어. 로테는 다른 사람의 아내니까. 나는 내 고통을 두고 말장난을 해. 내버려 두면 서로 엇갈리는 말들로 엮은 기도문 한 편은 너끈히 나올 거야.

11월 24일

로테는 내가 무엇을 견디는지 느껴. 오늘 로테의 눈길이 내 가슴 깊이 파고들었어. 로테는 혼자 있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로테는 나를 바라보았어. 그런데 나는 로테에게서 더 이상 그 사랑스러운 아름다움도, 그 빼어난 정신의 빛도 보지 못했어. 그 모든 것이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어. 훨씬 더 장엄한 눈길이, 더없이 깊은 연민과 더없이 다정한 동정이 가득 담긴 눈길이 나를 사로잡았어. 나는 왜 로테의 발밑에 몸을 던져서는 안 되었을까? 나는 왜 로테의 목을 끌어안고 천 번의 입맞춤으로 대답해서는 안 되었을까? 로테는 클라비어로 피했고, 연주에 맞춰 달콤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고운 가락을 불렀어. 로테의 입술이 그토록 매혹적으로 보인 적은 없었는데, 마치 악기에서 솟아 나오는 그 달콤한 소리를 목마르게 빨아들이려고 입술이 열리고, 그 맑은 입에서는 은밀한 메아리만 되울려 나오는 것 같았어. 아, 이걸 너한테 그대로 말할 수만 있다면! 나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몸을 숙여 맹세했어. 하늘의 영들이 깃든 입술이여, 나는 결코 감히 너희에게 입을 맞추지 않으리라. 그런데도…… 나는 하고 싶어…… 하! 봐, 이게 내 영혼 앞에 칸막이벽처럼 서 있어. 이 더없는 행복…… 그러고는 이 죄를 씻으려고 파멸하는 것. 죄라고?

11월 26일

이따금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해. 네 운명은 하나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여겨라. 이렇게 괴로움을 당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옛 시인의 글을 읽으면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아. 나는 견뎌야 할 게 이토록 많아! 아, 나보다 앞서 이토록 비참했던 사람들이 정말 있었단 말인가?

11월 30일

나는,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운명인가 봐! 가는 곳마다 나를 온통 흔들어 놓는 일을 만나. 오늘! 오, 운명이여! 오, 인간이여!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서 점심때 물가를 따라 걸었는데, 모든 게 황량했고, 축축하고 차가운 저녁 바람이 산에서 불어왔고, 잿빛 비구름이 골짜기로 밀려들었어. 멀리서 낡은 초록색 웃옷을 입은 사람 하나가 보였는데, 바위 사이를 기어 다니며 약초를 찾는 것 같았어. 내가 가까이 다가가 그 사람이 내 발소리에 돌아섰을 때, 나는 아주 흥미로운 얼굴을 보았는데, 조용한 슬픔이 주된 표정이었지만 그 밖에는 곧고 착한 마음만 드러나 있었어. 검은 머리는 핀으로 두 갈래 말아 꽂았고, 나머지는 굵게 땋아 등 뒤로 늘어뜨렸어. 옷차림으로 보아 신분이 낮은 사람 같았으므로, 그가 무얼 하는지 관심을 보여도 언짢아하지 않으리라 여기고 그 사람에게 무얼 찾느냐고 물었어. "꽃을 찾아요." 그 사람이 깊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어. "그런데 하나도 없어요." "지금은 꽃 필 철이 아니잖아요." 내가 웃으며 말했어. "꽃은 아주 많아요." 그 사람이 내게로 내려오며 말했어. "우리 집 뜰에는 장미가 있고, 인동덩굴도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아버지가 주신 건데, 잡초처럼 잘 자라요. 벌써 이틀째 찾는데 찾을 수가 없어요. 바깥에도 늘 꽃이 있어요. 노란 꽃, 파란 꽃, 빨간 꽃. 그리고 용담초는 꽃이 참 예뻐요. 그런데 하나도 못 찾겠어요." 어딘가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나는 에둘러 물었어. "꽃은 가져다 뭘 하시려고요?" 기이하게 경련하는 웃음이 그 사람의 얼굴을 일그러뜨렸어. "일러바치지 않으신다면요." 그 사람이 손가락을 입에 대며 말했어. "제 애인한테 꽃다발을 주기로 약속했어요." "착하네요." 내가 말했어. "오!" 그 사람이 말했어. "그 사람은 다른 게 많아요. 부자예요." "그래도 꽃다발을 받으면 좋아하겠지요." 내가 대꾸했어. "오!" 그 사람이 말을 이었어. "그 사람은 보석도 있고 왕관도 있어요." "이름이 뭔데요?" "네덜란드 연방 의회가 저한테 돈을 갚아 준다면요." 그 사람이 대꾸했어. "저는 딴사람이 될 텐데! 그래요, 한때는 아주 좋은 시절이 있었어요! 이제 저는 끝났어요. 저는 이제……" 하늘을 올려다보는 젖은 눈길이 모든 걸 말해 주었어. "그럼 행복했던 적이 있었군요?" 내가 물었어. "아, 다시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이 말했어. "그때는 정말 좋았어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고 홀가분했어요!" "하인리히!" 길을 따라 오던 할머니 하나가 소리쳤어. "하인리히, 어디 처박혀 있었니? 여기저기 다 찾아다녔잖아. 어서 밥 먹으러 와." "아드님이세요?"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며 물었어. "그래요, 불쌍한 내 아들이에요!" 할머니가 대답했어. "하느님이 제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우셨어요." "언제부터 이랬어요?" 내가 물었어. "이렇게 얌전해진 건 반년쯤 되었어요." 할머니가 말했어. "이만큼이라도 된 게 하느님 덕이지요. 그 전에는 한 해 내내 미쳐 날뛰어서 미친 사람 가두는 데서 사슬에 묶여 지냈어요. 이제는 누구한테도 해를 끼치지 않아요. 다만 늘 왕이니 황제니 하는 이야기만 해요. 착하고 얌전한 아이라 내 입에 풀칠하는 걸 거들고 글씨도 곱게 썼는데, 갑자기 시름에 잠기더니 지독한 열병에 걸렸고, 그러다 미쳐 날뛰더니 이제 보시는 대로예요. 나리께 다 말씀드리자면……" 나는 쏟아지는 할머니의 말을 끊고 물었어. "아드님이 그토록 행복했다고, 그토록 좋았다고 자랑하는 그때는 대체 언제였어요?" "철없는 녀석!" 할머니가 딱하다는 듯 웃으며 외쳤어. "그건 정신이 나갔던 때를 말하는 거예요. 늘 그때를 자랑해요. 미친 사람 가두는 데 있으면서 제정신이 하나도 없던 때 말이에요." 그 말이 벼락처럼 내게 떨어졌어. 나는 할머니 손에 돈 한 닢을 쥐여 주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어. 네가 행복했던 때라니! 나는 시내 쪽으로 빠르게 걸으며 혼잣말로 외쳤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좋았던 때라니! 하늘에 계신 하느님! 사람이 분별을 갖추기 전과 분별을 다시 잃은 뒤가 아니면 행복할 수 없게, 그걸 사람의 운명으로 정해 놓으셨습니까! 가련한 사람아! 그런데도 나는 네 우울이, 네가 시들어 가는 그 감각의 혼란이 얼마나 부러운지! 너는 희망에 차서 네 여왕에게 꽃을 꺾어 주려고 나가지. 겨울에. 그리고 꽃을 하나도 찾지 못해 슬퍼하면서도 왜 찾을 수 없는지 알지 못해. 그리고 나는…… 나는 희망도 목적도 없이 나갔다가 나간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너는 네덜란드 연방 의회가 돈을 갚아 준다면 네가 어떤 사람이 될지 꿈꾸지. 행복이 모자란 까닭을 이 땅의 걸림돌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복된 사람! 너는 느끼지 못해, 너는 느끼지 못해, 네 비참함이 네 부서진 가슴에, 네 흐트러진 머리에 있다는 걸, 이 땅의 모든 왕이 다 모여도 그건 고쳐 줄 수 없다는 걸. 병든 사람을 비웃는 자는 위로도 받지 못하고 죽어 버리라지! 병을 더하고 남은 삶을 더 고통스럽게 할 뿐인 가장 먼 샘으로 길을 떠나는 그 병자를 비웃는 자는! 양심의 가책을 떨치고 영혼의 고통을 덜려고 거룩한 무덤을 찾아 순례를 떠나는 그 짓눌린 마음을 깔보는 자는! 길도 없는 길을 걸으며 발바닥을 찢는 걸음 하나하나가 괴로운 영혼에는 아픔을 덜어 주는 한 방울이고, 하루 길을 견뎌 낼 때마다 그 마음은 많은 짐을 덜고 한결 가볍게 몸을 누여. 그런데 너희가 이걸 망상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푹신한 방석 위에 눌러앉은 너희 말장수들이? 망상이라니! 오, 하느님! 제 눈물을 보십니다! 사람을 넉넉히 가난하게 지으시고도, 그 얼마 안 되는 가난마저, 사람이 하느님께 품는 그 작은 믿음마저 빼앗아 갈 형제들까지 붙여 주셔야 했습니까,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낫게 하는 뿌리를, 포도나무의 눈물을 믿는 마음이, 우리 둘레의 모든 것에 우리가 시시각각 아쉬워하는 낫게 하고 달래는 힘을 하느님께서 넣어 두셨다고 믿는 마음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알지 못하는 아버지! 예전에는 제 온 영혼을 채우셨건만 이제는 얼굴을 돌리신 아버지, 저를 아버지께로 불러 주십시오! 더는 침묵하지 마십시오! 아버지의 침묵으로는 이 목마른 영혼을 붙잡아 두지 못할 겁니다. 뜻밖에 돌아온 아들이 목에 매달려 이렇게 외친다면, 한 사람이, 한 아버지가 화를 낼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제가 돌아왔어요! 아버지 뜻대로라면 더 오래 견뎌야 했을 나그넷길을 그만두고 돌아왔다고 화내지 마세요. 세상은 어디나 똑같아요. 수고하고 일하면 보수와 기쁨이 있지요. 하지만 그게 저한테 무슨 소용이에요? 저는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만 좋아요. 아버지 얼굴 앞에서 괴로워하고 즐기고 싶어요." 그런데 사랑하는 하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을 내치시겠습니까?

12월 1일

빌헬름! 내가 편지에 쓴 그 사람, 그 행복한 불행한 사람은 로테 아버지의 서기였어. 로테를 향한 정열을 키우고, 숨기고, 털어놓았다가 그 때문에 일자리에서 쫓겨났고, 그 정열이 그 사람을 미치게 만든 거야. 이 메마른 말을 읽으면서 느껴 봐. 알베르트가, 네가 지금 이 편지를 읽으면서 그럴지도 모르는 만큼이나 담담하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그 이야기가 얼마나 넋을 잃을 만큼 나를 사로잡았는지.

12월 4일

부탁이야…… 봐, 나는 끝장이야, 더는 견딜 수 없어! 오늘 로테 곁에 앉아 있었어. 앉아 있었는데, 로테는 클라비어로 갖가지 가락을 쳤어. 그 표정이란! 그 모든 것이! 그 모든 것이! 어쩌라고? 로테의 어린 여동생은 내 무릎 위에서 인형에 옷을 입히고 있었어. 눈물이 고였어. 내가 몸을 숙였더니 로테의 결혼반지가 눈에 들어왔어. 눈물이 흘렀어. 그러다 갑자기 로테가 그 오래된, 하늘처럼 달콤한 가락을 치기 시작했어. 그렇게 갑자기. 그러자 위안의 느낌이, 그리고 그 노래를 듣던 시절과 그 사이사이의 언짢고 어두운 나날과 어그러진 희망들에 대한 추억이 내 영혼을 꿰뚫고 지나갔어. 그러고는…… 나는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였고, 가슴은 밀려드는 것들에 숨이 막혔어. "제발." 나는 격하게 로테에게 다가서며 말했어. "제발 그만 치세요!" 로테는 손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어. "베르테르." 로테가 내 영혼을 꿰뚫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 "베르테르, 많이 아프시군요. 좋아하시던 음식까지 마다하시다니요. 가세요! 부탁이에요,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나는 로테에게서 몸을 떼어 내고…… 하느님! 하느님은 제 비참함을 보시니 끝내 주실 겁니다.

12월 6일

그 모습이 얼마나 나를 따라다니는지! 깨어 있을 때나 꿈속에서나 그 모습이 내 온 영혼을 채워! 여기, 눈을 감으면 여기, 마음의 눈이 모이는 이 이마 안에 로테의 까만 눈이 있어. 여기! 너한테 이걸 어떻게 나타내야 할지 모르겠어. 눈을 감으면 그 눈이 거기 있어. 바다처럼, 심연처럼 내 앞에, 내 안에 머물며 내 이마의 감각을 가득 채워.

사람이란 무엇인가, 반은 신이라고 추어올려지는 그 존재가! 가장 절실하게 힘이 필요한 바로 그때 힘이 모자라지 않는가? 기쁨 속에 날아오르거나 고통 속에 가라앉을 때, 무한한 충만 속에 자신을 잃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는 어느 쪽에서나 멈춰 세워져 무디고 차가운 의식 속으로 다시 끌려 돌아오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