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도련님은 듣기에도 끔찍한 욕설을 고래고래 내지르며 들어왔고, 내가 아들을 부엌 찬장 속에 숨기려던 참에 딱 들켜 버렸다. 헤어턴은 아버지의 짐승 같은 귀여움과 미친 사람 같은 분노 어느 쪽과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두려움이 몸에 배어 있었는데, 한쪽을 만나면 숨이 막히도록 끌어안기고 입맞춤을 당해 죽을 판이었고 다른 쪽을 만나면 불 속에 내던져지거나 벽에 패대기쳐질 판이었으니, 가엾은 아이는 내가 어디에 두든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옳지, 드디어 찾아냈다!" 힌들리가 개를 끌듯 내 목덜미 살가죽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하늘과 지옥에 맹세코, 너희가 짜고서 저 아이를 죽이기로 한 거지! 저 녀석이 왜 늘 내 눈앞에 안 보이는지 이제야 알겠지만, 사탄의 도움을 받아서 이 고기 써는 칼을 네 목구멍에 쑤셔 넣고 말 테다, 넬리! 웃을 일이 아니야. 방금 케네스를 블랙호스 늪에 거꾸로 처박아 놓고 왔으니까. 둘이나 하나나 마찬가지야. 너희 가운데 누구든 몇은 죽여야겠어. 그러기 전에는 쉴 수가 없다고!"
"하지만 저는 그 고기 써는 칼이 싫은데요, 힌들리 나리." 내가 대답했다. "그걸로 훈제 청어를 썰었거든요. 괜찮으시다면 차라리 총을 맞을래요."
"차라리 지옥에나 떨어져라!" 도련님이 말했다. "그래, 떨어지게 해 주지. 잉글랜드의 어떤 법도 제 집을 깨끗이 지키겠다는 사람을 막지는 못해. 그런데 내 집은 엉망이야! 입 벌려."
도련님은 칼을 손에 쥐고 칼끝을 내 이 사이로 밀어 넣었지만, 나로서는 도련님의 미친 짓이 그다지 무섭지 않아서 퉤 뱉어 내고는 맛이 지독하니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먹겠다고 우겼다.
"아!" 도련님이 나를 놓아주며 말했다. "보아하니 저 흉측한 꼬마 악당은 헤어턴이 아니구나. 미안하게 됐다, 넬. 하지만 만약 헤어턴이라면 날 반기러 달려오지도 않고 내가 무슨 도깨비라도 되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니 산 채로 가죽을 벗겨도 싸지. 이리 와, 이 천륜도 모르는 새끼야! 착하고 속아 넘어가는 아비를 우습게 보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 주마. 그런데 이 녀석, 귀를 잘라 주면 더 잘생겨 보이지 않겠어? 개도 귀를 자르면 더 사나워지는데, 나는 사나운 게 좋거든. 가위 좀 가져와. 사납고 말쑥한 게 좋아! 게다가 귀를 애지중지하는 건 지옥 같은 허세야. 악마 같은 자만이지. 귀가 없어도 우린 이미 충분히 당나귀야. 쉿, 얘야, 쉿! 그래, 그래, 내 귀염둥이지! 뚝, 눈물 닦아라. 착하지. 뽀뽀해 줘. 뭐! 안 해? 뽀뽀해, 헤어턴! 빌어먹을, 뽀뽀하란 말이야! 맙소사, 내가 이런 괴물을 기를 줄이야! 내가 살아 있는 한 이 새끼 목을 부러뜨리고 말 테다."
가엾은 헤어턴은 아버지 품에서 있는 힘껏 악을 쓰고 발버둥을 쳤고, 아버지가 저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 난간 너머로 쳐들자 울음소리가 갑절로 커졌다. 나는 아이가 겁에 질려 경기를 일으키겠다고 외치며 아이를 구하러 달려갔는데, 내가 다다랐을 때 힌들리는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난간에 몸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도 거의 잊은 듯했다. "누구냐?" 누군가 계단 밑으로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도련님이 물었다. 발소리로 히스클리프라는 것을 알아들은 나도 더 오지 말라고 손짓을 하려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는데, 내 눈이 헤어턴에게서 떨어진 바로 그 순간 아이가 갑자기 몸을 홱 튕겨 저를 붙잡고 있던 무심한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더니 아래로 떨어졌다.
공포로 오싹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그 작은 것이 무사하다는 것을 보았다. 히스클리프가 바로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 밑에 다다라, 본능적으로 떨어지는 아이를 받아 세워 놓고는 누가 이런 사고를 냈는지 알아보려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당첨될 복권을 5실링에 팔아넘겼다가 이튿날 그 거래로 5천 파운드를 날렸다는 것을 안 구두쇠라도, 위층에 선 언쇼 씨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애가 지은 얼굴보다 더 멍한 얼굴을 짓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얼굴에는 제 손으로 제 복수를 망쳐 버린 데 대한 지독한 괴로움이 어떤 말보다 또렷하게 드러나 있었으니, 어두웠다면 아마 그 애는 헤어턴의 머리통을 계단에 내리찍어 그 실수를 바로잡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살아난 것을 우리가 다 지켜보았고, 나는 곧 그 소중한 아이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아래층에 내려가 있었으며, 힌들리는 술이 깨고 머쓱해진 얼굴로 더 느릿느릿 내려왔다.
"네 탓이야, 엘렌." 도련님이 말했다. "아이를 내 눈에 안 띄게 했어야지. 나한테서 빼앗아 갔어야지!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다쳤냐고요!" 나는 화가 나서 외쳤다. "죽지 않았으면 바보가 될 거예요! 아! 이 애 엄마가 무덤에서 일어나서 나리가 이 애를 어떻게 다루시는지 보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에요. 나리는 이교도보다 더하세요. 제 핏줄을 그런 꼴로 다루시다니!"
도련님이 아이를 만지려 했다. 아이는 내 품에 안긴 것을 알자 금세 울음을 그치고 무서움을 떨쳐 냈는데, 아버지가 손가락 하나를 대자마자 아까보다 더 크게 비명을 지르며 경기라도 일으킬 듯 버둥거렸다.
"이 애를 건드리지 마세요!" 내가 말을 이었다. "이 애는 나리를 싫어해요. 다들 나리를 싫어하고요. 그게 사실이에요! 행복한 집안을 두셨네요. 참 꼴좋게 되셨어요!"
"앞으로 더 꼴좋게 될 거다, 넬리." 그 길 잃은 사내는 다시 독한 기색을 되찾으며 웃었다. "지금은 너하고 그 애하고 썩 꺼져. 그리고 잘 들어, 히스클리프! 너도 내 손이 닿지 않고 내 귀에 들리지 않는 데로 꺼져. 오늘 밤엔 너를 죽이지 않으마. 혹시 집에 불을 지르게 되면 모를까. 그건 내 기분에 달렸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도련님은 찬장에서 브랜디 한 병을 꺼내 큰 잔에 따랐다.
"안 돼요, 그러지 마세요!" 내가 애원했다. "힌들리 나리, 제발 정신 차리세요. 나리 자신은 아무래도 좋다 하시더라도 이 불운한 아이를 불쌍히 여기세요!"
"누가 맡든 나보다는 잘 기를 거다." 도련님이 대답했다.
"나리 영혼이나 불쌍히 여기세요!" 나는 도련님 손에서 잔을 빼앗으려 애쓰며 말했다.
"싫다! 오히려 내 영혼을 지옥으로 보내서 그걸 만든 이를 벌하는 게 아주 즐겁겠어." 그 불경한 사내가 외쳤다. "내 영혼이 흠뻑 저주받기를 빌며 건배!"
도련님은 술을 들이켜고는 어서 나가라고 성마르게 우리를 재촉했는데, 그 명령 끝에 되풀이하기도 기억하기도 싫은 끔찍한 저주를 줄줄이 덧붙였다.
"술로 제 목숨을 끊지 못하니 안됐군." 문이 닫히자 히스클리프가 저주를 메아리처럼 되받아 웅얼거리며 말했다. "있는 힘을 다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 거야. 케네스 선생은 자기 암말을 걸고 내기해도 좋다더라. 무슨 예사롭지 않은 운 좋은 일이라도 저놈한테 닥치지 않는다면, 저놈은 기머턴 이쪽의 어떤 사람보다 오래 살아서 백발의 죄인이 되어 무덤에 갈 거라고."
나는 부엌으로 가서 내 어린 양을 재우려고 앉았다. 히스클리프는 내 생각에 헛간으로 나간 것 같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애는 긴 의자 저편까지만 가서 불에서 떨어진 벽 쪽 걸상에 몸을 던지고는 말없이 거기 있었다.
나는 헤어턴을 무릎에 올려 흔들며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깊은 밤 아기들이 울었네, 흙 밑에 누운 어미가 그 소리를 들었네,
그때 제 방에서 그 소동을 듣고 있던 캐서린 아가씨가 고개를 들이밀고 속삭였다. "혼자야, 넬리?"
"네, 아가씨." 내가 대답했다.
아가씨는 들어와서 난롯가로 다가왔다. 나는 아가씨가 무슨 말을 하려나 보다 하고 고개를 들었다. 아가씨의 얼굴은 어지럽고 근심스러워 보였고,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이 반쯤 벌어져 숨을 한 번 들이쉬었지만, 그 숨은 말 대신 한숨이 되어 새어 나왔다. 아가씨가 조금 전에 한 짓을 아직 잊지 않았으므로 나는 노래를 다시 이어 불렀다.
"히스클리프는 어디 있어?" 아가씨가 내 노래를 끊고 물었다.
"마구간에서 일하고 있어요." 내가 대답했다.
그 애는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아마 깜빡 잠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한참 말이 끊겼는데, 그사이 바닥에 앉은 캐서린의 뺨에서 눈물 한두 방울이 판석 위로 똑똑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부끄러운 짓을 한 게 미안한 걸까? 나는 속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처음 있는 일이지.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제 마음대로 꺼내라지, 나는 거들어 주지 않을 테다! 아니었다. 아가씨는 제 일 말고는 어떤 일에도 별로 마음을 쓰지 않았다.
"아, 어쩌면 좋아!" 마침내 아가씨가 외쳤다. "나 너무 불행해!"
"안됐네요." 내가 말했다. "아가씨는 비위 맞추기가 어려우셔요. 친구는 그렇게 많고 걱정거리는 그렇게 적은데도 만족을 못 하시니!"
"넬리, 내 비밀 하나 지켜 줄래?" 아가씨가 내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아무리 화를 낼 권리가 있어도 그 화를 누그러뜨리고 마는 그런 눈빛으로 매혹적인 눈을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킬 만한 비밀이에요?" 나는 아까보다 덜 뚱하게 물었다.
"응, 그 비밀 때문에 속이 타서 털어놓아야겠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싶어. 오늘 에드거 린턴이 나한테 결혼해 달라고 했고 나는 대답을 했는데, 내가 승낙했는지 거절했는지 말하기 전에, 네가 먼저 어느 쪽이었어야 하는지 말해 줘."
"정말이지, 캐서린 아가씨,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대답했다. "하기야 오늘 오후 도련님 앞에서 보여 주신 그 구경거리를 생각하면 거절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있겠네요. 그런 꼴을 보고도 청혼을 했다면 그 도련님은 구제 불능의 멍청이거나 무모한 바보일 테니까요."
"그렇게 말할 거면 더는 얘기 안 할래." 아가씨가 토라져서 일어서며 대꾸했다. "나는 승낙했어, 넬리. 빨리, 내가 잘못했는지 말해 줘!"
"승낙하셨다고요! 그럼 이제 와서 따져서 뭐 해요? 약속을 하셨으니 물릴 수도 없잖아요."
"그래도 내가 그랬어야 했는지 말해 줘. 어서!" 아가씨가 두 손을 비비고 얼굴을 찌푸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려면 따져 볼 게 많아요." 나는 점잔을 빼며 말했다. "무엇보다 먼저, 에드거 도련님을 사랑하세요?"
"누군들 안 사랑하겠어? 물론 사랑하지." 아가씨가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아가씨에게 다음과 같이 교리 문답을 시켰는데, 스물두 살 처녀가 하는 문답치고는 제법 분별 있는 문답이었다.
"왜 도련님을 사랑하세요, 캐서린 아가씨?"
"말도 안 되는 소리.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거야. 그거면 충분해."
"천만에요. 왜 그런지 말씀하셔야 해요."
"그야, 잘생겼고 같이 있으면 즐거우니까."
"나빠요!" 내가 토를 달았다.
"그리고 젊고 쾌활하니까."
"그것도 나빠요."
"그리고 나를 사랑하니까."
"그건 그저 그래요, 이제야 나오네요."
"그리고 부자가 될 테고, 나는 이 근방에서 제일가는 여자가 되는 게 좋을 테고, 그런 남편을 둔 게 자랑스러울 테니까."
"그게 제일 나빠요. 자, 이제 어떻게 사랑하는지 말씀해 보세요."
"남들이 다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지. 넌 바보 같아, 넬리."
"전혀요. 대답하세요."
"나는 그 사람이 딛고 선 땅도, 그 사람 머리 위의 공기도, 그 사람 손이 닿는 것도, 그 사람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도 다 사랑하고, 그 사람 표정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 그 사람을 통째로 송두리째 사랑해. 자, 됐지!"
"그럼 왜요?"
"아니, 넌 지금 놀리고 있어. 정말 심술궂다! 나한테는 장난이 아니란 말이야!" 젊은 아가씨는 얼굴을 찌푸리며 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는 장난칠 생각이 조금도 없어요, 캐서린 아가씨." 내가 대답했다. "아가씨는 에드거 도련님이 잘생기고, 젊고, 쾌활하고, 부자이고, 아가씨를 사랑하니까 도련님을 사랑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마지막 것은 쳐 줄 게 못 되는 게, 그게 없어도 아가씨는 아마 도련님을 사랑하실 테고, 앞의 네 가지 매력이 없다면 그게 있어도 사랑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그래, 물론 사랑하지 않겠지. 그 사람이 못생기고 촌뜨기라면 그저 불쌍히 여기기나 하겠지. 어쩌면 미워할지도 모르고."
"하지만 세상에는 잘생기고 부자인 젊은이가 몇이고 더 있어요. 어쩌면 도련님보다 더 잘생기고 더 부자인 사람들이요. 그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할 까닭이 뭐예요?"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내 눈앞에는 없어. 에드거 같은 사람은 한 번도 못 봤어."
"보게 되실지도 몰라요. 그리고 도련님이 언제까지나 잘생기고 젊지는 않을 테고, 언제까지나 부자로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어요."
"지금은 그렇잖아. 그리고 나는 지금만 상관하면 돼. 제발 이치에 맞게 말 좀 해."
"좋아요, 그럼 결론이 났네요. 지금만 상관하면 된다면 린턴 도련님과 결혼하세요."
"그러는 데 네 허락은 필요 없어. 나는 그 사람과 결혼할 거야. 그런데 넌 아직 내가 옳은지 말해 주지 않았잖아."
"아주 옳아요. 사람이 지금만 보고 결혼하는 게 옳다면요. 자, 이제 무엇 때문에 불행하신지 들어 보죠. 오빠는 기뻐하실 거고 그 집 노부부도 반대하지 않으실 테니, 아가씨는 어지럽고 정 붙일 데 없는 집에서 벗어나 부유하고 번듯한 집으로 가시게 될 거고요. 그리고 아가씨는 에드거를 사랑하고 에드거는 아가씨를 사랑하잖아요. 다 순조롭고 수월해 보이는데, 걸림돌이 어디 있어요?"
"여기! 그리고 여기!" 캐서린이 한 손으로는 이마를, 다른 손으로는 가슴을 치며 대답했다. "영혼이 어디에 살든 그곳에. 내 영혼으로도 내 가슴으로도, 나는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확신해!"
"그것참 이상하네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그게 내 비밀이야. 하지만 비웃지 않겠다면 설명해 줄게. 똑똑히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내 기분이 어떤지 느끼게는 해 줄게."
아가씨는 다시 내 곁에 앉았다. 얼굴은 더 슬프고 심각해졌고, 깍지 낀 두 손이 떨렸다.
"넬리, 너는 이상한 꿈 같은 거 안 꿔?" 몇 분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아가씨가 불쑥 말했다.
"가끔 꿔요." 내가 대답했다.
"나도 그래. 나는 살면서 그 뒤로 영영 나한테 붙어 남아 내 생각을 바꿔 놓은 꿈들을 꾸었는데, 물속에 포도주가 번지듯 그 꿈들이 나를 꿰뚫고 스며들어 내 마음의 빛깔을 바꿔 놓았어. 이것도 그런 꿈이야. 지금 얘기할 건데, 어느 대목에서도 웃지 않도록 조심해."
"아! 그러지 마세요, 캐서린 아가씨!" 내가 외쳤다. "유령이며 환상까지 불러내서 머리를 어지럽히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울적해요. 자, 자, 즐겁게, 아가씨답게 지내세요! 어린 헤어턴 좀 보세요! 이 애는 울적한 꿈 같은 건 하나도 안 꾸잖아요. 자면서 어쩜 저렇게 예쁘게 웃는지!"
"그래. 그리고 이 애 아버지는 혼자 있을 때 어쩜 저렇게 예쁘게 저주를 퍼붓는지! 너도 기억하겠지만, 그 사람도 한때는 저 통통한 꼬마랑 똑같았잖아. 거의 저만큼 어리고 순진했지. 아무튼 넬리, 너는 들어야 해. 길지 않아. 그리고 오늘 밤 나는 즐거워질 힘이 없어."
"안 들을래요, 안 들을래요!" 나는 서둘러 되풀이했다.
그때 나는 꿈에 관해서는 미신을 믿었고 지금도 그렇다. 게다가 캐서린의 얼굴에는 여느 때와 다른 어두운 기색이 서려 있어서, 내가 그 꿈에서 무슨 예언을 끌어내고 무시무시한 파국을 내다보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아가씨는 언짢아했지만 꿈 이야기를 이어 가지는 않았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것처럼 보이더니 잠시 뒤 다시 말을 시작했다.
"내가 천국에 간다면, 넬리, 나는 지독하게 비참할 거야."
"아가씨는 거기 갈 자격이 없으니까요." 내가 대답했다. "죄인이라면 누구든 천국에서 비참할 거예요."
"그래서가 아니야. 한번은 내가 거기 있는 꿈을 꾸었어."
"꿈 얘기는 안 듣겠다고 했잖아요, 캐서린 아가씨! 저는 자러 갈래요." 나는 다시 아가씨의 말을 끊었다.
아가씨는 웃으며 나를 붙잡아 앉혔다.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몸짓을 했기 때문이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가씨가 외쳤다. "그냥 천국이 내 집 같지 않았다는 말을 하려던 거야. 땅으로 돌아오고 싶어서 가슴이 찢어지게 울었더니, 천사들이 몹시 화가 나서 나를 워더링 하이츠 꼭대기 히스 벌판 한가운데로 내던졌고, 거기서 나는 기뻐서 흐느끼며 깨어났어. 그 꿈이면 다른 꿈 못지않게 내 비밀을 설명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천국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처럼 에드거 린턴과 결혼할 자격도 없는데, 저 안에 있는 못된 인간이 히스클리프를 그렇게 바닥까지 끌어내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거야. 하지만 이제 와서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나는 천해질 거야. 그러니 그 애는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영영 모를 거야. 그것도 그 애가 잘생겨서가 아니야, 넬리.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그 애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것으로 되어 있고, 린턴의 영혼은 달빛과 번개가 다르듯, 서리와 불이 다르듯 우리 영혼과 달라."
이 말이 끝나기 전에 나는 히스클리프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무언가 살짝 움직이는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니 그 애가 걸상에서 일어나 소리 없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애는 캐서린이 자기와 결혼하면 천해질 거라고 말하는 데까지 듣고는 그 뒤는 더 듣지 않고 나가 버렸다. 바닥에 앉아 있던 내 동무는 긴 의자 등받이에 가려서 그 애가 있었는지도, 나갔는지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나는 흠칫 놀라 아가씨에게 조용히 하라고 일렀다!
"왜?" 아가씨가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조지프가 왔어요." 마침 길을 올라오는 짐수레 바퀴 소리를 들은 나는 얼른 그렇게 대답했다. "히스클리프도 함께 들어올 거예요. 어쩌면 방금 문간에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 문간에서 내 말을 엿들었을 리는 없어!" 아가씨가 말했다. "네가 저녁을 차리는 동안 헤어턴은 나한테 줘. 그리고 다 차려지면 같이 먹자고 불러 줘. 이 불편한 양심을 속이고, 히스클리프가 이런 일은 꿈에도 모른다고 확신하고 싶어. 모르겠지, 그렇지? 그 애는 사랑에 빠진다는 게 뭔지도 모를 거야!"
"아가씨만큼 그 애가 모를 까닭은 없다고 봐요." 내가 맞받았다. "그리고 그 애가 고른 사람이 아가씨라면, 그 애는 세상에 태어난 사람 가운데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거예요! 아가씨가 린턴 부인이 되는 순간 그 애는 친구도, 사랑도, 모든 걸 잃게 돼요! 그렇게 헤어지는 걸 아가씨가 어떻게 견딜지, 세상에 완전히 버림받은 그 애가 어떻게 견딜지 생각은 해 보셨어요? 왜냐하면, 캐서린 아가씨……"
"그 애가 완전히 버림받는다고! 우리가 헤어진다고!" 아가씨가 분개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체 누가 우리를 갈라놓는다는 거야? 그런 사람은 밀로1꼴이 날 거야!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럴 일은 없어, 엘렌. 어떤 인간을 위해서라도. 내가 히스클리프를 버리는 데 동의하느니 이 땅 위의 린턴이란 린턴은 다 녹아 없어지는 게 나아. 아, 내 뜻은 그게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런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나는 린턴 부인이 되지 않을 거야! 그 애는 지금까지 평생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나한테 소중할 거고, 에드거는 그 애를 싫어하는 마음을 털어 버리고 적어도 참아 주기는 해야 해. 내가 그 애를 진심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면 그렇게 할 거야. 넬리, 지금 네가 나를 이기적인 나쁜 년이라고 생각하는 거 알아. 그래도 넌 히스클리프와 내가 결혼하면 우리가 거지 신세가 되리라는 생각은 안 해 봤어? 반대로 내가 린턴과 결혼하면 히스클리프가 일어서도록 돕고, 우리 오빠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잖아."
"남편 돈으로요, 캐서린 아가씨?" 내가 물었다. "도련님이 아가씨 셈만큼 그렇게 고분고분하지는 않을걸요. 그리고 제가 판단할 처지는 못 되지만, 젊은 린턴 도련님의 아내가 되려는 이유 가운데 그게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 중에 제일 나쁜 이유 같아요."
"아니야." 캐서린이 쏘아붙였다. "그게 제일 좋은 이유야! 다른 이유들은 내 변덕을 채우려는 거였고, 에드거를 위해서, 그 사람 마음을 채워 주려는 거기도 했어. 이건 에드거를 향한 내 마음도, 나 자신을 향한 내 마음도 제 몸 하나에 다 품고 있는 사람을 위한 거야. 말로는 못 하겠어. 그래도 너도, 누구라도 어렴풋이는 알잖아. 내 바깥에 또 하나의 내가 있다는 걸, 아니 있어야 한다는 걸. 내가 여기 이 몸 안에 다 들어 있다면 나를 지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이 세상에서 내가 겪은 큰 괴로움은 모두 히스클리프의 괴로움이었고, 나는 그 하나하나를 처음부터 지켜보며 같이 느꼈어. 내가 살아가며 붙드는 큰 생각은 바로 그 애야. 다른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그 애가 남아 있으면 나는 그대로 있을 거야.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이 다 남아 있어도 그 애가 없어진다면, 온 세상이 나한테는 엄청나게 낯선 것으로 변해 버릴 테고 나는 그 일부로 보이지도 않을 거야. 린턴을 향한 내 사랑은 숲의 나뭇잎 같아. 겨울이 나무를 바꾸듯 세월이 그 사랑을 바꿔 놓으리라는 걸 나도 잘 알아. 히스클리프를 향한 내 사랑은 그 밑에 놓인 영원한 바위를 닮았어. 눈에 보이는 기쁨은 거의 주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것. 넬리, 내가 곧 히스클리프야! 그 애는 언제나,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어. 즐거움으로 있는 게 아니야. 나도 나 자신한테 늘 즐거움은 아니잖아. 그 애는 바로 나 자신으로 있는 거야. 그러니 우리가 헤어진다는 말은 다시는 하지 마. 그건 될 수 없는 일이고, 그리고……"
아가씨는 말을 멈추고 내 치맛자락 주름 속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나 나는 치맛자락을 홱 잡아 뺐다. 아가씨의 어리석음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가씨 말씀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 가운데서 뜻을 좀 건져 보자면요, 아가씨." 내가 말했다. "그 말씀은 아가씨가 결혼하면서 떠맡게 될 의무가 뭔지 모르시거나, 아니면 못되고 지조 없는 아가씨라는 것밖에 안 돼요. 하지만 더는 저한테 그런 비밀을 털어놓아 괴롭히지 마세요. 지켜 드린다는 약속은 안 할 거예요."
"방금 그 얘기는 지켜 줄 거지?" 아가씨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니요, 약속 안 해요." 나는 되풀이해 말했다.
아가씨가 막 더 조르려는데 조지프가 들어오는 바람에 우리 이야기는 끝이 났고, 캐서린은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헤어턴을 안고 어르고, 나는 저녁을 지었다. 저녁이 다 되자 동료 하인과 나는 누가 힌들리 도련님에게 저녁을 갖다 드릴지를 두고 옥신각신했고, 음식이 거의 다 식을 때까지도 결판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도련님이 한동안 혼자 있고 난 뒤에는 그 앞에 나서기가 유난히 무서웠으므로, 도련님이 원하면 달라고 할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자고 합의를 보았다.
"그 쓸모없는 놈은 어째서 여태 밭에서 안 들어오는 겨? 뭘 하고 자빠졌대? 저 빈둥빈둥 노는 꼴 좀 봐!" 노인이 히스클리프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따졌다.
"내가 불러올게." 내가 대답했다. "틀림없이 헛간에 있을 거야."
나는 가서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돌아와서 나는 캐서린에게 히스클리프가 아가씨 말을 꽤 많이 들은 게 틀림없다고 속삭이고, 아가씨가 오빠가 그 애를 어떻게 대했는지 탓하던 바로 그때 그 애가 부엌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일러 주었다. 아가씨는 몹시 놀라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가 왜 그렇게 허둥대는지, 자기가 한 말이 그 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헤어턴을 긴 의자에 내던지고 몸소 동무를 찾으러 달려 나갔다. 아가씨가 어찌나 오래 돌아오지 않던지 조지프는 더 기다리지 말자고 했다. 조지프는 그 애들이 자기의 긴 식전 기도를 듣기 싫어서 일부러 안 들어오는 거라고 약삭빠르게 짐작하면서, 그것들은 '어떤 못된 짓이든 하고도 남을 만큼 고약하다'고 단언했다. 그러고는 그날 밤 그 애들을 위해 늘 하던 15분짜리 식전 기도에 특별 기도 하나를 덧붙였고, 식사 감사 기도 끝에도 하나 더 붙이려 했다. 그런데 젊은 마님이 끼어들어, 당장 길로 달려 내려가 히스클리프가 어디를 헤매고 있든 찾아서 곧장 데려오라고 다급하게 명령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그 애한테 할 말이 있어. 위층에 올라가기 전에 꼭 해야 해." 아가씨가 말했다. "그리고 대문이 열려 있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데 있나 봐. 가축 우리 꼭대기에서 있는 힘껏 소리쳐 불렀는데도 대답을 안 했거든."
조지프는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아가씨가 너무나 진지해서 대꾸를 용납하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모자를 쓰고 투덜거리며 걸어 나갔다. 그사이 캐서린은 마룻바닥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외쳤다. "그 애가 어디 있을까. 대체 어디 있을 수 있을까! 내가 뭐라고 했지, 넬리? 잊어버렸어. 오늘 오후에 내가 성질부린 것 때문에 화가 났을까? 아, 내가 무슨 말을 해서 그 애를 속상하게 했는지 말해 줘! 그 애가 왔으면 좋겠어. 정말 왔으면 좋겠어!"
"별것도 아닌 일로 웬 법석이세요!" 나도 꽤 불안하면서도 이렇게 외쳤다. "별것도 아닌 일에 그렇게 놀라시다니요! 히스클리프가 달빛 아래 황야를 한 바퀴 거닐고 있든, 아니면 너무 토라져서 건초 다락에 누워 우리한테 말도 안 하든, 그게 그렇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잖아요. 틀림없이 거기 숨어 있을 거예요. 제가 찾아내나 못 찾아내나 보세요!"
나는 다시 찾으러 나갔지만 헛걸음이었고, 조지프가 찾아다닌 것도 마찬가지로 끝났다.
"저 녀석은 갈수록 고약해지는구먼!" 조지프가 다시 들어오며 말했다. "대문을 활짝 열어젖혀 놔서 아가씨 조랑말이 밀밭 두 두렁을 짓밟고 허우적허우적 곧장 풀밭까지 건너갔구려! 허나 두고 보시오, 내일 쥔 양반이 아주 난리를 칠 거고, 그래도 싸지. 쥔 양반은 저런 칠칠맞고 막돼먹은 것들한테 참을성 그 자체여. 참을성 그 자체라니께. 허나 늘 그렇지는 않을 거여. 두고 보면 다들 알게 될 거구먼! 괜히 쥔 양반 정신을 쏙 빼놓으면 못써!"
"히스클리프는 찾았어, 이 멍청이야?" 캐서린이 말을 끊었다. "내가 시킨 대로 그 애를 찾아보긴 했어?"
"차라리 말을 찾아보는 게 나았겄소." 조지프가 대답했다. "그게 더 이치에 맞지. 허나 이렇게 굴뚝처럼 시커먼 밤에는 말이고 사람이고 찾을 수가 없구먼! 게다가 히스클리프는 내 휘파람 소리에 올 놈이 아니여. 어쩌면 아가씨 소리는 덜 못 알아들을지도 모르지!"
여름치고는 정말로 몹시 어두운 저녁이어서, 구름은 곧 천둥을 칠 기세였고, 나는 비가 쏟아지면 더 애쓰지 않아도 틀림없이 그 애가 집으로 돌아올 테니 다들 그냥 앉아 있자고 했다. 그러나 캐서린은 아무리 달래도 마음을 가라앉히지 않고, 잠시도 쉬지 못할 만큼 안절부절못하며 대문에서 현관까지 이리저리 헤매다니더니, 마침내 길 가까운 담장 한쪽에 아예 자리를 잡고 섰다. 아가씨는 내가 아무리 말려도, 천둥이 우르릉거리고 굵은 빗방울이 둘레에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기 서서, 이따금 그 애를 부르고는 귀를 기울이다가 엉엉 울었다. 한바탕 격렬하게 우는 데에는 아가씨가 헤어턴이든 어떤 아이든 다 이겼다.
자정 무렵, 우리가 아직 깨어 앉아 있는데 폭풍이 맹렬한 기세로 하이츠를 덮쳤다. 천둥만이 아니라 사나운 바람까지 몰아쳤는데, 둘 중 어느 것이 그랬는지 건물 모퉁이의 나무 한 그루가 쪼개지면서 커다란 가지가 지붕을 가로질러 떨어져 동쪽 굴뚝 한쪽을 무너뜨렸고, 돌과 그을음이 부엌 화덕 속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우리는 벼락이 우리 한가운데 떨어진 줄 알았고, 조지프는 털썩 무릎을 꿇고, 주께서 노아와 롯 같은 족장들을 기억하시어 예전처럼 불경한 자들은 치시더라도 의로운 자들은 살려 주시라고 빌었다. 나도 이것이 우리에게 내린 심판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 마음속에서 요나는 언쇼 도련님이었으므로, 나는 도련님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고 그 소굴의 문손잡이를 흔들었다. 도련님은 똑똑히 들릴 만큼 대답을 했는데, 그 대답이 어찌나 고약했던지 내 동무는 자기 같은 성인과 주인 같은 죄인 사이에는 넓디넓은 차이가 있다고 아까보다 더 요란하게 외쳤다. 그러나 소동은 20분 만에 지나가고 우리는 모두 무사했다. 캐서린만은 예외였는데, 고집을 부리며 비를 피하려 들지 않고 모자도 숄도 없이 서서 머리칼과 옷으로 빗물을 할 수 있는 한 다 받아 내는 바람에 흠뻑 젖고 말았다. 아가씨는 들어오더니 젖은 몸 그대로 긴 의자에 누워, 얼굴을 등받이 쪽으로 돌리고 두 손으로 가렸다.
"아이고, 아가씨!" 나는 아가씨의 어깨를 건드리며 외쳤다. "죽기로 작정하신 건 아니겠지요? 지금 몇 시인 줄 아세요? 열두 시 반이에요. 자, 자, 주무세요! 그 어리석은 아이를 더 기다려 봐야 소용없어요. 기머턴으로 갔을 테고, 이제는 거기서 묵을 거예요.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우리가 기다리지 않을 거라고 짐작하겠지요. 아니, 적어도 힌들리 도련님만 깨어 있을 거라고 짐작하겠고, 주인이 문을 열어 주는 일은 피하고 싶을 거예요."
"아니여, 아니여, 그놈은 기머턴에 없구먼." 조지프가 말했다. "늪 구덩이 바닥에 처박혀 있다 해도 난 놀라지 않겄소. 이번 심판은 괜히 내린 게 아니여. 아가씨도 조심하는 게 좋겄소. 다음은 아가씨 차례일지도 모르니. 모든 일에 주께 감사할지어다! 택함을 받아 쓰레기 더미에서 골라낸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나니! 성경에 뭐라고 쓰였는지 다들 알잖소." 그러고는 성경 구절을 여럿 인용하기 시작하더니, 그 구절이 몇 장 몇 절에 있는지까지 일러 주었다.
나는 고집 센 아가씨에게 일어나 젖은 옷을 벗으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었으므로, 설교하는 조지프와 덜덜 떠는 아가씨를 두고 어린 헤어턴을 데리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헤어턴은 주위 사람들이 다 잠든 것처럼 곤히 잤다. 그 뒤로도 한동안 조지프가 성경을 읽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사다리를 오르는 느릿느릿한 발소리가 들렸고, 그러고는 나도 잠이 들었다.
여느 때보다 좀 늦게 내려와 보니, 덧문 틈새로 비쳐 드는 햇살 속에 캐서린 아가씨가 아직도 벽난로 가까이 앉아 있었다. 큰방 문도 조금 열려 있었고 닫지 않은 창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힌들리가 나와서 초췌하고 졸린 얼굴로 부엌 화로 앞에 서 있었다.
"어디 아프냐, 캐서린?" 내가 들어서자 도련님이 말하고 있었다. "물에 빠진 강아지처럼 처량해 보이는구나. 왜 그렇게 축축하고 창백하냐, 얘야?"
"비를 맞았어." 아가씨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리고 추워. 그게 다야."
"아, 아가씨가 말을 안 들어서 그래요!" 주인이 꽤 멀쩡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가 외쳤다. "어제저녁 소나기에 흠뻑 젖어서는 밤새 저기 앉아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꿈쩍을 안 하시잖아요."
언쇼 씨는 놀라서 우리를 쳐다보았다. "밤새라고." 도련님이 되풀이했다. "뭣 때문에 안 자고 있었지? 설마 천둥이 무서워서는 아니겠지? 그건 몇 시간 전에 끝났잖아."
우리 둘 다 히스클리프가 없어진 일은 숨길 수 있는 데까지 숨기고 싶었으므로, 나는 아가씨가 무슨 생각으로 밤을 새웠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아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침 공기는 상쾌하고 서늘해서, 내가 격자창을 활짝 열어젖히자 곧 정원의 달콤한 향기가 방 안에 가득 찼는데, 캐서린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엘렌, 창문 닫아. 추워 죽겠어!" 그러고는 이를 딱딱 부딪치며 거의 다 꺼져 가는 잉걸불 쪽으로 더 바싹 웅크렸다.
"아프구나." 힌들리가 아가씨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려 하지 않았나 보군. 빌어먹을! 이 집에서 또 병치레로 골치 썩고 싶지는 않아. 뭣 하러 빗속에 나갔어?"
"늘 그렇듯 사내놈들 꽁무니를 쫓아다녔지요!" 우리가 머뭇거리는 틈을 타서 조지프가 고약한 혀를 들이밀며 꺽꺽거렸다. "내가 쥔 양반이라면 양반이든 상놈이든 죄다 그 낯짝에다 대고 문짝을 쾅 닫아 버리겄소! 쥔 양반이 집을 비우는 날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저 린턴네 고양이 같은 놈이 살금살금 기어들고, 넬리 아가씨는, 참 훌륭한 계집애지! 부엌에 앉아 쥔 양반이 오나 망을 보고 있다가, 쥔 양반이 한쪽 문으로 들어오면 그놈은 다른 쪽 문으로 빠져나가고, 그러면 우리 잘난 마님은 마님대로 연애를 하러 나가시고! 밤 열두 시가 넘도록 그 더럽고 소름 끼치는 집시 마귀 히스클리프 놈하고 들판을 헤매고 다니다니, 참 훌륭한 행실이구려! 다들 내가 눈먼 줄 알지만, 천만에, 그렇지 않구먼! 젊은 린턴 놈이 오고 가는 것도 다 봤고, 너도 봤어." (나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이 쓸모없는 칠칠맞은 마녀야! 쥔 양반 말발굽 소리가 길을 따라 올라오는 소리만 들리면 냉큼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걸 말이여."
"닥쳐, 이 엿듣기나 하는 늙은이!" 캐서린이 외쳤다. "내 앞에서 건방지게 굴지 마! 오빠, 에드거 린턴은 어제 우연히 들른 거야. 그리고 그 사람을 돌려보낸 건 나야. 그런 꼴인 오빠가 그 사람을 만나면 좋아하지 않을 줄 알았으니까."
"거짓말이겠지, 캐서린." 오빠가 대답했다. "그리고 너는 지독한 바보야! 하지만 린턴은 지금은 됐다. 어젯밤 히스클리프하고 같이 있지 않았는지 말해 봐. 자, 사실대로 말해. 그놈한테 해가 갈까 봐 걱정할 것 없다는 건, 그놈이 여전히 밉긴 해도 얼마 전에 나한테 좋은 일을 해 줘서, 그놈 목을 부러뜨리는 데는 양심이 좀 걸리게 됐거든. 그러니 그런 일이 없도록 오늘 아침 당장 그놈을 쫓아낼 거다. 그놈이 가고 나면 너희는 모두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만큼 너희한테 쏟을 기운이 남을 테니까."
"나는 어젯밤 히스클리프를 보지도 못했어." 캐서린이 섧게 흐느끼기 시작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오빠가 그 애를 정말로 내쫓으면 나도 같이 갈 거야. 하지만 어쩌면 오빠는 그럴 기회도 없을지 몰라. 어쩌면 그 애는 가 버렸는지도 몰라." 여기서 아가씨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터뜨렸고, 나머지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힌들리는 아가씨에게 경멸에 찬 욕설을 퍼붓고는 당장 제 방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괜히 울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아가씨를 억지로 따르게 했는데, 방에 이르러 아가씨가 벌인 소동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만 겁에 질려서, 아가씨가 미쳐 가는 줄 알고 조지프에게 의사를 불러오라고 애원했다. 그것이 정신 착란의 시작이었다. 케네스 선생은 아가씨를 보자마자 위독하다고, 열병이라고 했다. 선생은 아가씨의 피를 뽑고 나서 유장(乳漿)과 묽은 귀리죽만 먹이고 아가씨가 계단 아래로나 창밖으로 몸을 던지지 않게 잘 지키라고 이르고는 가 버렸는데, 오두막 사이가 보통 2~3마일씩 떨어진 교구에서 선생은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상냥한 간호사였다고는 할 수 없고 조지프와 주인도 나을 게 없었으며, 우리 환자는 환자가 될 수 있는 한 가장 지겹고 고집 센 환자였지만, 아가씨는 고비를 넘겼다. 물론 늙은 린턴 부인이 여러 번 찾아와서 일을 바로잡아 주고 우리 모두를 꾸짖고 지시했으며, 캐서린이 몸을 추스르기 시작하자 기어이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로 데려가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해방된 것을 우리는 무척 고마워했다. 그러나 그 가엾은 부인은 그 친절을 후회할 까닭이 생겼으니, 부인과 남편이 둘 다 열병에 걸려 며칠 사이로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젊은 아가씨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건방지고 격하고 거만해져서 돌아왔다. 히스클리프는 그 폭풍우 치던 저녁 뒤로 소식이 끊겼는데, 어느 날 아가씨가 나를 몹시 약 올렸을 때, 나는 불행하게도 그 애가 사라진 게 아가씨 탓이라고 말해 버렸다. 실제로 아가씨 탓이었고 아가씨도 그걸 잘 알았으므로, 그때부터 몇 달 동안 아가씨는 그저 주인과 하인 사이의 일 말고는 나와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조지프도 따돌림을 받았다. 그는 기어이 제 생각을 말하고 아가씨를 어린 계집아이처럼 훈계하려 들었는데, 아가씨는 자기를 어른 여자이자 우리의 안주인으로 여겼고, 얼마 전에 앓은 병을 핑계로 남들이 자기를 조심스럽게 대해 주기를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사가 아가씨는 비위를 거스르는 일을 잘 견디지 못할 테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라고 했으니, 누가 감히 맞서서 대꾸라도 하면 아가씨 눈에는 그게 살인이나 다름없었다. 아가씨는 언쇼 도련님과 그 패거리와는 거리를 두었다. 오빠는 케네스에게 단단히 일러받은 데다, 화를 낼 때마다 자주 뒤따르는 발작이 무섭기도 해서, 아가씨가 무엇을 요구하든 다 들어주었고 그 불같은 성미를 건드리는 일은 대체로 피했다. 도련님은 아가씨의 변덕을 지나치게 받아 주었는데, 그것은 애정이 아니라 자존심 때문이었다. 아가씨가 린턴 집안과 혼인을 맺어 가문을 빛내는 것을 간절히 보고 싶었으므로, 아가씨가 자기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우리를 노예처럼 짓밟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에드거 린턴은 그 앞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고 그 뒤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처럼 아가씨에게 홀딱 빠져 있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세 해 뒤, 아가씨를 데리고 기머턴 예배당으로 들어가던 날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나는 몹시 내키지 않았지만 설득을 당해 워더링 하이츠를 떠나 아가씨를 따라 이리로 왔는데, 그때 어린 헤어턴은 다섯 살이 다 되어 가던 참이었고, 나는 막 그 애에게 글자를 가르치기 시작한 터였다. 우리는 서글프게 헤어졌지만 캐서린의 눈물이 우리 눈물보다 힘이 셌다.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하고 아무리 졸라도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자, 아가씨는 남편과 오빠에게 가서 울며 하소연했다. 남편은 내게 후한 품삯을 주겠다고 했고, 오빠는 이제 안주인도 없으니 집에 여자는 필요 없다면서, 헤어턴은 머지않아 부목사가 맡아 가르칠 거라며 짐을 싸라고 명령했다. 그러니 나에게는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나는 주인에게 점잖은 사람을 다 쫓아내면 조금 더 빨리 망할 뿐이라고 말해 주고는, 헤어턴에게 입을 맞추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 뒤로 그 애는 나에게 남이 되었다.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일이지만, 그 애는 틀림없이 엘렌 딘이라는 사람을 까맣게 잊어버렸을 거예요. 한때 그 애가 엘렌 딘에게 온 세상보다 더 소중했고 엘렌 딘이 그 애에게 그랬다는 것까지도요!
이야기가 여기에 이르렀을 때 가정부는 우연히 굴뚝 위의 시계를 흘끗 보았고, 분침이 한 시 반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부인은 일 초도 더 머물 수 없다고 했는데, 사실 나도 그 뒷이야기는 미루고 싶은 마음이 꽤 들었다. 이제 부인은 자러 사라졌고, 나는 한두 시간 더 생각에 잠겨 있었으니, 머리와 팔다리가 쑤시도록 나른하지만 용기를 내어 나도 자러 가야겠다.
주
1. 고대 그리스 크로톤의 이름난 씨름꾼. 전설에 따르면 늙어서 갈라진 나무둥치를 맨손으로 쪼개려다 손이 끼어 빠지지 못하고 늑대에게 잡아먹혔다. 캐서린은 둘 사이를 억지로 가르려는 자는 그렇게 끼어 죽게 될 거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