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이 편지를 다 읽자마자 나는 주인에게 가서, 누이가 하이츠에 와 있고 린턴 마님의 형편을 안타까워하며 오빠를 몹시 보고 싶어 하는 편지를 나에게 보냈다고 알리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나를 통해 용서의 표시를 무엇이든 보내 주기를 바란다는 말도 전했다.
"용서라니!" 린턴이 말했다. "나는 그 애를 용서할 것이 아무것도 없소, 엘렌. 원한다면 오늘 오후에 워더링 하이츠에 들러서 전해 주시오. 나는 화가 난 게 아니라 그 애를 잃어서 슬프다고. 더구나 그 애가 행복할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내가 그 애를 보러 가는 일은 있을 수 없소. 우리는 영영 갈라졌소. 그 애가 정말로 나를 기쁘게 해 주고 싶다면, 자기가 결혼한 그 악당을 설득해서 이 고장을 떠나게 하라고 하시오."
"그럼 아가씨한테 짧은 쪽지라도 써 주지 않으시겠어요, 나리?" 나는 애원하듯 물었다.
"안 쓰겠소." 주인이 대답했다. "쓸데없는 일이오. 히스클리프 집안과 나의 왕래는 그자가 우리 집안과 왕래하는 것만큼 드물 것이오. 아예 없을 것이오!"
에드거 나리가 하도 쌀쌀맞아서 나는 몹시 마음이 무거웠다. 그레인지에서 오는 내내, 주인의 말을 옮길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정이 담기게 할 수 있을지, 이저벨라를 달래 줄 몇 줄의 글마저 거절한 것을 어떻게 누그러뜨려 전할지 머리를 쥐어짰다. 아가씨는 아침부터 내가 오기를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뜰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아가씨가 격자창으로 내다보는 것이 보여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지만, 아가씨는 누가 볼까 봐 겁이 나는 듯 몸을 뒤로 뺐다. 나는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들어갔다. 한때는 그토록 즐겁던 집이 그렇게 쓸쓸하고 음침한 모습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 젊은 마님의 처지였다면 적어도 난롯가라도 쓸고 먼지떨이로 탁자라도 닦았을 텐데, 아가씨는 벌써 자기를 둘러싼, 온 집에 배어든 그 될 대로 되라는 기운에 물들어 있었다. 아가씨의 예쁜 얼굴은 핏기가 없고 기운이 없었고, 머리는 곱슬기가 다 풀려서 어떤 가닥은 힘없이 늘어지고 어떤 가닥은 아무렇게나 머리에 감겨 있었다. 아마 어제저녁부터 옷매무새에 손도 대지 않은 것 같았다. 힌들리는 거기 없었다. 히스클리프 씨는 탁자에 앉아 지갑 수첩에서 꺼낸 서류를 넘기고 있었는데, 내가 나타나자 일어나서 아주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는 의자를 내밀어 권했다. 그 자리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그 사람 하나뿐이었고, 나는 그 사람이 그때만큼 근사해 보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정이 두 사람의 처지를 어찌나 바꾸어 놓았는지, 낯선 사람이 보았다면 틀림없이 그 사람은 타고나서 자란 신사로, 그 아내는 영락없는 꼬마 칠칠이로 보았을 것이다! 아가씨는 반갑게 다가와 나를 맞으며, 기다리던 편지를 받으려고 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는 그 뜻을 알아들으려 하지 않고 내가 모자를 내려놓으러 간 찬장까지 따라와서는, 가져온 것을 당장 달라고 속삭이며 졸랐고, 히스클리프는 아가씨가 무슨 수작을 하는지 짐작하고 말했다. "이저벨라한테 줄 게 있으면(틀림없이 있겠지, 넬리) 줘. 숨길 것 없어. 우리 사이엔 비밀이 없으니까."
"아, 아무것도 없어요." 나는 당장 사실대로 말하는 게 가장 낫겠다고 생각하고 대답했다. "주인 나리께서 누이분께 당분간은 편지도 찾아오는 것도 기다리지 말라고 전하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나리께서는 사랑을 보내시고, 아가씨가 행복하기를 비시고, 아가씨 때문에 겪으신 슬픔도 용서하신대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나리 댁과 이 댁이 서로 왕래를 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왕래를 이어 가 봐야 좋을 일이 하나도 없을 테니까요."
히스클리프 부인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고, 아가씨는 창가의 제자리로 돌아갔다. 남편은 내 곁 난롯돌 위에 자리를 잡고 서서 캐서린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나는 마님의 병에 대해 말해도 괜찮겠다 싶은 만큼만 이야기했지만, 그 사람은 꼬치꼬치 캐물어서 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얽힌 사실을 대부분 나한테서 받아 냈다. 나는 마님이 자업자득이라고 마땅한 대로 마님을 나무랐고, 끝으로 그 사람도 린턴 나리를 본받아 좋은 일로든 나쁜 일로든 앞으로는 그 집안에 끼어들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린턴 마님은 이제 막 회복되시는 참이에요." 내가 말했다. "예전처럼 되시지는 못하겠지만 목숨은 건지셨어요. 정말로 마님을 아끼신다면 다시는 마님 앞길을 가로막지 마세요. 아니, 아예 이 고장을 떠나세요. 그리고 떠나시더라도 아쉬워하지 않으시게 말씀드리는데, 지금의 캐서린 린턴은 히스클리프 씨의 옛 친구 캐서린 언쇼와는 그 아가씨가 저와 다른 만큼이나 달라요. 겉모습도 아주 많이 변하셨고 성품은 더 많이 변하셨어요.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마님 곁을 지켜야 하는 사람은 앞으로는 마님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며, 사람 된 도리와 의무감으로만 그 사랑을 이어 가게 될 거예요!"
"그럴 수도 있겠지." 히스클리프가 애써 침착한 척하며 말했다. "너희 주인이 기댈 데라고는 사람 된 도리하고 의무감밖에 없다는 것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야. 하지만 너는 내가 캐서린을 그자의 의무와 도리에 맡겨 둘 거라고 생각해? 캐서린을 향한 내 마음을 그자의 마음과 견줄 수 있다고 생각해? 이 집을 나가기 전에 너는 나한테 약속을 해야 해. 캐서린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네가 승낙하든 거절하든 나는 캐서린을 꼭 만나고 말 거야! 어떻게 할래?"
"말씀드리지요, 히스클리프 씨." 내가 대답했다. "그러시면 안 돼요. 저를 통해서는 절대로 안 될 거예요. 히스클리프 씨와 나리가 다시 맞닥뜨리면 마님은 정말 돌아가시고 말 거예요."
"네가 도와주면 그런 일은 피할 수 있어."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생길 위험이 있다면, 그자 때문에 캐서린의 삶에 괴로움이 하나라도 더 보태진다면, 글쎄, 그때는 내가 끝장을 보더라도 정당하다고 생각해! 캐서린이 그자를 잃으면 몹시 괴로워할지 네가 솔직하게 말해 줄 만큼 정직하면 좋겠어. 캐서린이 괴로워할까 봐 두려워서 내가 참고 있는 거니까. 거기서 우리 둘의 마음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지. 그자가 내 처지고 내가 그자 처지였다면, 내 삶을 쓸개즙처럼 쓰게 만들 만큼 그자를 미워했다 해도 나는 그자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을 거야. 못 믿겠다는 얼굴을 해도 좋아! 캐서린이 그자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한, 나는 절대로 그자를 캐서린 곁에서 쫓아내지 않았을 거야. 캐서린이 그자를 아끼는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그자의 심장을 뜯어내고 그 피를 마셨겠지! 하지만 그때까지는, 이 말을 못 믿는다면 너는 나를 모르는 거야, 그때까지는 그자의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느니 차라리 조금씩 말라 죽는 쪽을 택했을 거야!"
"그런데도," 나는 말을 끊었다. "마님이 히스클리프 씨를 거의 잊어 가는 이때 마님의 기억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마님을 새로운 불화와 괴로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하고, 마님이 온전히 회복될 거라는 희망을 송두리째 망쳐 놓는 데에는 아무 거리낌이 없으시군요."
"캐서린이 나를 거의 잊었다고 생각해?" 그가 말했다. "아, 넬리! 그렇지 않다는 건 너도 알잖아! 캐서린이 린턴을 한 번 생각할 때마다 나를 천 번 생각한다는 걸 너도 나만큼 잘 알잖아! 내 삶에서 가장 비참했던 때에는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 지난여름 이 동네에 돌아올 때도 그 생각이 나를 따라다녔어. 하지만 이제는 캐서린이 제 입으로 그렇다고 말해 주지 않는 한 그 끔찍한 생각을 다시 받아들이지 않을 테고, 그렇게 되면 린턴도 힌들리도, 내가 꾸었던 모든 꿈도 아무것도 아니겠지. 내 앞날은 두 마디로 요약될 거야. 죽음과 지옥. 캐서린을 잃고 나서 사는 건 지옥일 테니까. 그래도 캐서린이 에드거 린턴의 애정을 내 애정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고 잠깐이라도 생각했다니 나는 바보였어, 그자가 그 보잘것없는 몸뚱이의 힘을 다 짜내서 사랑한다 해도, 내가 하루에 하는 사랑을 그자는 여든 해가 걸려도 따라오지 못할 거야. 그리고 캐서린의 마음은 내 마음만큼 깊어. 캐서린의 애정을 그자 혼자 다 차지한다는 건 저 말 여물통에 바다를 다 담는 거나 마찬가지야. 흥! 캐서린한테 그자는 개나 말보다 조금 더 소중할까 말까 해. 그자에게는 나처럼 사랑받을 만한 게 없어. 그자에게 없는 것을 캐서린이 어떻게 그자에게서 사랑하겠어?"
"캐서린과 에드거는 세상 어느 두 사람 못지않게 서로 아끼고 있어." 이저벨라가 별안간 생기를 띠며 외쳤다. "아무도 그렇게 말할 권리는 없어. 우리 오빠가 깎아내려지는 걸 잠자코 듣고 있지는 않을 거야!"
"너희 오빠도 너를 놀랍도록 아끼지, 안 그래?" 히스클리프가 비웃으며 말했다. "놀랄 만큼 선선하게 너를 세상 밖으로 내쫓는 걸 보면."
"오빠는 내가 무슨 일을 겪는지 몰라." 아가씨가 대답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그럼 무슨 이야기는 했다는 거군. 편지를 썼구나, 그렇지?"
"결혼했다는 말을 하려고 쓰긴 썼어. 너도 그 쪽지를 봤잖아."
"그 뒤로는 아무것도?"
"응."
"우리 아가씨가 처지가 바뀌어서 몹시 상하신 것 같네요." 내가 말했다. "누군가의 사랑이 아가씨한테 모자란 게 분명해요. 누구의 사랑인지는 짐작이 가지만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요."
"내 짐작으로는 저 여자 자신의 사랑이야." 히스클리프가 말했다. "저 여자는 그저 칠칠맞은 계집으로 전락하고 있어! 나를 기쁘게 하려는 노력에 유난히 일찍 지쳐 버렸지. 믿기 어렵겠지만 결혼한 바로 이튿날부터 집에 가겠다고 울고불고했어. 하지만 너무 까다롭지 않은 편이 오히려 이 집에 더 잘 어울릴 테고, 저 여자가 밖으로 쏘다니면서 내 망신을 시키지 않게 내가 단단히 지킬 거야."
"글쎄요, 히스클리프 씨." 내가 대꾸했다. "히스클리프 부인은 남이 돌봐 주고 시중들어 주는 데 익숙하다는 걸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모두가 떠받들어 주는 외동딸처럼 자라신 분이에요. 아가씨 둘레를 깔끔하게 챙길 하녀를 하나 두게 해 주셔야 하고, 아가씨를 다정하게 대해 주셔야 해요. 에드거 나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든, 아가씨가 깊이 사랑할 줄 아는 분이라는 건 의심하실 수 없을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아가씨가 예전 집의 우아함과 편안함과 벗들을 다 버리고 이런 황무지에 와서 히스클리프 씨와 만족하며 자리를 잡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저 여자는 착각에 빠져서 그걸 버린 거야." 그가 대답했다. "나를 연애 소설 속 영웅으로 그리고, 내가 기사처럼 헌신해서 한없이 떠받들어 줄 줄 알았던 거지. 저 여자가 내 성품을 두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고집스럽게 지어내고 제가 품은 그 그릇된 인상대로 행동하는 걸 보면, 이성이 있는 존재로 봐주기가 어려워. 하지만 이제야 나를 좀 알아 가기 시작한 것 같아. 처음에 나를 짜증 나게 하던 그 바보 같은 웃음과 찡그림이 이제는 안 보이고, 저 여자가 빠진 홀림과 저 여자 자신을 두고 내가 내 생각을 말해 줄 때 내가 진심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던 그 어리석음도 이제는 보이지 않아. 내가 저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낸 건 놀라운 통찰의 노력이었지. 한때는 어떤 가르침으로도 그걸 깨우쳐 줄 수 없을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그것도 제대로 배운 건 아니야. 오늘 아침에는 무슨 끔찍한 소식이라도 되는 듯이, 내가 정말로 저를 미워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선언했거든! 정말이지 헤라클레스의 과업이었어! 그게 이루어졌다면 나는 감사드릴 까닭이 있지. 네 말을 믿어도 되겠어, 이저벨라? 정말로 나를 미워하는 게 확실해? 반나절만 내버려 두면 다시 한숨을 쉬며 알랑거리며 나한테 오지 않을까? 저 여자는 아마 네 앞에서 내가 다정하기 그지없어 보였으면 했을 거야. 진실이 드러나니까 허영심이 다친 거지. 하지만 그 열정이 한쪽만의 것이었다는 걸 누가 알든 나는 상관없어. 그리고 나는 그 일로 저 여자한테 거짓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내가 거짓으로 조금이라도 다정한 척을 했다고 저 여자가 나를 탓할 수는 없지. 그레인지에서 나오면서 저 여자가 맨 처음 본 내 모습은 저 여자의 강아지를 목매다는 거였고, 저 여자가 강아지를 살려 달라고 빌었을 때 내가 맨 처음 한 말은, 저 여자한테 딸린 것은 하나만 빼고 죄다 목매달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였지. 아마 저 여자는 그 하나가 자기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어떤 잔인한 짓도 저 여자를 질리게 하지 못했어. 제 귀한 몸만 다치지 않는다면 저 여자는 타고나기를 잔인한 걸 우러러보는 모양이야! 자, 그 한심하고 노예 같고 비열한 암캐가 내가 자기를 사랑할 수 있다고 꿈꾸다니, 이게 어리석음의 밑바닥이, 진짜 백치 짓이 아니고 대체 뭐겠어? 넬리, 너희 주인한테 전해. 나는 평생 저 여자처럼 비굴한 것은 본 적이 없다고. 저 여자는 린턴이라는 이름까지 더럽히고 있어. 저 여자가 무엇을 어디까지 견디고도 여전히 창피하게 굽실거리며 기어 돌아오는지 시험하다가, 순전히 더 생각해 낼 거리가 없어서 손을 늦춘 적도 몇 번 있었지! 하지만 그자한테 이것도 전해. 오라비로서, 치안 판사로서 마음을 놓으라고. 나는 법의 테두리를 엄격하게 지키고 있으니까. 지금까지 나는 저 여자가 별거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털끝만큼도 주지 않으려고 조심해 왔고, 게다가 저 여자는 우리를 갈라놓는 사람이 있다 해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야. 가고 싶으면 가도 돼. 저 여자를 괴롭히는 재미보다 저 여자가 곁에 있는 성가심이 더 크니까!"
"히스클리프 씨." 내가 말했다. "그건 미친 사람이나 하는 소리예요. 부인께서는 아마 히스클리프 씨가 미쳤다고 믿고 계시겠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참아 오신 거고요. 하지만 이제 가도 된다고 하셨으니 부인께서는 틀림없이 그 허락을 받아들이실 거예요. 아가씨, 설마 제 발로 저분 곁에 남아 계실 만큼 홀려 계시지는 않겠지요?"
"조심해, 엘렌!" 이저벨라가 노여움으로 눈을 번득이며 대답했다. 그 눈빛을 보면 자기를 미워하게 만들려는 남편의 노력이 완전히 성공했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저 사람 말은 한마디도 믿지 마. 저 사람은 거짓말쟁이 악마야! 괴물이지 사람이 아니야! 전에도 떠나도 좋다는 말을 들었고 떠나 보려고도 했지만 다시는 그럴 엄두가 안 나! 엘렌, 다만 약속해 줘. 저 사람이 한 그 파렴치한 말을 우리 오빠나 캐서린한테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저 사람이 무슨 척을 하든, 저 사람은 에드거를 자포자기하게 만들려고 약을 올리고 싶어 해, 오빠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일부러 나와 결혼했다고 저 사람이 말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는 못 할 거야. 그러기 전에 내가 죽고 말 테니까! 저 사람이 그 악마 같은 조심성을 잊어버리고 나를 죽여 주기만 바랄 뿐이야, 그렇게 되기를 빌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즐거움은 내가 죽거나 저 사람이 죽는 걸 보는 거야!"
"자, 오늘은 그만하면 됐어!" 히스클리프가 말했다. "법정에 불려 가거든 저 여자가 한 말을 기억해 둬, 넬리! 그리고 저 얼굴을 잘 봐 둬. 내게 딱 알맞은 데까지 거의 다 왔어. 아니, 이저벨라, 지금 너는 너 자신을 맡길 만한 상태가 아니야. 그러니 법적으로 네 보호자인 나는 그 책임이 아무리 달갑지 않더라도 너를 내 손에 맡아 두어야겠어. 위층으로 올라가. 엘렌 딘하고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 그쪽이 아니야. 위층으로 가라니까! 위층은 이쪽 길이야, 얘야!"
그는 아가씨를 움켜잡아 방 밖으로 밀어내고는 중얼거리며 돌아왔다. "나는 동정심이 없어! 동정심이 없어! 벌레가 꿈틀거리면 꿈틀거릴수록 그 내장을 짓이겨 버리고 싶어서 못 견디겠어! 이건 도덕의 이가 나는 거야. 아픔이 커질수록 나는 더 힘껏 이를 간다고."
"동정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나는 서둘러 모자를 다시 쓰며 말했다. "살면서 그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거 내려놔!" 내가 떠나려는 것을 알아채고 그가 말을 끊었다. "아직 가면 안 돼. 이리 와, 넬리. 캐서린을 만나겠다는 내 결심을 이루게 너를 설득하든지 억지로라도 너를 시키든지 해야겠어. 그것도 지체 없이. 맹세하지만 나는 아무 해코지도 할 생각이 없어. 무슨 소란을 일으키거나 린턴 씨를 화나게 하거나 모욕할 생각도 없어. 그저 캐서린한테서 직접, 몸이 어떤지, 왜 앓았는지 듣고 싶고, 내가 무엇이든 해서 캐서린한테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는지 묻고 싶을 뿐이라고. 어젯밤 나는 그레인지 뜰에 여섯 시간이나 있었고, 오늘 밤에도 다시 갈 거야. 들어갈 기회를 찾을 때까지 밤마다, 낮마다 그곳을 떠나지 않고 맴돌 거야. 에드거 린턴이 나와 마주치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자를 때려눕혀서, 내가 머무는 동안 얌전히 있을 만큼 혼쭐을 내 줄 거야. 하인들이 막아서면 이 권총으로 을러서 쫓아 버릴 거고. 하지만 내가 그 사람들이나 그 주인과 맞닥뜨리지 않게 막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 그리고 너라면 그걸 아주 쉽게 할 수 있어. 내가 언제 갈지 미리 알려 줄 테니, 캐서린이 혼자 있게 되면 곧바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나를 들여보내 주고 내가 떠날 때까지 지켜보기만 하면 돼. 양심에 거리낄 것도 하나 없어. 너는 해코지를 막는 셈이니까."
나는 내 주인의 집에서 그런 배신하는 노릇을 하는 것은 싫다고 맞섰고, 게다가 자기 만족을 위해 린턴 마님의 평온을 깨뜨리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이기적인 짓인지 따지기도 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마님은 괴로울 만큼 깜짝깜짝 놀라세요." 내가 말했다. "신경이 온통 곤두서 계셔서 그렇게 놀라시는 걸 견디지 못하실 거예요. 틀림없어요. 고집부리지 마세요, 히스클리프 씨! 그렇지 않으면 저는 히스클리프 씨가 꾸미는 일을 주인 나리께 알려 드릴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나리께서는 그런 터무니없는 침입에서 집과 식구들을 지키려고 손을 쓰실 거예요!"
"그렇다면 나는 너를 붙들어 두려고 손을 쓰지, 이 여자야!" 히스클리프가 외쳤다. "내일 아침까지 너는 워더링 하이츠를 떠나지 못해. 캐서린이 나를 보는 걸 견디지 못할 거라는 건 바보 같은 소리야. 놀라게 하는 건 나도 바라지 않아. 네가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켜. 내가 가도 되는지 물어봐 줘. 캐서린은 내 이름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고, 아무도 캐서린 앞에서 내 이름을 꺼내지 않는다고 했지. 내가 그 집에서 꺼내서는 안 될 이야깃거리라면 캐서린이 누구한테 내 이야기를 하겠어? 캐서린은 너희가 다 제 남편의 첩자라고 생각해. 아, 너희들 틈에서 캐서린은 틀림없이 지옥에 있는 거야! 캐서린이 말이 없는 것만 봐도 무슨 마음인지 나는 알 수 있어. 캐서린이 자주 안절부절못하고 근심스러워 보인다고 했지. 그게 평온하다는 증거야?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했지. 그렇게 끔찍하게 외톨이로 지내는데 대체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겠어? 그리고 그 맹물 같은 하찮은 인간이 의무와 도리로 캐서린을 돌보다니! 동정과 자선으로! 그자가 그 얕은 보살핌의 흙에서 캐서린의 기운을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화분에 참나무를 심어 놓고 잘 자라기를 바라는 거나 마찬가지야! 당장 결판을 내자. 너는 여기 남아 있고, 나는 린턴하고 그 하인 놈을 넘어뜨리고 캐서린한테 싸워서 가야 하는 거야? 아니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내 편이 되어서 내 부탁을 들어줄 거야? 정해! 네가 그 고집스러운 심술을 계속 부린다면 내가 1분이라도 더 꾸물거릴 까닭이 없으니까!"
글쎄요, 록우드 나리, 나는 따지기도 하고 하소연하기도 하고 쉰 번이나 딱 잘라 거절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 사람은 나를 억지로 승낙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사람의 편지를 마님에게 전해 주기로 했고, 마님이 허락하면 린턴 나리가 다음에 집을 비우는 때를 그 사람에게 미리 알려 주기로 약속했다. 그때 그 사람이 와서 할 수 있는 대로 알아서 들어오면 되고, 나는 그 자리에 없을 것이며 다른 하인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자리를 비우게 하기로 했다. 그게 옳은 일이었을까요, 그른 일이었을까요? 그른 일이었던 것 같아요. 형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해도요. 나는 내가 따라 주어서 또 한 번의 폭발을 막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캐서린의 마음의 병에 오히려 좋은 쪽으로 고비가 될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내가 이야기를 고자질한다고 에드거 나리가 엄하게 나무랐던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그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 그렇게까지 모진 이름으로 부를 만한 일이라면,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고 몇 번이고 되뇌며 그 일에 대한 불안을 모두 달래 보려 했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더 서글펐고, 그 편지를 린턴 마님의 손에 쥐여 드릴 마음을 먹기까지 나는 숱하게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런데 케네스 선생이 오셨네요. 내려가서 나리가 얼마나 좋아지셨는지 말씀드려야겠어요. 제 이야기는 이 고장 말로 지리하지요. 그래도 또 하루 아침나절을 보내기에는 쓸 만할 거예요.
지리하고, 게다가 음울하기까지! 그 착한 부인이 의사를 맞으러 내려가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골랐을 법한 기분풀이와는 영 다른 종류의 이야기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딘 부인의 쓴 약초에서 몸에 좋은 약을 뽑아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은 히스클리프 부인의 그 반짝이는 눈 속에 도사린 매혹을 조심해야겠으니, 내가 그 젊은 여인에게 마음을 내주었는데 그 딸이 어머니의 재판(再版)으로 드러난다면, 나는 참으로 묘한 곤경에 빠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