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은둔 생활의 첫걸음치고는 참 근사하기도 하다! 넉 주 동안 이어진 고문과 뒤척임과 앓는 소리! 아, 이 살을 에는 바람과 매서운 북녘 하늘, 지나갈 수 없는 길, 굼뜨기 짝이 없는 시골 의사들! 아, 사람 얼굴 구경 한번 하기 어려운 이 가뭄! 그리고 무엇보다 고약한 것은, 봄이 오기 전에는 바깥에 나갈 생각을 아예 말라는 케네스의 무시무시한 선고다!
히스클리프 씨가 방금 나를 찾아 주는 영광을 베풀었다. 이레쯤 전에는 뇌조 한 쌍을 보내왔는데, 이 철의 마지막 뇌조였다. 고약한 사람! 내가 이렇게 앓아눕게 된 데에는 그도 아주 죄가 없지 않으니, 그 말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아아! 내 머리맡에 꼬박 한 시간이나 앉아서 알약과 물약, 고약과 거머리 말고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나눠 줄 만큼 자비로운 사람의 비위를 어찌 거스를 수 있었겠는가? 지금은 몸이 꽤 편한 틈이다. 책을 읽기에는 기운이 너무 없지만 무언가 흥미로운 것이라면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니, 딘 부인을 불러 올려 이야기를 마저 듣는 게 어떨까? 부인이 이야기한 데까지는 큰 줄거리를 기억할 수 있다. 그렇다. 주인공은 달아나서 세 해 동안 소식이 끊겼고, 여주인공은 시집을 갔다. 종을 울려야겠다. 내가 기운차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을 보면 부인은 기뻐하리라. 딘 부인이 왔다.
"약 드실 시간까지 20분 남았어요, 나리." 부인이 말을 꺼냈다.
"치우시오, 그런 건 치워 버리시오!" 내가 대답했다. "나는 그보다……"
"의사 선생님이 가루약은 이제 끊으셔야 한대요."
"기꺼이 그러지요! 내 말을 끊지 마시오. 이리 와서 여기 앉으시오. 그 쓰디쓴 약병 부대에는 손가락도 대지 마시오. 주머니에서 뜨개질감을 꺼내시오. 그렇지, 됐소. 자, 이제 히스클리프 씨의 내력을 부인이 멈춘 데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서 들려주시오. 그는 대륙에서 교육을 마치고 신사가 되어 돌아왔소? 아니면 대학에서 잡일을 해 주고 학비를 면제받는 가난한 학생 자리라도 얻었소? 아니면 아메리카로 달아나, 자기를 길러 준 나라의 피를 흘리게 해서 공을 세웠소, 아니면 잉글랜드의 큰길에서 노상강도 노릇을 해서 더 빨리 한밑천을 잡았소?"
"그 일을 다 조금씩 했을지도 모르지요, 록우드 나리. 하지만 어느 쪽이라고도 장담은 못 드려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저는 모르고, 깊이 빠져 있던 그 야만스러운 무지에서 무슨 수로 정신을 끌어올렸는지도 몰라요.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그리고 나리께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으시겠다면, 제 나름대로 이야기를 이어 가겠어요. 오늘 아침엔 좀 나으세요?"
"훨씬."
"그거 반가운 소식이네요."
나는 캐서린 아가씨를 모시고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로 옮겨 왔다. 그런데 반갑게도 내 걱정은 보기 좋게 빗나가, 아가씨는 내가 감히 바랐던 것보다 훨씬 얌전하게 굴었다. 아가씨는 린턴 씨를 지나치다 싶을 만큼 따랐고 시누이에게도 다정한 마음을 듬뿍 보였으며, 물론 두 사람 쪽에서도 아가씨가 편하도록 정성껏 보살폈다. 가시나무가 인동덩굴에게 고개를 숙인 게 아니라 인동덩굴이 가시나무를 끌어안은 꼴이었다. 서로 물러서 주는 일 없이 한쪽은 꼿꼿이 서 있고 다른 쪽들이 굽혔으니, 맞서는 사람도 없고 본체만체하는 사람도 없는데 누가 심술을 부리고 성을 낼 수 있겠는가? 내가 보니 주인은 마님의 기분을 건드릴까 봐 마음 깊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주인은 그 두려움을 마님에게는 감추었지만, 내가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소리를 듣거나 다른 하인이 마님의 오만한 분부에 낯빛이 흐려지는 것을 보기라도 하면, 제 일로는 한 번도 어두워진 적이 없는 얼굴을 언짢게 찌푸려 속을 드러냈다. 주인은 내가 말대꾸를 한다고 몇 번이나 엄하게 나무랐고, 칼에 깊이 찔려도 아내가 속상해하는 것을 볼 때만큼 아프지는 않을 거라고 힘주어 잘라 말했다. 착한 주인을 슬프게 하지 않으려고 나는 덜 발끈하는 법을 배웠고, 그리하여 꼬박 반년 동안 화약은 모래처럼 얌전히 누워 있었다. 불씨가 가까이 오지 않으니 터질 일도 없었다. 마님은 이따금 침울해져 말이 없어지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남편은 그것을 위험한 큰 병을 앓은 뒤로 몸이 바뀐 탓이라 여기고, 안타까워하며 말없이 그 침묵을 존중해 주었다. 마님은 전에는 우울에 빠지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볕이 들면 남편도 볕으로 화답하며 반겼다. 두 사람은 정말로 깊고 나날이 커 가는 행복을 누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 행복은 끝났다. 하기야 길게 보면 사람은 누구나 제 몸부터 챙기기 마련이다. 순하고 너그러운 사람은 휘어잡는 사람보다 제 몫을 좀 더 정당하게 챙길 뿐이다. 그리고 그 행복은, 저마다 자기 이익이 상대의 마음속에서 으뜸가는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일이 돌아가는 형편 때문에 절로 느끼게 되었을 때 끝났다. 9월의 어느 부드러운 저녁, 나는 따 모은 사과를 무거운 바구니에 담아 들고 뜰에서 돌아오고 있었는데, 날은 어둑어둑했고, 달이 안뜰의 높은 담 너머로 넘어다보며 여기저기 튀어나온 건물 모서리마다 흐릿한 그림자를 숨어들게 했다. 나는 짐을 부엌문 옆 돌계단에 내려놓고 쉬느라 잠시 머뭇거리며 부드럽고 달콤한 공기를 몇 모금 더 들이마셨다. 눈은 달에 가 있고 등은 문 쪽으로 돌린 채였는데,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넬리, 거기 넬리야?"
굵고 낯선 억양의 목소리였다. 그런데도 내 이름을 부르는 품에 무언가 귀에 익은 데가 있었다. 나는 누가 말했는지 알아보려고 겁에 질려 돌아섰다. 문은 모두 닫혀 있었고, 계단으로 다가올 때는 아무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관 안쪽에서 무엇이 꿈틀하기에 더 다가가 보니, 검은 옷을 입고 얼굴도 머리칼도 검은 키 큰 사내가 제 손으로 문을 열 작정인 듯 걸쇠에 손가락을 걸친 채 문설주에 기대어 있었다. '누굴까?' 나는 생각했다. '언쇼 나리? 아냐, 아니야! 목소리가 전혀 다른걸.'
"여기서 한 시간을 기다렸어." 내가 여전히 멍하니 쳐다보는 동안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그동안 내내 사방이 죽은 듯이 고요하더군. 들어갈 엄두가 안 났어. 날 몰라보겠어? 봐, 낯선 사람이 아니야!"
빛 한 줄기가 사내의 얼굴에 떨어졌는데, 뺨은 누르스름하고 절반은 검은 구레나룻에 덮여 있었으며, 눈썹은 낮게 처졌고 눈은 움푹 들어간 데다 기이했다. 나는 그 눈을 기억했다.
"아니!" 나는 외쳤다. 이 세상 사람으로 보아야 할지 어쩔지 몰라 나는 놀라서 두 손을 쳐들었다. "아니! 돌아온 거예요? 정말 그쪽이에요? 정말요?"
"그래, 히스클리프야." 그가 대답하며 나에게서 창 쪽으로 눈을 들었다. 창마다 반짝이는 달이 스무 개쯤 비쳐 있었지만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없었다. "집에들 있어? 그 애는 어디 있지? 넬리, 넌 반갑지 않구나! 그렇게 허둥댈 것 없어. 그 애 여기 있어? 말해! 한마디만 하고 싶어. 너희 마님하고. 가서 기머턴에서 누가 뵙기를 청한다고 전해."
"마님이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나는 외쳤다. "어떻게 하실까? 나도 놀라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마님은 아주 넋이 나가실 거예요! 그런데 정말 히스클리프 맞군요! 이렇게 변하다니요! 아니, 도무지 모르겠어요. 군인이라도 됐었어요?"
"가서 내 말이나 전해." 그가 참지 못하고 말을 끊었다. "네가 전할 때까지 난 지옥에 있는 거야!"
그가 걸쇠를 들어 주어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주인 내외가 있는 거실 앞에 이르자 도저히 들어갈 마음이 나지 않아서, 한참 만에야 촛불을 켤지 여쭙는다는 핑계를 대기로 하고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격자창을 벽 쪽으로 활짝 젖혀 놓은 창가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창 너머로는 뜰의 나무들과 푸르고 거친 영지 너머로 기머턴 골짜기가 펼쳐져 있었고, 기다란 안개 띠가 구불구불 거의 골짜기 꼭대기까지 감겨 올라가 있었다(나리도 보셨겠지만, 예배당을 지나자마자 늪에서 흘러나오는 도랑이 골짜기 굽이를 따라 흐르는 개울과 만나거든요). 워더링 하이츠가 그 은빛 안개 위로 솟아 있었지만 우리 옛집은 보이지 않았다. 집이 저쪽 비탈로 조금 내려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방도, 방 안의 두 사람도, 두 사람이 바라보는 경치도 놀랄 만큼 평화로워 보였다. 나는 심부름을 하기가 싫어 뒷걸음을 쳤고, 촛불 이야기만 묻고는 정말로 아무 말 없이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내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어 할 수 없이 돌아서서 중얼거렸다. "기머턴에서 누가 마님을 뵙고 싶어 해요."
"무슨 일로?" 린턴 부인이 물었다.
"물어보지 않았어요." 내가 대답했다.
"그럼 커튼을 쳐 줘, 넬리." 마님이 말했다. "그리고 차를 가져와. 곧 돌아올게."
마님이 방을 나가자 주인이 대수롭지 않게 누구냐고 물었다.
"마님이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에요." 내가 대답했다. "그 히스클리프 말이에요. 기억하시지요, 나리. 언쇼 나리 댁에 살던."
"뭐라고! 그 집시, 그 머슴 녀석 말이오?" 주인이 외쳤다. "왜 캐서린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소?"
"쉿! 그 사람을 그렇게 부르시면 안 돼요, 나리." 내가 말했다. "마님이 들으시면 몹시 속상해하실 거예요. 그 사람이 달아났을 때 마님은 가슴이 찢어질 뻔하셨어요. 그 사람이 돌아왔으니 마님한테는 아마 큰 잔치가 될 거예요."
린턴 씨는 방 건너편, 안뜰이 내려다보이는 창으로 걸어가서 창을 열고 몸을 내밀었는데, 두 사람이 아래에 있었던 모양인지 얼른 이렇게 소리쳤다. "거기 서 있지 말아요, 여보! 귀한 손님이면 안으로 모셔 와요." 오래지 않아 걸쇠가 딸깍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님이 숨을 헐떡이며 넋이 나간 얼굴로 위층으로 날듯이 뛰어 올라왔는데, 너무 흥분해서 기쁜 기색조차 드러내지 못했다. 정말이지, 그 얼굴만 보셨다면 나리는 무슨 끔찍한 재앙이라도 닥쳤나 짐작하셨을 거예요.
"아, 에드거, 에드거!" 마님이 남편의 목에 두 팔을 감으며 헐떡였다. "아, 여보, 에드거! 히스클리프가 돌아왔어요. 정말이에요!" 그러고는 남편을 끌어안은 팔에 더 힘을 주어 꽉 졸랐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남편이 언짢게 외쳤다. "그렇다고 나를 목 졸라 죽일 것까진 없잖아요! 나는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보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렇게 미친 듯이 굴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건 알아요." 마님은 들뜬 기쁨을 조금 누르며 대답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봐서라도 친하게 지내야 해요. 위로 올라오라고 할까요?"
"여기로요?" 주인이 말했다. "이 거실로?"
"그럼 어디로요?" 마님이 물었다.
주인은 언짢은 얼굴로, 그 사람에게는 부엌이 더 어울리는 자리라고 넌지시 말했고, 린턴 부인은 반은 화가 나고 반은 남편의 까다로움이 우스운 듯 묘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싫어요." 잠시 뒤 마님이 말을 덧붙였다. "나는 부엌에 앉아 있을 수 없어요. 엘렌, 여기 상을 두 개 차려. 하나는 지체 높은 너희 주인과 이저벨라 아가씨 몫으로, 하나는 천한 신분인 히스클리프와 나의 몫으로. 이러면 마음에 들어요, 여보? 아니면 다른 데 불을 피우게 해야 하나요? 그렇다면 분부를 내리세요. 나는 내려가서 손님을 붙잡아 둘게요. 기쁨이 너무 커서 꿈만 같아 겁이 나요!"
마님이 다시 뛰어나가려 하자 에드거가 붙잡았다.
"엘렌이 가서 올라오라고 하시오." 주인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캐서린, 기뻐하는 건 좋지만 터무니없이 굴지는 말아요. 도망친 하인을 형제처럼 맞아들이는 꼴을 온 집안 식구가 구경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내가 내려가 보니 히스클리프는 들어오라는 말이 있을 줄 짐작한 듯 현관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쓸데없는 말 한마디 없이 나를 따라왔고, 나는 그를 주인 내외 앞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의 붉게 달아오른 뺨에는 언성을 높여 말을 주고받은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마님의 뺨은 벗이 문간에 나타나자 다른 감정으로 환히 빛났다. 마님은 앞으로 뛰어나가 그의 두 손을 잡고 린턴에게 데려가더니, 내켜 하지 않는 린턴의 손가락을 억지로 움켜쥐어 그의 손에 꽉 쥐여 주었다. 이제 난롯불과 촛불 아래 환히 드러난 히스클리프의 달라진 모습을 보니 나는 어느 때보다도 놀라웠다. 그는 키가 크고 몸이 다부지고 균형 잡힌 사내로 자라 있었는데, 그 곁에 서니 우리 주인은 아주 가냘프고 앳되어 보였다. 꼿꼿한 몸가짐을 보니 군대에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얼굴은 표정으로 보나 이목구비의 단단함으로 보나 린턴 씨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영리해 보였고 예전에 천대받던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낮게 처진 눈썹과 검은 불길이 가득한 눈에는 아직 반쯤만 길든 사나움이 도사리고 있었고, 다만 잘 억눌려 있었다. 몸가짐에는 위엄까지 있어서, 거친 데는 말끔히 벗었으되 우아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엄했다. 주인도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놀란 얼굴이었고, 자기가 머슴 녀석이라 불렀던 사람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잠시 어쩔 줄 몰라 했다. 히스클리프는 주인의 가냘픈 손을 놓고, 주인이 말을 꺼낼 때까지 냉랭하게 그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앉으시오." 마침내 주인이 말했다. "린턴 부인이 옛 생각을 해서 나더러 당신을 정답게 맞아 주라고 하는구려. 물론 나는 아내가 기뻐할 일이 생기면 무엇이든 반갑소."
"나도 그렇소." 히스클리프가 대답했다. "특히 그 일에 내 몫이 있다면 말이오. 한두 시간쯤은 기꺼이 머물겠소."
그는 캐서린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마님은 눈을 떼면 그가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나는지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그는 마님 쪽으로 자주 눈을 들지 않고 이따금 재빨리 한 번 쳐다보는 것으로 그쳤지만, 그 눈길은 마님의 눈에서 들이켠 숨김없는 기쁨을 볼 때마다 더 자신 있게 되비추었다. 둘은 서로 기뻐하는 데 너무 빠져 있어서 쑥스러워할 겨를도 없었다. 에드거 나리는 그렇지 않았다. 주인은 그저 짜증이 나서 얼굴이 하얘졌고, 그 감정은 마님이 일어나 깔개를 가로질러 가서 다시 히스클리프의 두 손을 붙잡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을 때 절정에 이르렀다.
"내일이 되면 꿈이었다고 생각할 거야!" 마님이 외쳤다. "너를 다시 보고, 만지고, 너하고 말을 했다는 걸 믿지 못할 거야. 그래도, 이 잔인한 히스클리프! 너는 이렇게 반겨 줄 자격이 없어. 세 해 동안이나 떠나서 소식 한 자 없고, 내 생각은 한 번도 안 하다니!"
"네가 내 생각을 한 것보다는 조금 더 했지." 그가 중얼거렸다. "네가 결혼했다는 소식은 얼마 전에 들었어, 캐서린. 그래서 아래 마당에서 기다리는 동안 이런 계획을 궁리했지. 네 얼굴을 딱 한 번만 보자, 놀라서 쳐다보는 눈길하고 아마 반가운 척하는 얼굴도 보겠지, 그다음에 힌들리하고 셈을 끝내고, 법이 손쓰기 전에 내 손으로 나를 처형하자. 그런데 네가 이렇게 반겨 주니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어. 하지만 다음번에 딴 얼굴로 날 맞을 생각은 하지 마! 아니, 이제 다시는 날 쫓아내지 못할 거야. 정말로 내가 불쌍했어? 그래, 그럴 만도 했지. 네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뒤로 나는 쓰라린 삶을 싸워 헤쳐 왔어. 그러니 나를 용서해야 해. 나는 오로지 너 때문에 버둥거렸으니까!"
"캐서린, 차가 식기 전에 상으로 와 줘요." 린턴이 평소의 목소리와 알맞은 예의를 지키려 애쓰며 끼어들었다. "히스클리프 씨는 오늘 밤 어디서 묵든 먼 길을 걸어가야 할 테고, 나는 목이 말라요."
마님은 찻물 단지 앞 제자리에 앉았고, 종소리를 듣고 이저벨라 아가씨도 왔으며, 나는 다들 앉을 의자를 앞으로 당겨 놓아 준 뒤에 방을 나왔다. 식사는 10분도 가지 않았다. 캐서린의 찻잔은 한 번도 채워지지 않았다. 마님은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에드거는 찻잔 받침에 차를 흘려 놓고 한 모금도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손님은 그날 저녁 한 시간 넘게 머물지 않았다. 그가 떠날 때 나는 기머턴으로 가느냐고 물었다.
"아니, 워더링 하이츠로 가." 그가 대답했다. "오늘 아침에 들렀더니 언쇼 씨가 와서 묵으라고 하더군."
언쇼 씨가 그를 청했다고! 그리고 그가 언쇼 씨를 찾아갔다고! 그가 떠난 뒤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괴로워했다. 저 사람이 위선자 노릇을 하는 걸까? 무슨 꿍꿍이를 감추고 해코지를 하러 이 고장에 온 걸까?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차라리 오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예감이 마음 깊은 데서 들었다.
한밤중쯤 첫잠에 빠져 있던 나는 잠에서 깨어났는데, 린턴 부인이 살그머니 내 방에 들어와 침대 머리맡에 앉더니 나를 깨우려고 머리채를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잠이 안 와, 엘렌." 마님이 변명 삼아 말했다. "그리고 이 행복을 같이 나눌 살아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어! 에드거는 뾰로통해 있어. 자기는 관심도 없는 일로 내가 기뻐한다고. 입을 열었다 하면 토라지고 바보 같은 소리만 하고, 자기는 이렇게 몸도 아프고 졸린데 내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건 잔인하고 이기적인 짓이라나.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꼭 어디가 아프다니까! 내가 히스클리프를 몇 마디 칭찬했더니, 머리가 아파서인지 샘이 나서 속이 쓰려서인지 울기 시작하잖아. 그래서 일어나서 나와 버렸어."
"나리 앞에서 히스클리프를 칭찬해서 뭐 하시게요?" 내가 대답했다. "두 분은 어릴 때부터 서로 싫어하셨잖아요. 히스클리프도 나리 칭찬을 들으면 꼭 그만큼 싫어할 거예요. 사람 마음이 다 그래요. 두 분이 대놓고 싸우시는 걸 보고 싶지 않으시면 히스클리프 얘기로 나리를 건드리지 마세요."
"하지만 그건 너무 나약하다는 증거 아니야?" 마님이 말을 이었다. "나는 샘내지 않아, 이저벨라의 머리칼이 금빛으로 빛나고 살결이 희고, 몸가짐이 고상하고 온 집안이 그 애를 귀여워해도 나는 조금도 마음 상하지 않아. 너도 그렇잖아, 넬리. 우리가 가끔 다투면 너는 곧장 이저벨라 편을 들지. 그래도 나는 어리석은 엄마처럼 져 줘. 그 애를 귀염둥이라고 부르고 비위를 맞춰서 기분을 풀어 주지. 우리가 다정하게 지내는 걸 보면 그 애 오빠가 기뻐하고, 그게 나도 기뻐. 하지만 그 둘은 아주 닮았어. 응석받이로 자라서 세상이 자기들 편하라고 만들어진 줄 아니까, 나는 둘 다 비위를 맞춰 주긴 하지만 그래도 따끔하게 한번 혼쭐을 내 주면 둘 다 나아질 것 같아."
"잘못 아신 거예요, 마님." 내가 말했다. "그분들이 마님 비위를 맞춰 드리는 거예요. 안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저는 알아요. 그분들이 마님이 바라시는 걸 죄다 미리 알아서 해 드리는 동안에는 마님도 그분들이 한때 부리는 변덕쯤은 얼마든지 넉넉히 받아 주실 수 있겠지요. 하지만 결국에는 양쪽 다 똑같이 중요한 일로 틀어지실 수도 있는데, 그러면 마님이 나약하다고 하시는 그분들도 마님만큼 고집을 부릴 수 있답니다."
"그럼 우리 죽을 때까지 싸우겠네, 그렇지, 넬리?" 마님이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야! 정말이지, 나는 린턴의 사랑을 그렇게 믿어. 내가 그 사람을 죽인대도 그 사람은 앙갚음할 생각도 안 할 거야."
나는 그렇게 사랑해 주는 남편을 더 소중히 여기라고 마님에게 일렀다.
"그러고 있어." 마님이 대답했다. "하지만 하찮은 일로 징징대진 말아야지. 그건 어린애 같은 짓이야. 히스클리프가 이제는 누구한테든 존중받을 만하고 이 고장 으뜸가는 신사라도 그 사람 친구가 되면 영광일 거라고 내가 말했다고 해서 눈물로 녹아내릴 게 아니라, 그 사람은 나 대신 그 말을 해 주고 나랑 같이 기뻐했어야 해. 그 사람은 히스클리프한테 익숙해져야 하고, 차라리 좋아하는 편이 나을 거야. 히스클리프가 그 사람을 싫어할 까닭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히스클리프는 정말 훌륭하게 처신했어!"
"그 사람이 워더링 하이츠에 가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보아하니 모든 면에서 사람이 달라졌나 봐요. 아주 기독교인이 다 됐어요. 사방의 원수들한테 우정의 오른손을 내밀다니요!"
"그 애가 설명했어." 마님이 대답했다. "나도 너만큼 이상하게 여겼어. 네가 아직 거기 사는 줄 알고 너한테서 내 소식을 들으려고 들렀는데, 조지프가 오빠한테 알렸고, 오빠가 나와서 그동안 뭘 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이것저것 캐묻다가 결국 들어오라고 했다는 거야. 몇 사람이 앉아서 카드를 치고 있었는데 히스클리프도 끼었고, 오빠가 그 애한테 돈을 좀 잃었는데 그 애가 돈을 넉넉히 가진 걸 알고는 저녁에 다시 오라고 했대. 그래서 그 애가 그러마고 했고. 오빠는 너무 무모해서 사귈 사람을 신중하게 고르지 못하고, 자기가 비열하게 해를 입힌 사람을 왜 믿으면 안 되는지 따져 볼 생각도 도무지 안 하지. 하지만 히스클리프 말로는, 옛날에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하고 다시 엮이려는 가장 큰 까닭은 그레인지에서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거처를 정하고 싶어서고, 우리가 함께 살던 그 집에 정이 들어서래. 게다가 기머턴에 자리를 잡는 것보다 거기 있으면 내가 자기를 볼 기회가 더 많을 거라는 바람도 있고. 하이츠에 묵게 해 주면 후하게 돈을 치를 생각이래. 오빠는 욕심이 많으니까 틀림없이 그 조건을 받아들일 거야. 오빠는 늘 탐욕스러웠어. 한 손으로 움켜쥔 걸 다른 손으로 내던지긴 하지만."
"젊은 사람이 살 곳으로 참 좋은 데를 골랐네요!" 내가 말했다. "뒷일이 걱정되지 않으세요, 마님?"
"내 친구 걱정은 안 해." 마님이 대답했다. "그 애는 머리가 좋으니 위험에 빠지지 않을 거고, 오빠는 좀 걱정이지만 행실로야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없고, 몸을 다치지 않게는 내가 막아 줄 거야. 오늘 저녁 일로 나는 하느님하고도 사람하고도 화해했어! 나는 화가 나서 하늘의 뜻에 맞서 들고일어났었거든. 아, 넬리, 나는 정말, 정말 쓰라린 괴로움을 견뎌 왔어! 그 사람이 그게 얼마나 쓰라렸는지 안다면, 그 괴로움이 사라진 걸 쓸데없는 투정으로 흐려 놓는 게 부끄러울 거야.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에서 나 혼자 견뎠던 거야, 내가 자주 느끼던 고통을 털어놓았다면 그 사람도 나만큼 간절히 그 고통이 덜어지기를 바라게 됐을 테니까. 하지만 다 끝났어. 그 사람의 어리석음에 앙갚음하지 않을 거야. 이제부터는 무엇이든 견딜 수 있어! 이 세상에서 가장 천한 것이 내 뺨을 때려도 다른 뺨을 내밀 뿐 아니라 화를 돋워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겠어. 그 증거로 지금 당장 가서 에드거하고 화해할 거야. 잘 자! 나는 천사야!"
마님은 그렇게 자기만족에 젖은 확신을 품고 떠났다. 그 다짐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튿날 분명히 드러났다. 린턴 씨는 투정을 그만두었을 뿐 아니라(그래도 캐서린의 넘치는 활기에 눌려 기운은 아직 가라앉아 보였지만), 마님이 오후에 이저벨라를 데리고 워더링 하이츠에 가는 것에도 감히 반대하지 않았다. 마님은 그 보답으로 여름처럼 다정하고 살뜰하게 굴어 며칠 동안 집을 낙원으로 만들었고, 주인도 하인들도 다 함께 그칠 줄 모르는 햇볕의 덕을 보았다.
히스클리프는(앞으로는 히스클리프 씨라고 불러야겠지만) 처음에는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를 찾아오는 자유를 조심스럽게 썼는데, 집주인이 자기가 끼어드는 것을 어디까지 참아 줄지 가늠하는 듯했다. 캐서린도 그를 맞으며 기쁜 마음을 너무 드러내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여겼고, 그래서 그는 차츰 집안사람들이 으레 기다리는 손님이 될 권리를 굳혀 갔다. 그는 어릴 때 남달랐던 그 말 없는 성격을 여전히 많이 간직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남을 놀라게 할 만한 감정 표현은 모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주인의 불안도 한동안 잠잠해졌는데, 뒤이어 일어난 일들 때문에 그 불안은 잠시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생각지도 못한 불행이 주인에게 새 근심을 안겼다. 이저벨라 린턴이 그저 참아 줄 뿐인 그 손님에게 별안간 걷잡을 수 없이 끌리고 만 일이었다. 아가씨는 그때 열여덟 살 난 아주 사랑스러운 처녀였는데, 몸가짐은 어린애 같았지만 머리가 날카롭고 감정이 날카로웠으며 화가 나면 성미도 날카로웠다. 누이를 다정하게 아끼던 오빠는 이 엉뚱한 편애에 기가 막혔다. 이름도 없는 사내와 혼인하는 수치는 젖혀 두더라도, 그리고 아들 상속자가 없으면 자기 재산이 그런 자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도 젖혀 두더라도, 주인은 히스클리프의 성품을 알아볼 만한 분별이 있었다. 겉모습은 달라졌어도 그 속마음은 바뀔 수 없고 바뀌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주인은 그 마음이 두려웠다. 그 마음이 역겨웠다. 이저벨라를 그 마음에 맡긴다는 생각만 해도 불길한 예감에 몸을 움츠렸다. 아가씨의 애정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솟아났고 아무런 마음도 돌아오지 않는 곳에 바쳐졌다는 것을 알았다면, 주인은 그보다 더욱 질겁했을 것이다. 주인은 그 애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그것을 히스클리프가 일부러 꾸민 수작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얼마 전부터 린턴 아가씨가 무슨 일로 속을 태우며 시들어 가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가씨는 툭하면 짜증을 내고 사람을 지치게 했으며, 끊임없이 캐서린에게 쏘아붙이고 집적거려서 그러잖아도 짧은 마님의 참을성이 금방이라도 바닥날 판이었다. 우리는 아가씨가 몸이 좋지 않아서려니 하고 어느 정도 너그럽게 봐주었다. 아가씨는 눈에 띄게 야위고 시들어 갔다. 그런데 어느 날, 아가씨가 유난히 생떼를 부리던 날이었다. 아침을 마다하고, 하인들이 자기가 시킨 일을 하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마님은 자기를 집 안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고 에드거는 자기를 돌보지 않는다고 하고, 문을 열어 둔 탓에 감기에 걸렸다느니 우리가 자기 약을 올리려고 일부러 거실 불을 꺼뜨렸다느니, 그보다 더 시시한 트집을 백 가지나 잡아 대자, 린턴 부인은 당장 가서 자라고 딱 잘라 말하고는 아가씨를 호되게 꾸짖은 뒤 의사를 부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케네스 이야기가 나오자 아가씨는 대뜸 자기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고, 다만 캐서린이 모질게 굴어서 불행할 뿐이라고 외쳤다.
"내가 모질게 군다니, 이 버릇없는 응석받이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마님이 그 터무니없는 말에 깜짝 놀라 외쳤다. "너 정말 정신이 나가는구나. 내가 언제 모질게 굴었는지 말해 봐!"
"어제요." 이저벨라가 흐느꼈다. "그리고 지금도요!"
"어제!" 올케가 말했다. "무슨 일로?"
"황야를 따라 산책할 때요. 캐서린은 히스클리프 씨하고 천천히 걸어가면서 나더러는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라고 했잖아요!"
"그게 네가 생각하는 모진 짓이야?" 캐서린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있으면 거추장스럽다는 뜻이 아니었어. 네가 우리랑 같이 있든 말든 우린 상관없었어. 그저 히스클리프의 이야기가 네 귀에는 하나도 재미없을 것 같아서 그랬지."
"아, 아니에요." 아가씨가 울었다. "내가 거기 있고 싶어 하는 걸 알고서 나를 쫓아 버리고 싶었던 거예요!"
"얘가 제정신이야?" 린턴 부인이 내 쪽을 보며 물었다. "그럼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한 마디도 빼지 않고 되풀이해 줄게, 이저벨라. 거기서 너한테 무슨 재미가 있었을지 어디 짚어 봐."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아요." 아가씨가 대답했다. "나는 같이 있고 싶었던 거예요, 그……"
"그래서?" 아가씨가 말끝을 맺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캐서린이 말했다.
"그 사람하고요. 그리고 나는 언제까지나 쫓겨나지는 않을 거예요!" 아가씨가 발끈해서 말을 이었다. "캐서린은 자기는 먹지도 않으면서 남도 못 먹게 하는 여물통의 개예요. 자기 말고는 누구도 사랑받는 게 싫은 거예요!"
"이 건방진 꼬마 원숭이 같으니!" 린턴 부인이 놀라서 외쳤다. "하지만 이런 바보짓은 믿지 않을 거야! 네가 히스클리프한테 사랑받고 싶어 하다니, 그 애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다니,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잘못 알아들은 거지, 이저벨라?"
"아니요,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니에요." 홀딱 빠진 아가씨가 말했다. "나는 캐서린이 에드거 오빠를 사랑한 것보다 더 그 사람을 사랑해요. 캐서린이 막지만 않으면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할지 몰라요!"
"그렇다면 왕국을 준대도 너처럼 되고 싶지는 않아!" 캐서린이 힘주어 단언했는데, 진심으로 하는 말 같았다. "넬리, 얘가 미쳤다는 걸 깨닫게 좀 도와줘. 히스클리프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줘. 길들지 않은 짐승이야. 세련된 구석도 없고 배운 것도 없어. 가시금작화와 단단한 바윗돌뿐인 메마른 황무지라고. 네 마음을 그 애한테 주라고 권하느니 차라리 저 작은 카나리아를 겨울날 영지에 풀어놓겠어! 얘야, 네가 그 애 성품을 한심할 만큼 모르니까 그런 꿈이 머리에 들어오는 거야. 다른 까닭은 아무것도 없어. 제발, 그 애가 무뚝뚝한 겉모습 밑에 깊은 자비와 다정함을 숨기고 있다고 상상하지 마! 그 애는 다듬지 않은 다이아몬드도, 진주를 품은 촌스러운 굴도 아니야. 사납고 무자비하고 늑대 같은 사내야. 나는 그 애한테 '이 원수 저 원수 내버려 둬, 해치면 비열하고 잔인한 짓이니까' 하고 말하지 않아. '내버려 둬, 내가 그 사람들이 해를 입는 게 싫으니까' 하고 말하지. 그리고 이저벨라, 그 애는 네가 성가신 짐이라고 생각하면 참새 알처럼 너를 으스러뜨릴 거야. 그 애가 린턴 집안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건 내가 알지만, 그런데도 네 재산과 물려받을 몫을 보고 결혼할 수는 얼마든지 있어, 그 애한테는 탐욕이 떨칠 수 없는 죄가 되어 가고 있거든. 이게 내가 그린 그 애 초상이야. 그리고 나는 그 애 친구야, 얼마나 친구냐면 그 애가 정말로 너를 낚으려고 마음먹었다면 나는 아마 입을 다물고 네가 그 애 덫에 걸리게 내버려 뒀을 거야."
린턴 아가씨는 분개해서 올케를 바라보았다.
"창피한 줄 알아요! 창피한 줄 알아요!" 아가씨가 성이 나서 되풀이했다. "캐서린은 원수 스물보다 더 나빠요. 독을 품은 친구 같으니!"
"아! 그럼 내 말을 안 믿겠다는 거야?" 캐서린이 말했다. "내가 못된 이기심에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
"틀림없이 그래요." 이저벨라가 되받았다. "캐서린을 보면 소름이 끼쳐요!"
"좋아!" 마님이 외쳤다. "네 마음이 그렇다면 직접 해 봐. 나는 할 만큼 했어. 네 건방진 무례함에 이 말다툼은 져 줄게."
"그런데 나는 캐서린의 이기심 때문에 괴로워해야 하다니!" 린턴 부인이 방을 나가자 아가씨가 흐느꼈다. "모든 게, 모든 게 다 나한테 등을 돌려. 캐서린이 내 하나뿐인 위안을 시들게 해 버렸어. 하지만 캐서린 말은 거짓말이지, 그렇지? 히스클리프 씨는 마귀가 아니야. 명예롭고 진실한 영혼을 지닌 분이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캐서린을 잊지 않았겠어?"
"그 사람은 잊어버리세요, 아가씨." 내가 말했다. "그 사람은 불길한 새예요. 아가씨 짝이 못 돼요. 마님 말씀이 좀 세긴 했지만 저도 반대는 못 하겠어요. 마님은 저보다, 아니 다른 누구보다 그 사람 속을 잘 아세요. 그리고 마님은 그 사람을 실제보다 나쁘게 말하실 분이 아니에요. 정직한 사람은 제 한 일을 숨기지 않아요. 그 사람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요? 어떻게 부자가 됐을까요? 왜 자기가 몹시 미워하는 사람의 집인 워더링 하이츠에 머무는 걸까요? 사람들 말로는 그 사람이 온 뒤로 언쇼 나리가 점점 더 나빠졌다는데, 둘이 날마다 같이 밤을 새우고, 힌들리 나리는 땅을 잡히고 돈을 빌리면서 노름하고 술 마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한대요. 바로 일주일 전에 들었어요. 조지프가 해 준 이야긴데, 기머턴에서 만났거든요. '넬리,' 하고 그러더군요. '머잖아 우리 집에 검시관이 오겄구먼. 한 사람은 딴 사람이 송아지처럼 제 멱을 따려는 걸 붙들다가 손가락이 거의 잘릴 뻔했어. 그게 쥔 양반이여, 알지. 그 양반은 큰 재판정에 나가겄다고 아주 신이 났구먼. 판사 나리들 앞이라도 하나도 겁을 안 내. 바울도 베드로도 요한도 마태도, 누구 하나 겁 안 내지, 암! 아주 좋아하는 거여. 그 뻔뻔한 낯짝을 그 양반들 앞에 들이대고 싶어 안달이 났구먼! 그리고 저 잘난 젊은이 히스클리프 말이여, 알지, 그놈은 보통내기가 아니여. 진짜 마귀 같은 농담에도 누구 못잖게 히죽 웃을 줄 알거든. 그레인지에 갈 때 우리 집에서 지내는 그 멋들어진 살림 얘기는 통 안 하더냐? 이렇게 돌아가는 거여. 해 질 녘에 일어나서 주사위, 브랜디, 닫아건 덧문, 이튿날 한낮까지 촛불. 그러고 나면 그 바보는 욕을 퍼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제 방으로 들어가니, 점잖은 사람들은 하도 창피해서 귓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어야 하는 판이구먼. 그 악당은 말이여, 제 돈을 세고 먹고 자고, 그러고는 이웃집에 가서 마누라하고 수다를 떨지. 물론 그놈은 캐서린 마님한테 마님 아버지 금화가 제 주머니로 굴러 들어오는 얘기며, 마님 아버지 아들이 멸망의 넓은 길로 내달리는데 저는 앞질러 달려가서 통행 관문을 열어 주는 얘기를 하겄지!' 그러니까요, 린턴 아가씨, 조지프는 늙은 악당이지만 거짓말쟁이는 아니에요. 그 사람이 한 히스클리프 얘기가 사실이라면, 아가씨는 그런 남편을 바랄 생각은 꿈에도 안 하시겠지요, 그렇지요?"
"엘렌도 다른 사람들하고 한패구나!" 아가씨가 대답했다. "그런 험담은 안 들을 거야. 세상에 행복 같은 건 없다고 나를 설득하려 들다니, 얼마나 심술궂은 마음을 품고 있는 거야!"
아가씨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그 망상을 떨쳐 냈을지, 아니면 끝없이 고이 품고 키웠을지 나는 모르겠는데, 아가씨에게는 곰곰이 생각할 겨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이웃 읍에서 치안 판사 회의가 열려 주인은 거기에 나가야 했는데, 주인이 없는 것을 안 히스클리프 씨는 여느 때보다 좀 이르게 찾아왔다. 캐서린과 이저벨라는 서재에 앉아 있었다. 사이가 틀어진 채 말이 없었다. 이저벨라는 얼마 전 한때의 격정에 휩쓸려 경솔하게 굴고 남몰래 품은 마음을 털어놓은 것이 겁이 났고, 캐서린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정말로 시누이에게 마음이 상해서, 다시 한번 그 건방짐을 웃어넘기게 되면 이번에는 시누이에게 웃을 일로 끝나지 않게 해 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마님은 히스클리프가 창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자 정말로 웃었는데, 마침 난로를 쓸고 있던 나는 마님의 입술에 짓궂은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이저벨라는 생각에 잠겼는지 책에 빠졌는지 문이 열릴 때까지 그대로 있다가 이미 달아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는데, 할 수만 있었다면 아가씨는 기꺼이 달아났을 것이다.
"들어와, 마침 잘 왔어!" 마님이 의자를 난롯가로 끌어당기며 쾌활하게 외쳤다. "여기 둘 사이의 얼음을 녹여 줄 셋째 사람이 몹시 아쉬운 두 사람이 있어. 그리고 너야말로 우리 둘 다 고를 바로 그 사람이야. 히스클리프, 드디어 나보다 더 너한테 홀딱 빠진 사람을 보여 주게 돼서 뿌듯해. 우쭐한 기분이 들 거야. 아니, 넬리 말고. 넬리는 보지 마! 가엾은 내 꼬마 시누이가 네 몸과 마음의 아름다움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다가 가슴이 찢어지고 있어. 에드거의 매제가 되는 건 네 손에 달렸어! 안 돼, 안 돼, 이저벨라, 도망가면 안 돼." 마님은 성이 나서 일어선 어쩔 줄 모르는 아가씨를 장난인 척하며 붙들고 말을 이었다. "히스클리프, 우리는 너 때문에 고양이들처럼 싸우고 있었어. 그런데 사랑과 찬미를 다짐하는 데서 나는 완전히 졌어. 게다가 내가 예의 바르게 비켜서 주기만 하면, 내 연적이, 얘가 스스로 그렇게 자처하니까 하는 말인데, 네 영혼에 화살을 쏘아 너를 영원히 붙잡아 놓고 내 모습은 영원한 망각 속으로 보내 버릴 거라는군!"
"캐서린!" 이저벨라가 위엄을 끌어모아, 자기를 꽉 움켜쥔 손에서 버둥거려 빠져나가는 것조차 하찮게 여기며 말했다. "장난이라도 사실만 말하고 나를 헐뜯지 말아 주면 고맙겠어요! 히스클리프 씨, 부디 이 친구분더러 나를 놓아 달라고 말씀해 주세요, 이 사람은 히스클리프 씨와 내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걸 잊고 있나 봐요. 이 사람한테는 재미있는 일이 나한테는 말할 수 없이 괴로워요."
손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아가씨가 자기를 두고 어떤 마음을 품든 전혀 상관없다는 얼굴을 하자, 아가씨는 돌아서서,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에게 놓아 달라고 간곡하게 속삭였다.
"어림없어!" 린턴 부인이 대답으로 외쳤다. "여물통의 개라는 소리는 다시 듣지 않을 거야. 넌 꼭 있어야 해. 자, 그럼! 히스클리프, 이 반가운 소식에 왜 기뻐하는 기색이 없어? 에드거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자기가 너한테 품은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저벨라가 맹세했어. 틀림없이 그런 비슷한 말을 했어. 그렇지, 엘렌? 그리고 그저께 산책한 날부터 줄곧 굶었어. 네가 반기지 않을 줄 알고 내가 너한테서 떼어 놓았다고 슬프고 분해서."
"아무래도 네가 이 아가씨 말을 꾸며 대는 것 같은데." 히스클리프가 두 사람 쪽으로 의자를 돌려 앉으며 말했다. "어쨌든 지금은 나한테서 떨어지고 싶어 하잖아!"
그러고는 그는 이야깃거리가 된 아가씨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낯설고 징그러운 짐승을 보는 듯한 눈길이었는데, 이를테면 인도에서 온 지네처럼 싫으면서도 호기심 때문에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것을 보는 눈길이었다. 가엾은 아가씨는 그것을 견디지 못해 얼굴이 하얘졌다 빨개졌다 하더니 속눈썹에 눈물방울이 맺히는데, 작은 손가락에 힘을 다 모아 캐서린의 단단한 손아귀를 풀려고 애썼다. 그러다 자기 팔에서 손가락 하나를 떼어 내자마자 다른 손가락이 내려와 붙잡아서 한꺼번에 다 떼어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손톱을 쓰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손톱이 금세 붙잡은 사람의 손에 붉은 초승달 무늬를 새겨 놓았다.
"암호랑이가 따로 없네!" 린턴 부인이 아가씨를 놓아주고 아파서 손을 털며 외쳤다. "제발 썩 나가서 그 여우 같은 얼굴이나 숨겨! 그 발톱을 이 사람한테 드러내다니 어쩜 그리 어리석니. 이 사람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상상이 안 돼? 봐, 히스클리프! 사람 잡을 연장이야. 눈 조심해야겠어."
"나를 위협하기라도 하면 그 손톱을 손가락에서 비틀어 뽑아 버리겠어." 아가씨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그가 잔인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왜 저것을 그렇게 놀렸어, 캐서린? 사실을 말한 건 아니지?"
"정말이라니까." 마님이 대꾸했다. "그 애는 몇 주 동안 너 때문에 애가 타 죽을 지경이었고, 오늘 아침에도 네 얘기로 헛소리를 했는데, 그 애가 너를 떠받드는 마음을 좀 누그러뜨리려고 내가 네 결점을 있는 그대로 말해 줬더니 욕을 퍼붓더라고. 하지만 더는 마음 쓰지 마. 그 애 건방진 걸 혼내 주고 싶었을 뿐이야. 나는 그 애를 너무 좋아해서, 사랑하는 히스클리프, 네가 그 애를 홀랑 낚아채서 삼켜 버리게 둘 수는 없어."
"나는 그 애가 너무 싫어서 그럴 생각도 없어." 그가 말했다. "송장 귀신 같은 짓이라면 몰라도. 그 들척지근한 밀랍 같은 얼굴하고 단둘이 산다면 이상한 소문이 들려올 텐데, 그중 제일 흔한 게, 하루 이틀 걸러 그 흰 얼굴에 무지개 색을 칠하고 그 파란 눈을 시커멓게 멍들게 하는 일이겠지. 그 눈이 지긋지긋하게 린턴을 닮았거든."
"'달콤하게' 닮았겠지!" 캐서린이 말했다. "그건 비둘기 눈이야. 천사의 눈이라고!"
"그 애가 제 오빠의 상속자지, 안 그래?" 잠깐 말이 없다가 그가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섭섭할걸." 그의 말벗이 대꾸했다. "하늘이 도우시면 조카가 여섯 명은 태어나서 그 애 몫을 지워 버릴 거야! 지금은 그 일에서 마음을 떼. 너는 이웃의 재물을 너무 탐내는 버릇이 있어. 이 이웃의 재물은 내 것이라는 걸 잊지 마."
"그게 내 것이 된다 해도 네 것이기는 마찬가지일 거야." 히스클리프가 말했다. "하지만 이저벨라 린턴이 어리석을지는 몰라도 미치지는 않았어. 아무튼 네 말대로 그 일은 그만두지."
둘은 그 일을 입에서는 정말로 그만두었다. 캐서린은 아마 머릿속에서도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그날 저녁 내내 그 일을 자주 떠올렸을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린턴 부인이 방을 비울 일이 생길 때마다 그가 혼자 미소 짓는 것을, 아니 히죽 웃는 것을 보았고, 불길한 생각에 깊이 잠겨 드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내 마음은 언제나 캐서린보다 주인 편에 붙어 있었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주인은 다정하고 남을 잘 믿고 떳떳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마님은, 그 반대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제멋대로 할 여지를 자신에게 너무 넓게 허락하는 것 같아서, 나는 마님의 원칙을 거의 믿지 않았고 마님의 감정에는 더욱 공감하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서 워더링 하이츠와 그레인지가 둘 다 조용히 히스클리프 씨에게서 놓여나고, 우리가 그 사람이 오기 전처럼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나에게 끊이지 않는 악몽이었고, 내 짐작으로는 주인에게도 그랬으며, 그 사람이 하이츠에 머문다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가슴을 짓눌렀다. 하느님이 그곳의 길 잃은 양을 제멋대로 사악하게 헤매도록 내버려 두었고, 사나운 짐승 하나가 그 양과 양 우리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덮쳐서 죽일 때를 기다린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