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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제2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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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이레가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하루가 갈 때마다 에드거 린턴의 상태는 이제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기울었다. 앞서 몇 달에 걸쳐 일어난 허물어짐이 이제는 몇 시간 사이에 그대로 되풀이되었다. 우리는 캐시를 될 수 있는 한 오래 속여 두고 싶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아가씨의 마음이 스스로 속기를 마다했다. 아가씨는 남몰래 짐작했고 그 끔찍한 가능성을 곱씹었으며, 그 가능성은 차츰 확신으로 무르익어 갔다. 목요일이 돌아왔을 때 아가씨는 말을 타고 나갈 일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다. 내가 대신 그 이야기를 꺼내 아가씨를 바깥에 내보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냈다. 아버지가 날마다 잠깐씩, 그러니까 앉아 버틸 수 있는 그 짧은 동안만 머무는 서재와 아버지의 침실이 아가씨의 온 세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가씨는 아버지의 베개 위로 몸을 숙이고 있거나 곁에 앉아 있지 못하는 순간이면 1분 1초를 아까워했다. 밤을 새우고 슬퍼하느라 얼굴이 해쓱해졌다. 주인은 그 나들이가 즐겁게 바람을 쐬고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될 거라고 스스로 믿으며 기꺼이 딸을 내보냈고, 이제 자기가 죽더라도 딸이 아주 혼자 남지는 않을 거라는 희망에서 위안을 얻었다.

주인이 이따금 흘리는 말 몇 마디로 미루어 보건대, 주인은 조카가 생김새가 자기를 닮았으니 마음씨도 자기를 닮았을 거라고 굳게 믿는 듯했는데, 린턴의 편지에는 그 애의 모자란 성품이 거의, 아니 전혀 드러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용서받을 만한 마음 약함에서 그 잘못 생각을 바로잡지 않았고, 이제 와서 손쓸 힘도 기회도 없는 소식을 들려주어 마지막 시간을 어지럽혀 봐야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느냐고 스스로 물었다.

우리는 나들이를 오후로 미루었는데, 팔월의 금빛 오후였고,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 한 줄기가 생기로 가득해서, 그 바람을 들이마시는 사람이면 죽어 가는 사람이라도 다시 살아날 것만 같았다. 캐시의 얼굴은 꼭 그 풍경 같아서 그늘과 햇살이 번갈아 빠르게 스쳐 갔지만, 그늘은 오래 머물렀고 햇살은 금세 사라졌으며, 가엾은 그 작은 가슴은 잠깐이나마 근심을 잊었다는 것조차 스스로 나무랐다.

린턴은 지난번에 골라 둔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아가씨는 말에서 내리더니, 아주 잠깐만 있다 갈 작정이니 나는 조랑말을 붙잡고 말 위에 그대로 있는 게 낫겠다고 했지만, 나는 내게 맡겨진 아가씨를 한순간이라도 눈 밖에 두는 모험은 하고 싶지 않아서 따르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함께 히스 비탈을 올라갔다. 히스클리프 도련님은 이번에는 더 들뜬 기색으로 우리를 맞았는데, 기운이 나서 들뜬 것도 아니고 기뻐서 들뜬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오히려 겁에 질린 쪽에 가까워 보였다.

"늦었네!" 린턴은 짧게, 힘겹게 말했다. "외삼촌이 많이 편찮으신 거 아니야? 안 올 줄 알았어."

"왜 솔직하게 말을 못 해?" 캐시가 인사말을 삼키고 소리쳤다. "내가 오는 게 싫다고 왜 대놓고 말을 못 하냐고? 이상하잖아, 린턴, 두 번이나 일부러 나를 여기까지 불러내 놓고는 보아하니 우리 둘 다 괴롭히는 것 말고는 아무 까닭도 없잖아!"

린턴은 몸을 떨며 반은 애원하고 반은 부끄러워하는 눈으로 캐시를 흘끗 보았지만, 그 사촌은 이 알 수 없는 행동을 참아 줄 만큼 참을성이 많지 않았다.

"우리 아빠는 정말 많이 편찮으셔." 캐시가 말했다. "그런데 왜 나를 아빠 머리맡에서 불러내는 거야? 내가 약속을 안 지켰으면 싶었으면 약속은 없던 일로 하자고 왜 기별을 안 했어? 자! 설명해 봐. 장난이고 놀이고 지금 내 머릿속에서는 싹 지워졌으니까, 이제는 네 꾸민 짓에 비위를 맞춰 줄 수가 없어!"

"내가 꾸민 짓이라니!" 린턴이 중얼거렸다. "그게 뭔데? 제발, 캐시, 그렇게 화난 얼굴 하지 마! 얼마든지 나를 경멸해, 나는 쓸모없고 비겁한 못난이라서 아무리 업신여김을 받아도 모자라지만, 네가 화를 낼 가치도 없는 하찮은 놈이야. 우리 아버지를 미워하고, 나는 경멸만 하고 봐줘."

"말도 안 되는 소리!" 캐시가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바보 같은, 어리석은 녀석! 저것 봐! 내가 정말로 손이라도 댈 것처럼 벌벌 떨잖아! 경멸해 달라고 부탁할 필요도 없어, 린턴, 누구라도 저절로 너를 경멸해 줄 테니까. 저리 가! 난 집에 갈 거야. 너를 난롯가에서 끌어내고 무슨 시늉을…… 우리가 무슨 시늉을 하는 거지? 내 치마 놔! 네가 울고 그렇게 겁에 질린 꼴을 하는 게 딱해서 내가 동정을 한다 해도 너는 그런 동정은 걷어차 버려야 해. 엘렌, 이런 짓이 얼마나 창피한 건지 얘한테 말해 줘. 일어나, 비천한 버러지처럼 굴지 마. 그러지 마!"

린턴은 눈물로 얼굴이 범벅이 되고 괴로움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기운 없는 몸뚱이를 땅바닥에 내던져 놓고 있었는데, 극심한 공포에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아!" 린턴이 흐느꼈다. "못 견디겠어! 캐시, 캐시, 나는 배신자이기도 한데 감히 너한테 말을 못 하겠어! 그래도 네가 나를 두고 가면 나는 죽임을 당할 거야! 사랑하는 캐시, 내 목숨이 네 손에 달렸어, 그리고 너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니까 정말 그렇다면 너한테 해가 될 일은 없을 거야. 그럼 안 갈 거지? 친절하고 착하고 다정한 캐시! 그리고 어쩌면 네가 승낙해 줄지도 몰라, 그러면 그 사람이 내가 너랑 같이 죽게 해 줄 거야!"

우리 아가씨는 그 애가 몹시 괴로워하는 꼴을 보고는 일으켜 주려고 허리를 굽혔다. 너그럽게 감싸 주던 예전의 다정한 마음이 짜증을 이겨 내자, 아가씨는 마음이 깊이 흔들리고 덜컥 겁이 났다.

"뭘 승낙해?" 아가씨가 물었다. "여기 있는 거? 이 이상한 말이 무슨 뜻인지 말해 주면 있을게. 너는 네가 한 말을 네가 뒤집어서 나를 미치게 해! 침착하게, 솔직하게, 마음을 짓누르는 걸 당장 다 털어놔. 넌 나를 해치지 않을 거지, 린턴, 그렇지? 막을 수만 있다면 어떤 원수도 나를 다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지? 너 자신을 위해서라면 겁쟁이라고 믿어 줄 수 있지만, 가장 친한 친구를 배신하는 겁쟁이라고는 믿지 않을래."

"하지만 아버지가 나를 협박했어." 소년은 바싹 여윈 손가락을 맞잡으며 숨을 헐떡였다. "난 아버지가 무서워, 무섭단 말이야! 감히 말을 못 하겠어!"

"아, 그래!" 캐시가 경멸 섞인 동정을 담아 말했다. "네 비밀은 너나 지켜, 나는 겁쟁이가 아니니까. 너나 몸 사려. 나는 무섭지 않아!"

캐시가 이렇게 너그럽게 나오자 그 애는 도리어 울음이 터져서, 자기를 붙들어 주는 캐시의 손에 입을 맞추며 미친 듯이 울었지만 털어놓을 용기는 끝내 내지 못했다. 나는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곰곰이 따져 보면서, 내가 막을 수 있는 한 캐시가 그 애에게든 다른 누구에게든 득이 되자고 괴로움을 당하는 일은 절대 없게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때 히스 덤불 사이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어 보니 히스클리프 씨가 하이츠에서 내려와 거의 우리 코앞에 와 있었다. 린턴의 흐느낌이 들릴 만큼 가까이 있었는데도 히스클리프 씨는 내 일행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대신 다른 누구에게도 쓰지 않는 거의 정다운 말투로 나를 불렀는데, 나는 그 진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 집 이렇게 가까이에서 너를 보다니 반가운 일이로군, 넬리. 그레인지는 어떻게 지내? 어디 들어 보자. 소문에는," 그는 목소리를 낮춰 덧붙였다. "에드거 린턴이 임종 자리에 누웠다던데, 다들 병을 부풀려 말하는 건가?"

"아니요, 주인 나리는 돌아가시는 중이에요." 내가 대답했다.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우리 모두에게는 슬픈 일이겠지만 그분께는 복이지요!"

"얼마나 더 버틸 것 같아?" 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그는 두 젊은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은 그의 눈길 아래 붙박여 있었는데, 린턴은 감히 몸을 움직이거나 고개를 들 엄두도 못 내는 것 같았고 캐시는 그 애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걸 묻는 건, 저기 저 녀석이 기어이 나를 이겨 먹을 작정인 것 같으니 외삼촌이 서둘러서 저 녀석보다 먼저 가 주면 고맙겠기 때문이야! 이봐! 저 강아지 새끼가 저 짓을 오래 했나? 질질 짜는 버릇에 대해서는 내가 따끔하게 가르쳤는데 말이야. 저 녀석이 린턴 아가씨하고 있을 때 대개 꽤 생기가 있어?"

"생기요? 아니요, 몹시 괴로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어요." 내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엔 언덕에서 애인하고 거닐 게 아니라 침대에 누워서 의사한테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아요."

"하루 이틀 안에 그렇게 될 거야." 히스클리프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전에…… 일어나, 린턴! 일어나!" 그가 고함쳤다. "거기 땅바닥에서 기지 말고 일어나, 당장!"

린턴은 또다시 어찌할 수 없는 공포의 발작에 휩싸여 땅에 엎어져 있었는데, 아마 아버지가 자기 쪽을 쳐다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그 애를 그토록 비굴하게 만들 것은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린턴은 시키는 대로 하려고 몇 번이나 애를 썼지만 얼마 안 되는 기운이 그 순간 싹 꺼져 버려서 신음을 내며 도로 쓰러졌고, 히스클리프 씨가 다가가 그 애를 들어 올려 뗏장 둔덕에 기대 앉혔다.

"자." 그는 사나운 기운을 억누르며 말했다. "나는 지금 화가 나기 시작했으니 네가 그 못난 기를 다잡지 못하면…… 빌어먹을 녀석! 당장 일어나!"

"일어날게요, 아버지." 린턴이 헐떡였다. "그냥 가만 놔두세요, 안 그러면 기절할 것 같아요. 저는 분명히 시키신 대로 했어요. 캐시가 말해 줄 거예요, 제가…… 제가…… 즐겁게 지냈다고요. 아! 내 곁에 있어 줘, 캐시, 손 좀 줘."

"내 손을 잡아." 아버지가 말했다. "제 발로 서. 그래, 이제 됐다, 이 아가씨가 팔을 빌려줄 거다. 그렇지, 이 아가씨를 보라고. 린턴 아가씨, 저 녀석이 저렇게 질겁하는 걸 보면 내가 악마인 줄 알겠군. 미안하지만 저 녀석하고 같이 집까지 걸어가 주겠어? 내가 손을 대면 저 녀석은 벌벌 떨거든."

"린턴, 얘." 캐시가 속삭였다. "나는 워더링 하이츠에 못 가. 아빠가 가지 말라고 하셨어. 저분은 너를 해치지 않을 텐데 왜 그렇게 무서워해?"

"나는 다시는 그 집에 못 들어가." 린턴이 대답했다. "너 없이는 다시 들어가면 안 된단 말이야!"

"그만!" 그 아버지가 소리쳤다. "캐시가 딸로서 지키려는 도리는 존중해 주지. 넬리, 네가 이 녀석을 데리고 들어가. 의사 문제는 네 말대로 당장 하마."

"그러시면 잘하시는 거지요."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저는 아가씨 곁에 있어야 해요. 아드님을 돌보는 건 제 일이 아니에요."

"고집 한번 세군, 그건 나도 알아." 히스클리프가 말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는 네 자비심을 움직이려고 내가 아기를 꼬집어서 울리기라도 해야겠어. 자, 그럼 우리 영웅, 내가 데려다주면 돌아갈 생각이 있나?"

그는 다시 한번 다가가 그 연약한 것을 낚아챌 듯한 시늉을 했지만, 린턴은 움츠러들며 사촌에게 매달려서, 도저히 거절할 수 없을 만큼 미친 듯이 졸라 대며 같이 가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못마땅했지만 아가씨를 말릴 수 없었는데, 사실 아가씨 자신인들 어떻게 그 애를 뿌리칠 수 있었겠는가? 무엇이 그 애를 그토록 공포로 채우고 있는지 우리로서는 알아낼 길이 없었지만, 그 애는 그 공포의 손아귀에 꼼짝없이 붙들려 있었고, 무엇이든 하나만 더 보태지면 충격으로 넋이 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우리는 문간에 이르렀다. 캐시가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아가씨가 병자를 의자에 앉혀 주고 곧장 나올 줄 알고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히스클리프 씨가 나를 앞으로 떠밀며 외쳤다. "우리 집에 역병이 든 건 아니야, 넬리. 그리고 오늘은 손님 대접을 좀 하고 싶은 기분이니까 앉아, 문은 내가 닫을 테니."

그는 문을 닫고 자물쇠까지 채웠다. 나는 흠칫 놀랐다.

"집에 가기 전에 차를 들고 가." 그가 덧붙였다. "나 혼자뿐이야. 헤어턴은 소 몇 마리를 끌고 리스에 갔고 질라와 조지프는 놀러 나갔으니, 나는 혼자 있는 데 익숙하지만 될 수만 있다면 재미있는 말동무가 있는 편이 낫지. 린턴 아가씨, 저 녀석 곁에 앉아. 내가 가진 걸 주는 거야, 받을 만한 선물은 못 되지만 그것 말고는 줄 게 없거든. 린턴 말이야. 저렇게 노려보는 것 좀 봐! 나를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만 보면 어째서 이렇게 잔인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어! 법이 덜 엄하고 사람들 입맛이 덜 까다로운 데서 태어났더라면 저녁 심심풀이로 저 두 녀석을 산 채로 천천히 해부하는 재미를 누렸을 텐데."

그는 숨을 들이켜고 탁자를 내리치더니 혼자 욕을 내뱉었다. "제기랄! 저것들이 미워."

"나는 당신이 하나도 안 무서워요!" 그 뒷말을 듣지 못한 캐시가 소리쳤다. 아가씨는 바싹 다가섰고, 그 검은 눈이 분노와 결심으로 번득였다. "그 열쇠 이리 줘요, 내가 가져야겠어요!" 아가씨가 말했다. "굶어 죽게 되더라도 나는 여기서 아무것도 안 먹고 안 마실 거예요."

히스클리프는 탁자 위에 얹어 둔 손에 열쇠를 쥐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는데, 아가씨의 대담함에 어쩐지 놀란 것 같기도 했고, 어쩌면 그 목소리와 눈빛을 보고 아가씨가 그것을 물려받은 사람을 떠올린 것 같기도 했다. 아가씨는 열쇠를 낚아채 느슨해진 손가락에서 반쯤은 빼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몸짓이 그를 현재로 불러들여서 그는 재빨리 열쇠를 되찾았다.

"자, 캐서린 린턴." 그가 말했다. "물러서, 안 그러면 때려눕힐 거야. 그러면 딘 부인이 미쳐 날뛰겠지."

캐시는 이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쇠를 쥔 그 주먹을 다시 붙잡았다. "우리는 기어이 갈 거예요!" 아가씨는 그 강철 같은 근육을 풀어 보려고 온 힘을 다하면서 되풀이했고, 손톱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자 이빨로 꽤 세게 물어뜯었다. 히스클리프가 나를 흘끗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에 나는 잠깐 끼어들지 못했다. 캐시는 그의 손가락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는 갑자기 손가락을 펴서 다툼거리를 내주었지만, 아가씨가 그것을 미처 제대로 쥐기도 전에 풀려난 손으로 아가씨를 붙잡아 무릎 위로 끌어당기고는 다른 손으로 아가씨의 머리 양쪽을 무섭게 연달아 후려쳤는데, 아가씨가 쓰러질 수만 있었다면 한 대 한 대가 다 그의 위협을 이루어 주고도 남았을 만큼 세찼다.

이 악마 같은 폭력을 보고 나는 미친 듯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 악당!" 나는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 악당아!" 가슴을 한 번 툭 건드리자 나는 말문이 막혔는데, 나는 몸이 뚱뚱해서 금세 숨이 차는 데다 그 때문에, 또 분해서 비틀비틀 어지럽게 뒷걸음질 쳤고, 숨이 막히거나 핏줄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일은 2분 만에 끝났고, 풀려난 캐시는 두 손을 관자놀이에 대고 귀가 붙어 있는지 떨어졌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가엾게도 아가씨는 갈대처럼 떨면서 넋이 나간 채로 탁자에 기대섰다.

"보다시피 나는 아이들 혼내는 법을 알지." 그 악당은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다시 주우려고 허리를 굽히며 험악하게 말했다. "이제 내가 말한 대로 린턴한테 가서 실컷 울어! 내일이면 내가 네 아버지가 될 거고 며칠 뒤면 너한테 남을 아버지는 나 하나뿐일 텐데, 그러면 이런 걸 실컷 맛보게 될 거다. 너는 약골이 아니니까 얼마든지 견딜 수 있을 테고, 네 눈에 또 그런 악마 같은 성깔이 보이기만 하면 날마다 맛보게 해 주마!"

캐시는 린턴이 아니라 나한테 달려와 무릎을 꿇고 화끈거리는 뺨을 내 무릎에 묻으며 소리 내어 울었다. 그 사촌은 긴 의자 한구석에 쥐 죽은 듯 웅크리고 있었는데, 장담하건대 그 벌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게 떨어진 것을 속으로 다행스러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히스클리프 씨는 우리가 모두 어쩔 줄 모르는 것을 보고는 일어나서 손수 날래게 차를 끓였다. 찻잔과 받침은 미리 차려져 있었고, 그는 차를 따라 나에게 한 잔을 건넸다.

"그 성질 좀 씻어 내려." 그가 말했다. "그리고 네 버릇없는 귀염둥이하고 내 귀염둥이한테도 따라 줘. 내가 끓이긴 했지만 독은 안 탔어. 나는 너희 말을 찾으러 나갔다 오겠다."

그가 나가자 우리는 맨 먼저 어디로든 억지로라도 빠져나갈 길을 찾으려 했다. 부엌문을 열어 보았지만 바깥에서 잠겨 있었고, 창을 살펴보았지만 캐시의 작은 몸집으로도 빠져나가기에는 너무 좁았다.

"린턴 도련님." 우리가 영락없이 갇혔다는 것을 알고 나는 소리쳤다. "도련님은 그 악마 같은 아버지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고 있으니 우리한테 말해야 해요, 안 그러면 그 사람이 사촌한테 한 것처럼 나도 도련님 따귀를 때릴 거예요."

"그래, 린턴, 말해야 해." 캐시가 말했다. "내가 온 건 너 때문이었는데 네가 말을 안 하겠다면 그건 지독한 배은망덕이야."

"차 좀 줘, 목말라, 그러면 말해 줄게." 린턴이 대답했다. "딘 부인은 저리 가요. 내 앞에 그렇게 버티고 서 있는 거 싫어요. 아이, 캐시, 너 내 잔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잖아. 그건 안 마실래, 다른 거 줘."

캐시는 다른 잔을 밀어 주고 얼굴을 훔쳤다. 그 못난 녀석이 이제 자기 몸이 겁날 일은 없어졌다고 태연해진 꼴을 보니 나는 구역질이 났다. 황야에서 보이던 괴로움은 그 애가 워더링 하이츠에 들어서자마자 가라앉았으므로, 나는 그 애가 우리를 거기까지 꾀어 오지 못하면 무시무시한 벌을 받을 거라는 위협을 받았고 그 일을 해내고 나자 당장은 더 겁날 것이 없어졌다고 짐작했다.

"아빠는 우리가 결혼하기를 바라." 린턴은 차를 몇 모금 홀짝인 뒤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희 아빠가 지금은 우리를 결혼시키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기다리다가는 내가 죽을까 봐 겁을 내니까, 우리는 아침에 결혼하고 너는 밤새 여기 있어야 하는데, 네가 아빠 뜻대로 하면 이튿날 집에 돌아가도 되고 나를 데리고 가도 돼."

"아가씨가 도련님을 데리고 간다고요, 이 딱한 허깨비 같으니!" 내가 외쳤다. "도련님이 결혼을 해요? 아니, 그 사람이 미쳤군요! 아니면 우리를 하나같이 바보로 아는 거예요. 그리고 그 예쁜 아가씨가, 그 튼튼하고 씩씩한 아가씨가 도련님처럼 시들어 가는 작은 원숭이한테 매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캐시 아가씨는 고사하고 누구든 도련님을 남편으로 삼으려 할 거라는 생각을 품고 있는 거예요? 그 비열하고 칭얼대는 술수로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매를 맞아야 해요. 그리고…… 이제 그렇게 바보 같은 얼굴은 하지 말아요! 그 비열한 배신하고 얼빠진 자만심 때문에라도 호되게 흔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나는 정말로 그 애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 바람에 기침이 터지자 그 애는 늘 써먹던 수단대로 앓는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고, 캐시는 나를 나무랐다.

"밤새 있으라고? 싫어." 캐시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엘렌, 저 문을 불태워서라도 나는 나갈 거야."

그리고 아가씨는 당장이라도 그 위협을 실행에 옮기려 했을 텐데, 린턴이 또다시 귀한 제 몸이 걱정되어 펄쩍 일어났다. 그 애는 힘없는 두 팔로 아가씨를 끌어안고 흐느꼈다. "나를 받아 주고 살려 주지 않을 거야? 나를 그레인지에 데려가지 않을 거야? 아, 사랑하는 캐시! 이제 와서 나를 두고 가 버리면 안 돼. 너는 우리 아버지 말을 들어야 해, 들어야 한단 말이야!"

"나는 우리 아버지 말을 들어야 해." 캐시가 대답했다. "그리고 이 지독한 애태움에서 아빠를 놓아 드려야 해. 밤새도록이라니! 아빠가 뭐라고 생각하시겠어? 벌써 걱정하고 계실 거야. 이 집을 부수든 불태우든 해서 길을 내고 나갈 거야. 조용히 해! 너는 아무 위험도 없지만 네가 나를 막으면…… 린턴, 나는 너보다 아빠를 더 사랑해!"

히스클리프 씨의 노여움이 죽도록 무서웠던지라 소년은 겁쟁이의 말솜씨를 되찾았다. 캐시는 거의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집에 가야 한다고 고집하며 이번에는 자기가 애원해 보았고, 제 몸만 생각하는 그 괴로움을 좀 억눌러 보라고 린턴을 달랬다. 두 사람이 그러고 있는 사이에 우리의 간수가 다시 들어왔다.

"너희 짐승들은 종종걸음으로 달아나 버렸어." 그가 말했다. "그리고…… 이런, 린턴! 또 질질 짜는 거냐? 이 아가씨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어? 자, 자, 그만하고 가서 자. 한두 달 지나면, 얘야, 이 아가씨가 지금 부리는 횡포를 네가 억센 손으로 되갚아 줄 수 있을 거다. 너는 그저 사랑 때문에 애가 타는 거지, 안 그래? 세상에 다른 건 하나도 바라지 않고 말이야. 이 아가씨는 너를 갖게 될 거다! 자, 가서 자! 오늘 밤엔 질라가 없으니 옷은 네가 벗어야 해. 쉿! 시끄러워! 네 방에 들어가면 나는 너한테 가까이 가지 않을 테니 겁낼 것 없어. 어쩌다 보니 꽤 잘 해냈구나,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마."

그는 아들이 지나가도록 문을 붙잡고 서서 이런 말을 했고, 아들은 자기를 돌보는 사람이 짓궂게 꽉 쥐어짤 속셈이 아닌지 의심하는 스패니얼이 빠져나가듯 꼭 그렇게 빠져나갔다. 자물쇠가 다시 채워졌다. 히스클리프는 아가씨와 내가 말없이 서 있는 난롯가로 다가왔다. 캐시는 고개를 들고는 저도 모르게 손을 뺨에 갖다 댔는데, 그가 가까이 오자 아픈 느낌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 어린애 같은 몸짓을 엄하게 바라보지 못했을 텐데, 그는 아가씨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아! 나를 안 무서워한다고? 용기를 아주 잘도 감춰 뒀구나, 지독하게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제는 무서워요." 아가씨가 대답했다. "내가 여기 있으면 아빠가 비참해지실 텐데, 아빠를 비참하게 만드는 걸 내가 어떻게 견뎌요, 아빠가…… 아빠가…… 히스클리프 씨, 나를 집에 보내 줘요! 린턴하고 결혼하겠다고 약속할게요. 아빠도 그러기를 바라실 거고 나도 린턴을 사랑해요. 내가 기꺼이 스스로 할 일을 왜 억지로 시키려고 하세요?"

"억지로 시킬 테면 시켜 보라지요." 내가 외쳤다. "이 나라에는 법이 있어요, 하느님 고맙게도! 있고말고요, 아무리 우리가 외진 곳에 산다 해도요. 내 친아들이라도 나는 고발할 거예요, 이건 성직자 특권으로도 면할 수 없는 중죄니까요!"

"닥쳐!" 그 불한당이 말했다. "그 시끄러운 소리는 악마한테나 가져가! 너더러 말하라고 한 적 없어. 린턴 아가씨, 네 아버지가 비참해할 생각을 하니 나는 아주 유쾌해서 흐뭇한 나머지 잠도 안 오겠어. 앞으로 스물네 시간 동안 네가 내 지붕 아래 묵게 만드는 데는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일러 주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을 너로서는 생각해 낼 수 없었을 거야. 린턴과 결혼하겠다는 약속 말인데, 그 약속을 이루기 전에는 이곳을 떠나지 못할 테니 네가 꼭 지키도록 내가 챙겨 주지."

"그럼 엘렌을 보내서 내가 무사하다고 아빠한테 알려 줘요!" 캐시가 서럽게 울며 외쳤다. "아니면 지금 당장 결혼시켜 줘요. 불쌍한 우리 아빠! 엘렌, 아빠는 우리가 길을 잃은 줄 아실 거야. 어떡하지?"

"그럴 리가! 네가 병구완에 지쳐서 잠깐 재미 좀 보려고 달아난 줄 알겠지." 히스클리프가 대답했다. "너는 그 사람이 하지 말라고 일렀는데도 그 말을 무시하고 제 발로 우리 집에 들어왔다는 걸 부인하지 못해. 네 나이에 재미를 찾는 것도, 병자를 돌보는 데 진력이 나는 것도 아주 당연한 일이고, 그 병자가 고작 네 아버지라면 더더욱 그렇지. 캐시, 네 날이 시작될 때 그 사람의 가장 행복한 날은 끝났어. 장담하건대 그 사람은 네가 세상에 나왔다고 너를 저주했을 테니(적어도 나는 저주했어)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서 너를 저주한다면 딱 맞아떨어지겠지. 나도 같이 저주해 주마.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내가 어떻게 그러겠어? 실컷 울어. 내가 보기에는 린턴이 다른 잃은 것들을 갚아 주지 않는 한 앞으로 그게 네 으뜸가는 낙이 될 텐데, 너의 그 앞날을 내다보는 아비는 린턴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모양이야. 그 사람이 보낸 충고와 위로의 편지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 마지막 편지에서는 내 보물한테 자기 보물을 아껴 주고 손에 넣으면 잘해 주라고 당부하더군. 아껴 주고 잘해 주라니, 그거 참 아비다운 말이지. 하지만 린턴은 제가 가진 아낌과 다정함을 몽땅 제 몸에 써야 할 판이야. 린턴은 꼬마 폭군 노릇을 잘해서, 고양이 이빨을 뽑고 발톱을 깎아 주기만 하면 몇 마리든 맡아서 괴롭힐 녀석이지. 집에 돌아가면 외삼촌한테 그 녀석의 다정함에 대해 근사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거다, 장담하지."

"그 말은 맞네요!" 내가 말했다. "아드님 성품이 어떤지 밝혀 보세요. 나리를 얼마나 닮았는지 보여 주시면 캐시 아가씨도 그 괴물 뱀을 받아들이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겠지요!"

"이 아가씨는 그 녀석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너희 주인이 죽을 때까지 너하고 같이 갇혀 지내든지 둘 중 하나니까, 이제는 그 녀석의 훌륭한 점을 말해 줘도 별로 상관없어." 그가 대답했다. "너희 둘을 여기에 감쪽같이 잡아 둘 수 있어. 못 믿겠으면 저 아가씨더러 약속을 물리라고 부추겨 봐, 그러면 판단할 기회가 생길 테니!"

"약속은 물리지 않겠어요." 캐시가 말했다. "그다음에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에 가도 된다면 한 시간 안에라도 결혼하겠어요. 히스클리프 씨, 당신은 잔인한 사람이지만 마귀는 아니니까 그저 심술만으로 내 행복을 돌이킬 수 없게 다 망가뜨리지는 않을 거예요. 내가 일부러 아빠를 버리고 떠났다고 아빠가 생각하시고, 내가 돌아가기 전에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내가 살아갈 수 있겠어요? 우는 건 그만뒀지만 여기 당신 무릎 앞에 꿇어앉을 거고, 당신이 나를 마주 볼 때까지 일어나지도 않고 당신 얼굴에서 눈을 떼지도 않을 거예요! 아니요, 고개 돌리지 마세요! 좀 보세요! 화나게 할 건 하나도 안 보일 거예요.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요. 나를 때린 것도 화나지 않아요. 고모부는 평생 누구도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한 번도요? 아! 한 번은 봐 주셔야 해요. 나는 이렇게 비참하니까 고모부도 안쓰럽고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그 도롱뇽 같은 손가락 치우고 비켜, 안 그러면 걷어차 버릴 테다!" 히스클리프가 아가씨를 사납게 밀쳐 내며 소리쳤다. "차라리 뱀한테 안기는 게 낫겠다. 대체 무슨 수로 나한테 아양을 떨 꿈을 꾸는 거야? 나는 네가 질색이야!"

그는 어깨를 으쓱하다 못해 혐오감에 살갗에 소름이라도 돋은 것처럼 아예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의자를 뒤로 밀쳤고, 그사이 나는 일어나서 욕을 한바탕 퍼부어 주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한 마디만 더 하면 나를 방에 따로 가둬 버리겠다는 으름장에 나는 첫 문장 중간에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는데, 정원 문간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주인은 즉시 서둘러 나갔는데, 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2~3분 동안 이야기 소리가 나더니 그는 혼자 돌아왔다.

"나는 아가씨 사촌 헤어턴인 줄 알았어요." 내가 캐시에게 말했다. "그 사람이 와 주면 좋겠는데! 혹시 우리 편을 들어 줄지 누가 알아요?"

"그레인지에서 너희를 찾으라고 보낸 하인 세 명이었어." 히스클리프가 내 말을 엿듣고 말했다. "격자창을 열고 소리를 질렀어야지. 하지만 장담하건대 저 계집애는 네가 그러지 않아서 기뻐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여기 남게 되어서 좋아하는 거야, 틀림없이."

놓쳐 버린 기회를 알고 나자 우리 둘은 걷잡을 수 없이 서러움을 쏟아 냈고, 그는 아홉 시까지 우리가 울부짖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고는 부엌을 지나 위층 질라의 방으로 올라가라고 했고, 나는 어쩌면 거기 창으로 빠져나가거나 다락으로 올라가 지붕 채광창으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말을 따르자고 아가씨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그 방 창도 아래층 창처럼 좁았고, 다락 들창은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끄떡없었는데, 아까처럼 이번에도 바깥에서 문이 잠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둘 다 눕지 않았고, 캐시는 격자창 곁에 자리를 잡고 애타게 아침을 기다렸고, 좀 쉬어 보라고 내가 아무리 거듭 빌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깊은 한숨뿐이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며 내가 저지른 수많은 직무 소홀을 모질게 꾸짖었는데, 그때는 내 주인들의 불행이 모두 거기서 비롯된 것만 같았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알지만, 그 음산한 밤 내 머릿속에서는 그랬고, 나는 히스클리프보다 내가 더 죄가 많다고 생각했다.

일곱 시에 그가 와서 린턴 아가씨가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아가씨는 곧장 문으로 달려가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럼 이리 와." 그는 문을 열고 아가씨를 끌어냈다. 나도 따라 나가려고 일어났지만 그는 다시 자물쇠를 잠갔고, 나는 풀어 달라고 요구했다.

"참아." 그가 대답했다. "조금 있다가 아침을 올려 보낼 테니."

나는 문짝을 두드리고 걸쇠를 사납게 덜컹거렸고, 캐시가 왜 엘렌은 아직도 가둬 두느냐고 묻자 그는 내가 한 시간만 더 참아야 한다고 대답했고, 두 사람은 가 버렸다. 나는 두세 시간을 참았고, 마침내 발소리가 들렸는데 히스클리프의 발소리는 아니었다.

"먹을 거 가져왔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말했다. "문 열어!"

나는 얼른 문을 열었고, 헤어턴이 하루 종일 먹고도 남을 만큼 음식을 잔뜩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받아." 그는 쟁반을 내 손에 떠안기며 덧붙였다.

"잠깐만 있어 봐." 내가 말을 꺼냈다.

"싫어." 그는 소리치고는, 붙잡아 두려고 내가 쏟아 내는 온갖 애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러갔다.

그렇게 나는 그날 하루 종일, 그리고 이튿날 밤 내내, 또 그다음, 또 그다음 날까지 갇혀 있었다. 모두 합쳐 닷새 밤 나흘 낮을 갇혀 지내며 아침마다 한 번씩 오는 헤어턴 말고는 아무도 보지 못했는데, 헤어턴은 간수의 본보기여서 무뚝뚝하고 말이 없고, 그의 정의감이나 동정심을 움직여 보려는 어떤 시도에도 귀를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