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장
그 월요일 이튿날, 언쇼는 아직도 늘 하던 일을 할 수 없어서 집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나는 지금까지처럼 아가씨를 내 곁에 붙잡아 두는 것은 안 되겠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아가씨는 나보다 먼저 아래층에 내려가서, 사촌이 손쉬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아 둔 정원으로 나갔는데, 내가 아침을 먹으러 오라고 부르러 갔을 때 보니 아가씨는 헤어턴을 구슬려서 까치밥나무와 구스베리 덤불을 뽑아 넓은 땅을 치우게 해 놓았고, 두 사람은 그레인지에서 화초를 옮겨 올 계획을 함께 짜느라 바빴다.
불과 반 시간 사이에 저질러 놓은 그 쑥대밭을 보고 나는 질겁했는데, 검은 까치밥나무는 조지프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끼는 것이었고, 아가씨는 바로 그 한가운데에 꽃밭 자리를 골라 놓은 참이었다.
"저런! 이걸 들키는 순간 주인 나리한테 다 보여 드리게 될 거예요." 내가 외쳤다. "그리고 정원을 이렇게 제멋대로 해 놓고 무슨 핑계를 댈 거예요? 이 일로 머리 위에서 벼락이 떨어질 거예요, 두고 봐요! 헤어턴 도련님, 아가씨가 시킨다고 가서 이렇게 엉망을 만들어 놓을 만큼 도련님한테 꾀가 없다니 기가 막히네."
"조지프 거라는 걸 잊고 있었어." 언쇼가 조금 어리둥절해서 대답했다. "하지만 내가 그랬다고 말할게."
우리는 늘 히스클리프 씨와 함께 끼니를 먹었다. 나는 차를 따르고 고기를 써는 안주인 노릇을 했으므로 식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캐시는 대개 내 곁에 앉았지만 오늘은 헤어턴 쪽으로 살그머니 다가앉았는데, 나는 곧 아가씨가 미워할 때 분별이 없었던 것처럼 우정에서도 분별이 없겠다는 것을 알아챘다.
"자, 사촌하고 너무 이야기하거나 너무 눈길 주지 않도록 조심해요." 우리가 방에 들어설 때 나는 그렇게 속삭여 일렀다. "틀림없이 히스클리프 씨 비위를 건드릴 테고, 그러면 두 사람한테 다 불같이 화를 낼 거예요."
"안 그럴게." 아가씨가 대답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아가씨는 헤어턴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가서 그의 귀리죽 접시에 앵초꽃을 꽂고 있었다.
헤어턴은 거기서 아가씨에게 감히 말을 걸지도 못했고 쳐다보지도 거의 못 했는데, 그래도 아가씨는 계속 놀려 대서 그가 두 번이나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아가씨는 주인 쪽을 흘끗 보았는데, 주인은 얼굴빛으로 보아 함께 앉은 사람들이 아닌 다른 일에 마음이 가 있었고, 아가씨는 잠깐 진지해져서 아주 심각하게 주인을 살폈다. 그러더니 아가씨는 돌아앉아 다시 장난을 시작했고, 마침내 헤어턴이 억눌린 웃음소리를 냈다. 히스클리프 씨는 흠칫하더니 재빨리 우리 얼굴을 훑어보았다. 캐시는 늘 하던 대로 불안하면서도 대드는 눈빛으로 그 눈길을 마주했는데, 그는 그 눈빛을 몹시 싫어했다.
"내 손이 닿지 않는 데 있으니 다행인 줄 알아." 그가 외쳤다. "무슨 마귀가 씌어서 그 지옥 같은 눈으로 자꾸 나를 마주 노려보는 거야? 눈 깔아! 그리고 다시는 네가 있다는 걸 나한테 떠올리게 하지 마. 웃는 버릇은 내가 고쳐 놓은 줄 알았는데."
"나였어." 헤어턴이 중얼거렸다.
"뭐라고?" 주인이 다그쳤다.
헤어턴은 제 접시만 내려다보며 그 고백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히스클리프 씨는 잠깐 그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다시 아침을 먹으며 끊겼던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거의 다 먹었을 무렵 두 젊은이는 슬기롭게 서로 더 멀찍이 떨어져 앉았으므로 나는 그 자리에서는 더 시끄러운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는데, 그때 조지프가 문간에 나타났고, 떨리는 입술과 성난 눈을 보니 그 귀한 덤불에 저질러진 몹쓸 짓이 들통난 게 분명했다. 덤불을 살펴보기 전에 캐시와 그 사촌이 그 근처에 있는 것을 보았던 게 틀림없었는데,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턱을 우물거리느라 말을 알아듣기 힘든 가운데 조지프가 말을 꺼냈다.
"내 품삯을 받아야겄소, 그리고 떠나야겄소! 예순 해를 섬긴 이 집에서 죽을 작정이었는데 말이오. 내 책이랑 자질구레한 살림을 죄다 다락으로 끌고 올라가고 부엌은 저것들한테 내줄 생각이었소, 조용히 살자고 말이오. 내 난롯가를 내주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그건 할 수 있겄다 싶었소! 허나 이제 저 계집애가 내 정원까지 빼앗아 갔으니, 쥔 나리, 정말이지 이건 못 참겄소! 나리는 맘만 먹으면 그 멍에를 지고 고개를 숙이겄지만 나는 그런 데 익숙하지 않소. 늙은이는 새 짐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구려. 차라리 길바닥에서 망치질을 해서 내 먹을 것 마실 것을 버는 게 낫겄소!"
"자, 자, 이 바보야!" 히스클리프가 말을 끊었다. "짧게 해! 불만이 뭐야? 너하고 넬리가 싸우는 데는 끼어들지 않을 거야. 넬리가 너를 석탄 광에 처박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야."
"넬리가 아니오!" 조지프가 대답했다. "넬리 때문이라면 내가 움직이지도 않겄소. 그 여편네도 고약하고 못된 것이긴 하지만 말이오. 주님 고맙게도 그 여편네는 누구 영혼도 훔치지 못하오! 그 여편네는 눈 깜짝 않고 쳐다볼 수 있을 만큼 잘생긴 적이 없으니까 말이오. 우리 녀석을 홀린 건 저 소름 끼치는 불경한 계집애요, 그 뻔뻔한 눈이랑 그 앞서 나서는 짓거리로 말이오. 그러다 결국…… 아니! 이건 정말 가슴이 터지겄소! 그 녀석은 내가 해 준 것, 내가 키워 준 것을 죄다 잊어버리고 가서 정원에서 제일 훌륭한 까치밥나무를 한 줄 몽땅 뽑아 버렸구먼!" 그러고는 쓰라린 상처와 언쇼의 배은망덕과 그 위태로운 처지를 생각하며 사내답지도 못하게 대놓고 울음을 터뜨렸다.
"저 바보가 취했나?" 히스클리프 씨가 물었다. "헤어턴, 저 영감이 탓하는 게 너냐?"
"덤불을 두세 그루 뽑았어." 젊은이가 대답했다. "하지만 다시 심을 거야."
"그건 왜 뽑았어?" 주인이 말했다.
캐시가 슬기롭게 끼어들었다.
"우리가 거기 꽃을 좀 심고 싶었어요." 아가씨가 소리쳤다. "잘못한 사람은 나 하나뿐이에요. 내가 그러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대체 누가 너더러 이 집 막대기 하나라도 건드려도 된다고 했어?" 시아버지가 몹시 놀라서 다그쳤다. "그리고 누가 너더러 이 애 말을 들으라고 했어?" 그는 헤어턴 쪽으로 돌아서며 덧붙였다.
헤어턴은 말을 잃었고, 그 사촌이 대답했다. "내 땅을 다 빼앗아 갔으면서 내가 꾸밀 흙 몇 야드쯤 아까워하면 안 되지요!"
"네 땅이라고, 이 건방진 년! 너는 땅을 가져 본 적이 없어." 히스클리프가 말했다.
"그리고 내 돈도요." 아가씨는 성난 그의 눈길을 마주 쏘아보며, 그러면서도 아침 먹다 남긴 빵 껍질 한 조각을 씹으며 말을 이었다.
"닥쳐!" 그가 외쳤다. "다 먹었으면 꺼져!"
"그리고 헤어턴의 땅하고 헤어턴의 돈도요." 그 겁 없는 것이 멈추지 않고 말했다. "헤어턴하고 나는 이제 친구예요. 당신에 대해 다 말해 줄 거예요!"
주인은 잠깐 어안이 벙벙한 것 같더니 얼굴이 창백해져서 일어섰는데, 그러는 내내 죽일 듯한 증오가 서린 얼굴로 아가씨를 노려보았다.
"나를 때리면 헤어턴이 당신을 때릴 거예요." 아가씨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냥 앉는 게 좋을걸요."
"헤어턴이 너를 이 방에서 쫓아내지 않으면 그 녀석을 때려서 지옥에 처박아 버릴 테다." 히스클리프가 벼락같이 소리쳤다. "빌어먹을 마녀! 감히 그 녀석을 부추겨서 나한테 대들게 할 셈이야? 저년을 끌어내! 내 말 안 들려? 부엌에 내던져 버려! 엘렌 딘, 저년이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게 했다가는 저년을 죽여 버릴 거야!"
헤어턴은 숨죽인 목소리로 아가씨에게 나가자고 달래 보았다.
"끌어내!" 히스클리프가 사납게 외쳤다. "거기 서서 이야기나 할 거야?" 그러고는 자기 명령을 몸소 실행하려고 다가갔다.
"이제 헤어턴은 다시는 당신 말을 듣지 않을 거예요, 이 나쁜 사람." 캐시가 말했다. "그리고 곧 나만큼 당신을 미워하게 될 거예요."
"쉿! 쉿!" 젊은이가 나무라듯 중얼거렸다. "네가 그분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듣고 싶지 않아. 그만해."
"하지만 저 사람이 나를 때리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지?" 아가씨가 소리쳤다.
"그럼 가자." 헤어턴이 간절하게 속삭였다.
너무 늦었다. 히스클리프가 아가씨를 붙잡아 버렸다.
"자, 너는 가!" 그가 언쇼에게 말했다. "저주받을 마녀! 이번에는 내가 참을 수 없을 때 나를 건드렸으니 영영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그는 아가씨의 머리채를 잡고 있었고, 헤어턴은 그 머리채를 풀어 주려고 애쓰며 이번 한 번만 다치게 하지 말아 달라고 빌었다. 히스클리프의 검은 눈이 번득였는데, 그는 캐시를 갈기갈기 찢어 버릴 기세였고, 나도 막 위험을 무릅쓰고 구하러 나서려고 마음을 다잡던 참이었는데, 그때 갑자기 그의 손가락이 풀렸다. 그는 붙잡은 손을 아가씨의 머리에서 팔로 옮기더니 아가씨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눈을 쓸어내리고 마음을 가다듬으려는 듯 잠깐 서 있다가, 다시 캐시 쪽으로 돌아서서 짐짓 침착하게 말했다. "나를 화나게 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할 거다, 안 그러면 언젠가 정말로 너를 죽이고 말 테니! 딘 부인하고 같이 가서 그 곁에 붙어 있어. 그리고 그 건방은 딘 부인 귀에다만 떨어. 헤어턴 언쇼는, 그 녀석이 네 말을 듣는 걸 내 눈에 띄기만 하면 어디든 빵을 얻을 수 있는 데로 가서 빌어먹게 내쫓아 버릴 거다! 네 사랑이 그 녀석을 떠돌이에 거지로 만들 거다. 넬리, 이 애를 데려가. 그리고 다들 나가! 나가!"
나는 아가씨를 데리고 나왔는데, 아가씨는 빠져나온 게 너무 기뻐서 버티지도 않았고, 다른 하나도 뒤따라 나왔으며, 히스클리프 씨는 점심때까지 그 방을 혼자 차지했다. 나는 캐시에게 점심은 위층에서 먹으라고 일렀지만, 그는 아가씨의 빈자리를 알아차리자마자 나더러 아가씨를 불러오라고 했다. 그는 우리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고, 아주 조금만 먹고는 곧바로 나가면서 저녁 전에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넌지시 알렸다.
그가 없는 동안 새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큰방에 자리를 잡았는데, 거기서 나는 캐시가 그 시아버지가 헤어턴의 아버지에게 한 짓을 들추어내려 하자 헤어턴이 엄하게 사촌을 막는 소리를 들었다. 헤어턴은 그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은 한마디도 못 하게 하겠다고 하면서, 그 사람이 악마라 해도 상관없고, 자기는 그 사람 편에 설 것이며, 아가씨가 히스클리프 씨 험담을 시작하느니 차라리 예전처럼 자기를 욕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캐시는 이 말에 점점 골이 났지만, 헤어턴은 자기가 아가씨 아버지를 헐뜯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어서 아가씨의 입을 다물게 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제야 아가씨는 언쇼가 주인의 평판을 자기 일로 여기고 있다는 것과, 이성으로는 끊을 수 없는 더 강한 끈으로, 오랜 버릇이 벼려 낸 사슬로 매여 있어서 그것을 풀려고 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가씨는 그 뒤로 히스클리프에 대한 불평도 미워하는 말도 삼가며 착한 마음씨를 보였고, 그와 헤어턴 사이에 나쁜 마음을 부추기려 했던 것을 뉘우친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는데, 정말이지 그 뒤로 아가씨는 헤어턴이 듣는 데서 자기를 괴롭힌 그 사람에 대해 한마디도 나쁘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은 말다툼이 끝나자 두 사람은 다시 친구가 되어 학생과 선생으로서 저마다 할 일에 더없이 바빴다. 나는 일을 마치고 들어가서 두 사람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어찌나 누그러지고 위로가 되던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아시겠지만 두 사람은 어떤 면에서 둘 다 내 자식 같았는데, 한 사람은 오래전부터 내 자랑이었고, 이제는 틀림없이 다른 한 사람도 그만큼 흐뭇함을 안겨 줄 터였어요. 정직하고 따뜻하고 영리한 헤어턴의 천성은 그가 자라 온 무지와 천대의 먹구름을 빠르게 떨쳐 냈고, 캐시의 진심 어린 칭찬은 그의 부지런함에 박차가 되었다. 밝아지는 마음이 얼굴을 밝혀서 그 모습에 생기와 기품을 더해 주었으니, 내가 바위산으로 나들이를 갔던 우리 작은 아가씨를 워더링 하이츠에서 찾아낸 그날 보았던 그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감탄하고 두 사람이 애쓰는 사이에 어스름이 내렸고, 그와 함께 주인이 돌아왔다. 주인은 앞문으로 들어와서 아주 뜻밖에 우리 앞에 나타났고, 우리가 고개를 들어 쳐다보기도 전에 우리 셋을 다 보았다. 글쎄, 이보다 더 보기 좋고 이보다 더 해 될 것 없는 광경은 없었고 두 사람을 꾸짖는다면 정말 망신스러운 일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붉은 불빛이 두 사람의 고운 머리를 비추며 아이들처럼 열심히 흥미에 차 생기가 도는 얼굴을 드러냈는데, 헤어턴은 스물셋이고 아가씨는 열여덟이었지만, 둘 다 새로 느끼고 배울 것이 너무 많아서 그 어느 쪽도 꿈이 깨어 버린 어른의 차분한 감정을 겪지도 드러내지도 않았다.
두 사람이 함께 눈을 들어 히스클리프 씨와 마주쳤는데, 나리는 혹시 알아채지 못하셨을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의 눈은 꼭 닮았고, 그건 캐서린 언쇼의 눈이에요. 지금의 캐시는 넓은 이마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좀 도도해 보이게 만드는 콧방울의 어떤 휘어짐 말고는 어머니를 닮은 데가 없다. 헤어턴은 더 많이 닮았는데, 그 닮음은 언제라도 눈에 띄지만 그때는 유난히 두드러졌는데, 그의 감각이 깨어 있고 정신이 여느 때와 달리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 닮음이 히스클리프 씨의 기세를 꺾은 것 같았는데, 그는 눈에 띄게 마음이 흔들린 채로 난롯가로 걸어갔지만, 젊은이를 바라보는 사이에 그 흔들림은 곧 가라앉았는데, 아니, 그 성질이 바뀌었다고 해야겠다. 흔들림은 아직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헤어턴의 손에서 책을 받아 펼쳐진 책장을 훑어보더니 아무 말 없이 돌려주고는, 캐시에게만 나가라고 손짓했고, 그 동무도 아가씨 뒤를 곧 따라 나갔고, 나도 나가려는데 그가 나더러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다.
"한심한 결말이지, 안 그래?" 그는 방금 본 광경을 한동안 곱씹고 나서 말했다. "그토록 사납게 애쓴 끝이 이런 터무니없는 마무리라니? 나는 두 집을 허물어 버리려고 지렛대와 곡괭이를 마련하고, 헤라클레스처럼 일할 수 있게 나 자신을 단련했는데, 모든 채비가 다 되고 내 손아귀에 들어오니까, 어느 지붕에서든 슬레이트 한 장 들어낼 마음조차 사라져 버린 걸 알게 됐어! 옛 원수들이 나를 이긴 것도 아니니, 지금이야말로 그자들을 대신하는 것들한테 복수할 바로 그때고, 나는 그럴 수 있고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어. 하지만 그래서 무슨 소용이야? 나는 내리치는 데 관심이 없어. 손을 드는 수고조차 할 수가 없어! 이렇게 말하면 내가 그동안 줄곧 너그러운 아량을 보여 주려고 애써 온 것처럼 들리겠지. 그건 전혀 그렇지 않아. 나는 그것들이 망하는 걸 즐길 힘을 잃었고, 아무 보람도 없이 부수기에는 너무 게을러.
"넬리, 이상한 변화가 다가오고 있어. 나는 지금 그 그림자 속에 있어. 나는 날마다의 삶에 관심이 너무 없어서 먹고 마시는 것도 잊어버릴 지경이야. 방금 방을 나간 그 두 사람만이 나한테 또렷한 형체를 가진 것으로 남아 있는데, 그 모습이 나한테는 고통을, 극심한 괴로움에 이르는 고통을 줘. 그 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 애가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 그 애가 있으면 미칠 것 같은 느낌만 드니까. 그 녀석은 나를 다르게 움직이는데, 그런데도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고 그럴 수만 있다면 그 녀석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그 녀석이 일깨우거나 그 몸에 담고 있는 지난날의 추억과 생각의 천 가지 모습을 내가 설명하려 들면," 그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너는 내가 차라리 미쳐 가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남한테 옮기지 않을 테고, 내 마음은 언제까지나 제 안에 갇혀 있어서 마침내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고 싶은 유혹이 들어.
"5분 전만 해도 헤어턴은 사람이 아니라 내 젊은 날이 사람의 모습을 한 것 같았고, 그 녀석한테 너무나 여러 가지 느낌이 들어서 그 녀석에게 이성적으로 말을 거는 건 도저히 할 수 없었을 거야. 무엇보다 먼저, 그 녀석이 캐서린을 놀랄 만큼 닮아서 그 녀석은 그 사람과 무섭게 이어져 있었어. 하지만 너는 그게 내 상상을 가장 세게 붙잡는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은 그게 가장 약해. 나한테 그 사람과 이어지지 않은 게 뭐가 있겠어?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 게 뭐가 있겠어? 이 바닥을 내려다보기만 해도 판석에 그 사람 얼굴이 새겨져 있어! 구름마다, 나무마다, 밤이면 허공을 가득 채우고 낮이면 물건마다 언뜻언뜻 비치며 그 사람 모습이 나를 에워싸고 있어! 아주 평범한 남자들 여자들 얼굴도, 내 얼굴도 그 사람을 닮은 데가 있다고 나를 비웃어. 온 세상이 그 사람이 정말로 있었다는 것과 내가 그 사람을 잃었다는 것을 적어 둔 무시무시한 쪽지 더미야! 그래, 헤어턴의 모습은 내 불멸의 사랑의 유령이었고, 내 권리를 지키려던 미친 몸부림, 내 타락, 내 자존심, 내 행복, 내 고통의 유령이었어……
"하지만 이런 생각을 너한테 되풀이하는 건 미친 짓이지만, 다만 이걸 들으면, 늘 혼자 있기는 싫으면서도 왜 그 녀석과 함께 있는 게 나한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줄곧 겪는 고통을 더 덧나게 하는지 알게 될 테고, 그 녀석이 사촌과 어떻게 지내든 내가 아랑곳하지 않게 된 데도 그게 얼마쯤 한몫을 해. 나는 이제 그것들한테 눈길을 줄 수가 없어."
"그런데 변화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히스클리프 씨?" 그의 태도에 놀라서 내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정신을 잃을 위험도 죽을 위험도 없었는데, 그는 아주 튼튼하고 건강했고, 정신으로 말하자면 어려서부터 어두운 일을 곱씹고 이상한 공상을 품기를 즐겼다. 세상을 떠난 그 우상에 대해서는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다른 모든 일에서는 그의 정신은 나만큼이나 멀쩡했다.
"그건 닥쳐 봐야 알겠지." 그가 말했다. "지금은 반쯤만 느끼고 있을 뿐이야."
"어디 아프신 느낌은 없으시지요?" 내가 물었다.
"아니, 넬리, 없어." 그가 대답했다.
"그럼 죽는 게 두렵지 않으세요?" 내가 이어서 물었다.
"두렵냐고? 아니!" 그가 대답했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도 않고, 죽음의 예감도 없고, 죽음을 바라지도 않아. 내가 왜 그러겠어? 이 튼튼한 몸에, 절제하며 사는 데다, 위험할 것 없는 일을 하니, 나는 머리에 검은 머리카락이 거의 한 올도 남지 않을 때까지 땅 위에 살아 있어야 마땅하고, 아마 그럴 거야. 그런데도 이대로는 계속 살 수가 없어! 숨 쉬는 것도 스스로 일깨워야 하고, 심장이 뛰는 것조차 일깨워야 할 지경이야! 그건 뻣뻣한 용수철을 뒤로 휘는 것 같아서, 한 가지 생각이 시키지 않는 일은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억지로 해야 하고, 그 하나의 온 세상을 덮는 생각과 이어지지 않는 것은 살았든 죽었든 억지로 눈여겨봐야 해. 나한테는 바라는 것이 딱 하나 있고, 내 온 존재와 온 힘이 그걸 이루고 싶어 애태우고 있어. 그토록 오래, 그토록 흔들림 없이 그걸 향해 애태워 왔으니 반드시 그걸 이루게 될 거라고, 그것도 곧 이루게 될 거라고 나는 확신해, 그게 내 존재를 집어삼켜 버렸으니까. 나는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마음에 통째로 삼켜져 있어. 이렇게 털어놓아도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았지만, 이걸로 내가 보이는, 이것 말고는 설명할 길 없는 기분의 변덕 몇 가지는 설명이 될 거다. 오, 하느님! 이건 기나긴 싸움이야. 어서 끝났으면 좋겠어!"
그는 무시무시한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방 안을 서성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가 조지프가 그렇다고 한 대로 양심이 그의 마음을 이 세상의 지옥으로 바꿔 놓았다고 믿고 싶어졌다. 나는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 몹시 궁금했다. 전에는 그가 이런 마음 상태를 눈빛으로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지만, 그것이 그의 늘 그런 기분이라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았고, 그 자신도 그렇다고 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몸가짐만으로는 누구도 그것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리도 그를 보셨을 때 짐작하지 못하셨지요, 록우드 나리, 그리고 내가 말하는 그 무렵에 그는 그때와 똑같았는데, 다만 혼자 있기를 더 좋아했고, 사람들 틈에서는 아마 말이 더 적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