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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제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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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그날 우리는 어린 캐시 때문에 애를 먹었다. 아이는 사촌과 함께 지낼 생각에 잔뜩 들떠서 일어났는데, 사촌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 어찌나 서럽게 울고 한탄하는지 에드거가 몸소 달래면서 그 애가 곧 돌아올 거라고 다짐해 주어야 했고, 다만 "내가 데려올 수 있다면" 하고 덧붙였는데, 그럴 가망은 없었다. 그 약속으로는 아이의 마음이 별로 가라앉지 않았지만, 세월은 그보다 힘이 셌다. 아이는 그 뒤로도 이따금 린턴이 언제 돌아오느냐고 아버지에게 물었지만, 정작 다시 만나게 될 무렵에는 그 얼굴이 기억 속에서 어찌나 흐려졌는지 알아보지도 못했다.

볼일이 있어 기머턴에 들를 때 어쩌다 워더링 하이츠의 가정부와 마주치면, 나는 그 집 도련님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곤 했는데, 그 애도 캐시만큼이나 세상과 떨어져 살아서 도무지 얼굴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정부의 말로 미루어 보면 그 애는 여전히 몸이 약했고 같이 지내기에 성가신 식구였다. 가정부 말로는 히스클리프 씨가 겉으로는 애써 감추면서도 그 애를 갈수록 더 오래, 더 지독하게 싫어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 애의 목소리만 들어도 진저리를 냈고 그 애와 한방에 몇 분만 같이 앉아 있어도 도저히 못 견뎌 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오가는 일이 드물었다. 린턴은 그 집 사람들이 응접실이라고 부르는 작은 방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을 보내거나, 아니면 늘 기침이니 감기니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니 하는 병치레가 끊이지 않아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겁 많은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 여자가 덧붙였다. "그렇게 제 몸 하나 끔찍이 챙기는 사람도 처음 봤고. 저녁에 내가 창을 좀 늦게까지 열어 두기라도 하면 한사코 잔소리를 해 대요. 아이고! 밤바람 한 모금에 죽는다나요! 한여름에도 불을 피워야 하고, 조지프의 담뱃대는 독약이고, 늘 단것이며 맛난 것을 먹어야 하고, 늘 우유, 언제나 우유만 찾으면서 우리가 겨울에 얼마나 쪼들리는지는 아랑곳도 안 해요. 그러고는 털 망토를 두르고 난롯가 의자에 앉아서, 화덕 위에 구운 빵 담근 물이나 그 밖의 멀건 것을 올려놓고 홀짝거리는데, 헤어턴이 딱해서 같이 놀아 주러 오기라도 하면(헤어턴은 거칠어도 성미가 나쁜 애는 아니거든요) 둘은 틀림없이 하나는 욕을 하고 하나는 울면서 헤어지고 말아요. 내 생각엔 그 애가 자기 아들만 아니라면 주인 나리는 언쇼가 그 애를 두들겨 패서 미라처럼 만들어 놓아도 좋아하실 거고, 그 애가 제 몸을 얼마나 애지중지 돌보는지 반만 알아도 집 밖으로 내쫓고 싶어 하실 게 틀림없수. 그래도 주인 나리는 그런 유혹에 빠질 일은 하지 않으우. 응접실에는 한 번도 들어가지 않고, 린턴이 주인 나리가 있는 방에서 그런 버릇을 보이기라도 하면 당장 위층으로 올려 보내요."

그 이야기로 미루어, 나는 아무도 따뜻한 정을 주지 않아서 젊은 히스클리프가, 처음부터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면, 이기적이고 정 붙이기 힘든 아이가 되어 버렸다고 짐작했고, 그래서 그 애에게 쏠리던 내 관심도 시들해졌지만, 그래도 그 애의 처지를 생각하면 여전히 서글펐고, 그 애가 우리 곁에 남아 있었더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에드거 나리는 내가 소식을 알아 오기를 바랐는데, 내 짐작에 주인은 그 애 생각을 많이 했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 애를 보고 싶어 했을 것이며, 한번은 그 애가 마을에 나오는 일이 있는지 가정부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가정부는 그 애가 아버지를 따라 말을 타고 딱 두 번 나왔는데, 두 번 다 그 뒤 사나흘 동안 아주 녹초가 된 척을 했다고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가정부는 그 애가 온 지 두 해 뒤에 그 집을 떠났고, 내가 모르는 다른 여자가 그 뒤를 이었는데, 그 여자는 지금도 거기 산다.

그레인지에서는 캐시 아가씨가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예전처럼 즐겁게 세월이 흘러갔다. 아가씨의 생일에는 우리가 기뻐하는 기색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는데, 그날이 돌아가신 마님의 기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날이면 언제나 서재에서 혼자 지냈고, 해 질 녘에는 기머턴 교회 묘지까지 걸어가서 자정이 넘도록 그곳에 머무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캐시는 혼자서 놀 거리를 찾아야 했다. 그해 삼월 이십 일은 아름다운 봄날이었는데,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자 우리 아가씨는 나갈 차림을 하고 내려와서는, 나와 같이 황야 가장자리를 좀 거닐고 싶다고 했다. 멀리 가지 않고 한 시간 안에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고 린턴 씨가 허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둘러, 엘렌!" 아가씨가 소리쳤다. "가고 싶은 데가 있어. 뇌조들이 떼 지어 사는 데인데, 벌써 둥지를 틀었는지 보고 싶어."

"거기까지 가려면 꽤 올라가야 할 거예요." 내가 대답했다. "뇌조는 황야 가장자리에서는 새끼를 치지 않거든요."

"아니야, 멀지 않아." 아가씨가 말했다. "아빠하고 같이 아주 가까이까지 가 봤는걸."

나는 보닛을 쓰고, 별다른 생각 없이 따라나섰다. 아가씨는 어린 그레이하운드처럼 내 앞으로 껑충껑충 달려갔다가 내 곁으로 돌아오고는 다시 달아났고, 처음에는 나도 멀리서 가까이서 지저귀는 종다리 소리를 듣고 달콤하고 따스한 햇볕을 즐기며, 내 귀염둥이이자 내 기쁨인 아가씨가 금빛 곱슬머리를 뒤로 날리고 들장미처럼 부드럽고 깨끗하게 피어난 환한 뺨에 구름 한 점 없는 기쁨으로 눈을 빛내며 뛰노는 것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시절의 아가씨는 행복한 아이였고 천사였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아가씨." 내가 말했다. "아가씨의 뇌조는 어디 있어요? 벌써 닿았어야 하는데요. 그레인지 영지 울타리가 이제 저만큼 멀리 있잖아요."

"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돼, 엘렌." 아가씨는 줄곧 그렇게 대답했다. "저 둔덕에 올라가서 저 비탈을 지나가 봐. 엘렌이 저쪽에 닿을 때쯤이면 내가 새들을 날려 놓을 거야."

그러나 올라가고 지나가야 할 둔덕과 비탈이 하도 많아서 나는 마침내 지치기 시작했고, 이제 그만 멈추고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한다고 아가씨에게 말했다. 아가씨가 나를 한참 앞질러 가 있었으므로 나는 소리쳐 불렀는데, 아가씨는 듣지 못했는지 들은 척도 안 했는지 계속 깡충깡충 앞으로 나아갔고, 나는 하는 수 없이 따라가야 했다. 마침내 아가씨는 우묵한 골짜기로 쑥 내려갔고, 내가 다시 아가씨를 보게 되었을 때 아가씨는 제 집보다 워더링 하이츠에 2마일이나 더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두 사람이 아가씨를 붙잡아 세우는 것이 보였고, 나는 그중 하나가 바로 히스클리프 씨라고 확신했다.

캐시는 뇌조 둥지를 털다가, 아니 적어도 둥지를 찾아다니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것이었다. 하이츠는 히스클리프의 땅이었고, 히스클리프는 그 밀렵꾼을 나무라고 있었다.

"나는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고 하나도 찾지 못했어요." 내가 그쪽으로 힘겹게 다가가는 동안 아가씨는 그 말이 참말이라는 듯 두 손을 펴 보이며 말했다. "가져갈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아빠가 여기 위에 뇌조가 아주 많다고 해서 알을 보고 싶었어요."

히스클리프는 아가씨를 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니만큼 아가씨에게 악의를 품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고약한 웃음을 띠고 나를 흘끗 보더니, '아빠'가 누구냐고 물었다.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의 린턴 씨요." 아가씨가 대답했다. "나를 모르시는 줄 알았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럼 너는 네 아빠가 그렇게 대단히 존경받고 우러름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구나?" 히스클리프가 비꼬듯 말했다.

"그럼 아저씨는 누구세요?" 캐시는 말하는 사람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물었다. "저 사람은 전에 본 적이 있어요. 아저씨 아들이에요?"

아가씨가 가리킨 것은 또 한 사람, 헤어턴이었는데, 두 해 나이를 더 먹는 동안 몸집과 힘이 더 붙은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었고 여전히 어색하고 거칠어 보였다.

"캐시 아가씨." 내가 끼어들었다. "이러다가는 한 시간이 아니라 세 시간이나 밖에 있게 되겠어요. 정말 이제는 돌아가야 해요."

"아니, 저 녀석은 내 아들이 아니야." 히스클리프가 나를 옆으로 밀어내며 대답했다. "하지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너도 전에 본 적이 있어. 네 유모가 서두르기는 하지만, 내 생각엔 너도 저 사람도 좀 쉬어 가는 게 좋겠구나. 이 히스 언덕 모퉁이만 돌아서 우리 집에 들어가 보지 않겠니? 쉬었다 가면 집에도 더 일찍 닿을 테고, 반갑게 맞아 주마."

나는 캐시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제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그건 아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속삭였다.

"왜?" 아가씨가 큰 소리로 물었다. "뛰어다니느라 지쳤고, 땅에 이슬이 내려서 여기 앉을 수도 없어. 가자, 엘렌. 게다가 저 아저씨가 내가 자기 아들을 본 적이 있대. 내 생각엔 잘못 아시는 것 같지만, 어디 사는지는 알겠어. 페니스톤 바위산에서 돌아오다가 들렀던 그 농가지요?"

"그래. 자, 넬리, 입 다물고 있어. 이 아가씨가 우리 집에 들러 보는 건 즐거운 일일 테니까. 헤어턴, 아가씨를 모시고 앞장서라. 넬리, 너는 나하고 같이 가자."

"안 돼요, 아가씨는 그런 데 안 가요." 나는 히스클리프가 움켜쥔 팔을 빼내려고 버둥거리며 소리쳤지만, 아가씨는 벌써 언덕 이마를 돌아 냅다 달려가서 거의 문간 디딤돌에 다다라 있었다. 아가씨를 모시라는 분부를 받은 녀석은 바래다주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길가로 슬쩍 빠지더니 사라져 버렸다.

"히스클리프 씨, 이건 정말 잘못된 일이에요." 나는 말을 이었다. "좋은 뜻으로 그러시는 게 아니라는 건 히스클리프 씨도 알잖아요. 아가씨는 거기서 린턴을 보게 될 테고, 우리가 돌아가자마자 모든 게 다 드러날 테고, 그러면 내가 꾸지람을 듣게 될 거예요."

"나는 그 아이가 린턴을 보기를 바라." 그가 대답했다. "요 며칠 녀석의 얼굴이 좀 나아졌거든. 남 앞에 내놓을 만한 때가 흔치 않은데 말이야. 그리고 이 방문을 비밀로 해 두라고 금방 아가씨를 설득할 수 있을 거야. 그게 무슨 해가 된다는 거지?"

"해가 되고말고요. 아가씨가 히스클리프 씨 집에 들어가게 내버려 둔 걸 아시면 아가씨 아버지는 나를 미워하실 테고, 히스클리프 씨가 아가씨를 그렇게 꾀는 데는 틀림없이 나쁜 속셈이 있다고 나는 확신해요." 내가 대답했다.

"내 속셈은 더없이 떳떳해. 그 속셈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알려 주지." 그가 말했다. "두 사촌이 서로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게 하려는 거야. 나는 너희 주인한테 너그럽게 굴고 있는 거야, 그자의 어린 계집애는 물려받을 게 하나도 없지만, 내 바람을 따라 준다면 린턴과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어 단번에 앞날이 보장될 테니까."

"린턴이 죽으면요."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애 목숨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러면 캐시 아가씨가 상속자가 되잖아요."

"아니, 그렇게 되지 않아." 그가 말했다. "유언장에는 그렇게 보장해 주는 조항이 없으니, 녀석의 재산은 나한테 오게 되어 있지만, 분란을 막으려고 나는 두 아이가 맺어지기를 바라고, 그렇게 만들고 말 작정이야."

"그리고 나는 아가씨가 다시는 나와 함께 히스클리프 씨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할 작정이에요." 우리가 캐시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는 대문에 다다랐을 때 나는 이렇게 맞받았다.

히스클리프는 나더러 입을 다물라고 하고는, 우리보다 앞서 오솔길을 올라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 우리 아가씨는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딱 마음을 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몇 번이고 그 사람을 쳐다보았지만, 이제 그 사람은 아가씨와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짓고 아가씨에게 말을 걸 때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렸으므로, 나는 어리석게도 아가씨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에라도 그 사람이 아가씨를 해치려는 마음은 먹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린턴은 난롯가에 서 있었다. 들판에 산책을 나갔다 온 참인지 모자를 쓴 채, 마른 신발을 가져오라고 조지프를 부르고 있었다. 열여섯 살이 되려면 아직 몇 달이 남았는데도 나이에 비해 키가 컸다. 얼굴은 아직도 고왔고, 눈과 얼굴빛은 내 기억보다 밝았지만, 그것은 맑은 공기와 따사로운 햇볕에서 잠시 빌려 온 윤기일 뿐이었다.

"자, 저게 누굴까?" 히스클리프 씨가 캐시 쪽으로 돌아서며 물었다. "알아보겠니?"

"아저씨 아들이요?" 아가씨는 미심쩍은 듯 두 사람을 번갈아 훑어보고 나서 말했다.

"그래, 그래." 그가 대답했다. "그런데 저 녀석을 본 게 이번이 처음이냐? 생각해 봐! 아! 너는 기억력이 짧구나. 린턴, 네 사촌이 기억나지 않냐? 보고 싶다고 그렇게 우리를 들볶던 그 사촌 말이야."

"뭐, 린턴이라고요!" 캐시는 그 이름을 듣자 기쁘고 놀라서 얼굴이 환해지며 소리쳤다. "저게 그 꼬마 린턴이에요? 나보다 키가 크잖아! 네가 린턴이야?"

젊은이는 앞으로 나서서 자기가 린턴이라고 했다. 아가씨는 그 애에게 뜨겁게 입을 맞추었고, 두 사람은 세월이 서로의 모습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지 놀라워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캐시는 키가 다 자라 있었고, 몸매는 통통하면서도 날씬했고 강철처럼 탄력이 있었으며, 온 모습에서 건강과 생기가 반짝였다. 린턴의 얼굴과 몸짓은 아주 나른했고 몸은 몹시 가냘팠지만, 그 태도에는 그런 흠을 누그러뜨리는 품위가 있어서 보기에 싫지는 않았다. 사촌과 여러 번 정을 나누고 나서, 아가씨는 문간에서 서성이는 히스클리프 씨에게로 갔는데, 그 사람은 안쪽과 바깥쪽을 번갈아 살피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바깥을 보는 척하면서 실은 안쪽만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럼 고모부시네요!" 아가씨는 발돋움해서 인사로 입을 맞추며 소리쳤다. "처음엔 화난 얼굴이셨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었어요. 왜 린턴하고 같이 그레인지에 놀러 오지 않으세요? 이렇게 가까운 이웃으로 그 오랜 세월을 살면서 한 번도 우리를 보러 오지 않다니 이상해요. 왜 그러셨어요?"

"네가 태어나기 전에 한두 번 너무 많이 찾아갔지." 그가 대답했다. "그래, 빌어먹을! 남는 입맞춤이 있으면 린턴한테나 줘라. 나한테 주는 건 헛일이야."

"못된 엘렌!" 캐시는 이번에는 나에게 날아와 아낌없이 껴안고 입을 맞추어 대며 소리쳤다. "나쁜 엘렌! 내가 여기 못 들어가게 막으려고 하다니. 그렇지만 앞으로는 아침마다 여기까지 산책 올 거야. 그래도 되지요, 고모부? 가끔은 아빠도 모시고 올게요. 우리가 오면 반가우시겠지요?"

"물론이지." 고모부는 제안된 두 손님을 다 몹시 싫어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찌푸린 얼굴을 겨우 억누르며 대답했다. "그런데 잠깐." 그는 아가씨 쪽으로 돌아서며 말을 이었다. "이제 생각나서 말인데, 미리 일러두는 게 좋겠다. 린턴 씨는 나를 좋지 않게 보고 있어, 우리는 한때 그리스도인답지 않게 사납게 다툰 적이 있는데, 네가 여기 온다는 말을 그 사람한테 하면 네가 여기 오는 걸 아예 막아 버리고 말 거야. 그러니 앞으로 네 사촌을 다시 못 봐도 상관없는 게 아니라면 그 말은 하지 마라. 오고 싶으면 와도 되지만, 그 말은 하면 안 된다."

"왜 다투셨어요?" 캐시가 꽤 풀이 죽어서 물었다.

"그 사람은 내가 너무 가난해서 제 누이와 결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누이를 차지하니까 속이 상했던 거야." 히스클리프가 대답했다. "자존심이 상했으니 그 일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다."

"그건 잘못이에요!" 아가씨가 말했다. "언젠가 아빠한테 그렇게 말할 거예요. 하지만 린턴하고 나는 두 분의 다툼하고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 그럼 나는 여기 오지 않을래요. 린턴이 그레인지로 오면 돼요."

"나한테는 너무 멀어." 사촌이 중얼거렸다. "4마일을 걸으면 나는 죽을 거야. 아니, 캐시 아가씨, 네가 가끔 여기로 와. 아침마다 말고 일주일에 한두 번."

아버지는 아들에게 쓰라린 경멸의 눈길을 던졌다.

"넬리, 아무래도 내 수고가 헛일이 될 것 같아." 그가 나에게 중얼거렸다. "저 멍청이가 부르는 대로 하자면 '캐시 아가씨'가 저 녀석이 얼마나 하찮은지 알아차리고 녀석을 악마한테 보내 버릴 거야. 그래, 저게 헤어턴이었다면! 내가 하루에도 스무 번씩 헤어턴을 탐낸다는 걸 아냐? 저렇게 비천하게 굴러떨어졌는데도 말이야. 녀석이 다른 누구였다면 나는 녀석을 사랑했을 거야. 그래도 녀석이 저 아이의 사랑을 받을 염려는 없을 것 같군. 저 보잘것없는 물건이 정신 바짝 차리고 움직이지 않으면 헤어턴을 저 물건하고 맞붙여 놓아야지. 우리 셈으로는 저건 열여덟 살까지도 버티기 어려울 거야. 아, 저 맥 빠진 물건 같으니! 제 발 말리는 데 정신이 팔려서 저 아이는 쳐다보지도 않잖아. 린턴!"

"네, 아버지." 아들이 대답했다.

"사촌한테 이 근처에서 보여 줄 게 아무것도 없냐? 토끼 굴이나 족제비 둥지 하나라도? 신발 갈아 신기 전에 정원에 데리고 나가고, 마구간에 가서 네 말도 보여 줘라."

"여기 앉아 있는 게 더 좋지 않아?" 린턴이 다시 움직이기 싫다는 투로 캐시에게 물었다.

"모르겠어." 아가씨는 몸을 움직이고 싶어 안달하는 게 뻔히 보이는 얼굴로 문 쪽을 애타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린턴은 그대로 앉아서 불가로 더 바싹 몸을 움츠렸다. 히스클리프는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가 거기서 마당으로 나가며 헤어턴을 불렀다. 헤어턴이 대답했고, 곧 두 사람이 다시 들어왔다. 젊은이는 뺨이 발그레하고 머리가 젖은 것으로 보아 몸을 씻고 온 모양이었다.

"아, 고모부한테 물어볼게요." 캐시 아가씨가 하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소리쳤다. "저 사람은 내 사촌이 아니지요, 그렇지요?"

"사촌이다." 그가 대답했다. "네 어머니의 조카야. 저 녀석이 마음에 안 드냐?"

캐시는 묘한 얼굴을 했다.

"잘생긴 녀석 아니냐?" 그가 말을 이었다.

그 버릇없는 아이는 발돋움을 하고 히스클리프의 귀에 무어라 한마디 속삭였다. 히스클리프는 웃었고 헤어턴은 얼굴이 어두워졌는데, 보아하니 헤어턴은 깔보는 것 같은 낌새에 몹시 예민했고, 자기가 남보다 못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의 주인인지 후견인인지 하는 사람이 이렇게 소리쳐 그 찌푸린 얼굴을 걷어 냈다.

"너는 우리 가운데 귀염둥이가 되겠구나, 헤어턴! 아가씨가 그러는데 너는 아주…… 뭐라고 했더라? 아무튼 아주 듣기 좋은 말이었어. 자! 아가씨를 모시고 농장을 한 바퀴 돌아라. 신사답게 굴어야 한다, 명심해! 상스러운 말은 하지 말고, 아가씨가 너를 보지 않을 때 빤히 쳐다보지 말고, 아가씨가 쳐다볼 때는 얼굴을 감출 채비를 하고, 말할 때는 천천히 말하고, 주머니에서 손을 빼라. 어서 가서 될 수 있는 한 즐겁게 해 드려."

그는 두 사람이 창밖으로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언쇼는 길동무에게서 얼굴을 완전히 돌리고 있었다. 늘 보던 풍경을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이나 화가처럼 골똘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캐시는 그를 슬쩍 쳐다보았는데, 감탄하는 눈치는 별로 없었다. 그러고는 스스로 재미 붙일 거리를 찾는 데 마음을 돌려서, 말이 없는 빈자리를 메우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겁게 사뿐사뿐 걸어갔다.

"내가 녀석의 혀를 묶어 놓았지." 히스클리프가 말했다. "녀석은 그동안 한마디도 꺼내지 못할 거야! 넬리, 저 나이 때 내 모습 기억하지? 아니, 저보다 몇 살 더 어렸을 때. 내가 저렇게 멍청해 보인 적이 있었나? 조지프 말로 하자면 저렇게 '얼빠져' 보인 적이?"

"더했지요." 내가 대답했다. "거기다 더 뚱했으니까요."

"나는 녀석을 보는 게 즐거워." 그는 혼잣말하듯 생각을 소리 내어 말을 이었다. "녀석은 내 기대를 채워 주었어. 타고난 바보였다면 이 즐거움이 반도 안 됐을 거야. 하지만 녀석은 바보가 아니고, 나는 녀석의 마음을 하나하나 다 헤아릴 수 있어. 나도 똑같이 겪어 봤으니까. 이를테면 지금 녀석이 무슨 괴로움을 겪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만, 그건 앞으로 녀석이 겪을 괴로움의 시작일 뿐이야. 그리고 녀석은 그 거칠고 무지한 밑바닥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할 거야. 녀석의 그 악당 같은 아비가 나를 붙잡아 둔 것보다 더 단단히, 더 낮은 데 녀석을 붙잡아 두었지, 녀석은 제가 짐승 같다는 걸 자랑으로 여기니까. 나는 녀석에게 짐승의 것을 넘어서는 건 무엇이든 어리석고 나약한 것이라고 깔보도록 가르쳤어. 힌들리가 제 아들을 볼 수 있다면 자랑스러워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냐? 내가 내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만큼이나 말이야. 하지만 차이가 하나 있어서, 하나는 길바닥 돌 대신 쓰이는 금이고 다른 하나는 은그릇 흉내를 내려고 반들반들 닦아 놓은 양철이야. 내 것에는 값나가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하찮은 물건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게 만들었다는 공을 세우게 되겠지. 그자의 것은 첫째가는 바탕을 지녔는데 그게 다 버려져서, 쓸모없는 것보다 더 못하게 되어 버렸지. 나는 아쉬울 게 하나도 없지만, 그자는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아쉬움을 누구보다 많이 품게 되겠지. 그리고 제일 좋은 건, 헤어턴이 빌어먹을 만큼 나를 좋아한다는 거야! 그 점에선 내가 힌들리를 이겼다는 걸 너도 인정하겠지. 그 죽은 악당이 무덤에서 일어나 제 자식이 당한 부당한 일을 두고 나를 욕한다면, 나는 그 자식이 세상에 하나뿐인 제 친구를 감히 욕한다고 분개해서 제 아비에게 대드는 꼴을 보는 재미를 누리게 될 거야!"

히스클리프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악마 같은 웃음을 낄낄거렸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가 대꾸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와 너무 떨어져 앉아 있어서 무슨 말이 오가는지 듣지 못한 우리 젊은 길동무는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마 조금 지칠까 봐 겁이 나서 캐시와 함께 지내는 즐거움을 스스로 마다한 것을 뉘우치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창 쪽으로 이리저리 헤매는 아들의 불안한 눈길과, 모자 쪽으로 망설이며 뻗는 손을 눈여겨보았다.

"일어나라, 이 게으른 녀석아!" 그는 짐짓 쾌활한 척하며 소리쳤다. "어서 쫓아가! 저기 벌통 놓인 데 모퉁이에 막 있잖아."

린턴은 기운을 그러모아 난롯가를 떠났다. 격자창이 열려 있어서, 린턴이 밖으로 나설 때 캐시가 그 무뚝뚝한 길잡이에게 문 위에 새겨진 글씨가 무엇이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헤어턴은 위를 멀뚱히 올려다보며 영락없는 촌뜨기처럼 머리를 긁었다.

"뭔 빌어먹을 글씨겄지." 그가 대답했다. "난 못 읽어."

"못 읽는다고?" 캐시가 소리쳤다. "나는 읽을 수 있어. 영어잖아. 그런데 저게 왜 저기 있는지 알고 싶어."

린턴이 킥킥거렸다. 그 애가 처음으로 보인 웃음이었다.

"저 녀석은 글자를 몰라." 린턴이 사촌에게 말했다. "저렇게 어마어마한 멍청이가 세상에 있다는 게 믿어져?"

"저 사람 정상이야?" 캐시 아가씨가 진지하게 물었다. "아니면 좀 모자라? 어디가 잘못됐어? 벌써 두 번이나 물어봤는데 그때마다 어찌나 멍한 얼굴을 하던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아. 나도 저 사람 말은 거의 못 알아듣겠어, 정말이야!"

린턴은 다시 웃으며 헤어턴을 놀리듯 흘끗 보았는데, 헤어턴은 그 순간 정말로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게을러서 그런 거 말고는 아무 탈도 없어. 그렇지, 언쇼?" 린턴이 말했다. "내 사촌은 네가 바보인 줄 알아. 네가 말하는 그 '책 공부'를 깔본 대가를 지금 치르는 거야. 캐시, 저 녀석의 끔찍한 요크셔 사투리 들었어?"

"아니, 그딴 게 뭔 빌어먹을 쓸모가 있냐?" 헤어턴은 날마다 보는 길동무에게는 말이 좀 더 쉽게 나와서 으르렁거렸다. 그는 말을 더 늘어놓으려 했지만, 두 젊은이가 시끄럽게 웃음을 터뜨렸는데, 철없는 우리 아가씨는 그의 이상한 말씨를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신이 났던 것이다.

"그 말에 '빌어먹을'이 무슨 쓸모가 있는데?" 린턴이 키득거렸다. "상스러운 말은 하지 말라고 아빠가 그랬잖아. 그런데 너는 입만 열면 그 소리야. 이제 제발 신사답게 굴어 봐, 응!"

"네가 사내놈보다 계집애에 더 가깝지만 않았으면 당장 때려눕혔겄다, 그러고말고. 이 비쩍 마른 막대기 같은 놈아!" 성난 촌뜨기는 이렇게 맞받으며 물러갔는데, 분노와 수치가 뒤섞여 얼굴이 활활 달아올랐다. 모욕을 당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떻게 앙갚음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것이다.

히스클리프 씨도 나처럼 그 말을 엿들었는데, 헤어턴이 가는 것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지만, 곧이어 문간에 남아 재잘거리는 그 경박한 한 쌍에게 유난히 싫다는 눈길을 던졌다. 사내아이는 헤어턴의 흠과 모자란 점을 들추고 그가 하는 짓에 얽힌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만은 꽤 생기가 돌았고, 계집아이는 그 건방지고 심술궂은 말에 담긴 못된 마음은 생각지도 않고 재미있어했다. 나는 린턴이 딱하다기보다 싫어지기 시작했고, 그 아버지가 아들을 하찮게 여기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우리는 캐시 아가씨를 그보다 일찍 떼어 낼 수가 없어서 오후까지 그곳에 머물렀지만, 다행히 주인은 제 방에서 나오지 않아서 우리가 그렇게 오래 집을 비운 줄 몰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우리가 두고 온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가씨에게 일깨워 주고 싶었지만, 아가씨는 내가 그 사람들에게 편견을 품고 있다고 단단히 믿어 버렸다.

"흥!" 아가씨가 소리쳤다. "엘렌은 아빠 편이야.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거 다 알아, 그렇지 않으면 린턴이 여기서 아주 먼 데 산다고 몇 해 동안이나 나를 속였을 리가 없잖아. 나 정말 몹시 화났어. 그런데 너무 기뻐서 화난 티를 낼 수가 없어! 하지만 고모부 얘기는 입도 뻥긋하지 마. 그분은 내 고모부야, 잊지 마. 그리고 고모부하고 다툰 일로 아빠를 혼내 줄 거야."

아가씨가 그렇게 계속 지껄여 대는 바람에 나는 아가씨의 잘못을 깨우쳐 주려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날 밤 아가씨는 린턴 씨를 보지 못해서 그 나들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튿날 모든 일이 드러나서 나는 몹시 분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서운하지만은 않았는데, 이끌고 타이르는 짐은 나보다 주인이 지는 편이 훨씬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은 아가씨가 하이츠 집안과 어울리지 않았으면 하는 까닭을 납득이 가게 대는 데 너무 소심했고, 캐시는 응석받이로 자란 제 고집을 거스르는 모든 금지에 그럴듯한 까닭이 붙어 있기를 바랐다.

"아빠!" 아가씨는 아침 인사를 나누고 나서 소리쳤다. "어제 황야를 산책하다가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맞혀 보세요. 아, 아빠, 깜짝 놀라셨네요! 잘못하신 거죠, 그렇죠? 내가 만난 건…… 아니, 들어 보세요. 내가 어떻게 아빠의 속셈을 알아냈는지 들려 드릴게요. 그리고 엘렌도요. 엘렌은 아빠하고 한패면서, 내가 린턴이 돌아오기를 계속 바라다가 번번이 실망할 때마다 나를 그렇게 딱하게 여기는 척했어요!"

아가씨는 그 나들이와 그 뒤에 벌어진 일을 숨김없이 이야기했고, 주인은 나를 탓하는 눈길을 한 번 넘게 던졌지만 아가씨가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딸을 끌어당기며, 린턴이 가까이 산다는 것을 왜 숨겼는지 아느냐고, 아무 탈 없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빼앗으려고 그랬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아빠가 히스클리프 씨를 싫어하시니까요." 아가씨가 대답했다.

"그럼 너는 내가 네 마음보다 내 마음을 더 소중히 여긴다고 믿는 거냐, 캐시?" 주인이 말했다. "아니다, 내가 히스클리프 씨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히스클리프 씨가 나를 싫어해서였고, 그 사람은 아주 악마 같은 사람이라서 미워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그 사람을 망치는 걸 즐거워한단다. 네가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고는 사촌과 사귈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 사람이 나 때문에 너를 미워할 거라는 것도 알았기에, 오로지 너를 위해서, 다른 까닭은 하나도 없이, 네가 린턴을 다시 만나지 않도록 조심했던 거란다. 네가 더 크면 언젠가 이 이야기를 해 주려고 했는데, 미뤄 둔 게 미안하구나."

"그렇지만 히스클리프 씨는 아주 다정했어요, 아빠." 캐시는 조금도 수긍하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서로 만나는 걸 반대하지 않았어요. 언제든 오고 싶을 때 집에 와도 된다고 했어요. 다만 아빠한테는 말하면 안 된대요. 아빠가 그분하고 다투었고 그분이 이저벨라 고모하고 결혼한 걸 용서하지 않으실 거라서요. 그리고 아빠는 정말 용서하지 않으실 거잖아요. 잘못은 아빠한테 있어요. 그분은 적어도 우리, 그러니까 린턴하고 나하고는 친하게 지내게 해 주겠다는데, 아빠는 안 그러시잖아요."

주인은 딸이 고모부의 못된 성품에 대해서는 자기 말을 믿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사람이 이저벨라에게 어떻게 굴었는지, 워더링 하이츠가 어떻게 그 사람 손에 들어갔는지 간추려서 서둘러 들려주었다. 주인은 그 이야기를 오래 늘어놓는 것을 견디지 못했는데, 그 일을 입에 올리는 일은 드물었지만, 린턴 마님이 세상을 떠난 뒤로 줄곧 마음을 차지해 온 옛 원수에 대한 공포와 증오를 여전히 똑같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자만 아니었으면 그 사람은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것이 주인이 늘 곱씹는 쓰라린 생각이었고, 주인의 눈에 히스클리프는 살인자로 보였다. 캐시 아가씨는 제가 저지른 사소한 말 안 듣기와 억지와 성질부림, 그러니까 급한 성미와 생각 없음에서 나와서 그날로 뉘우치고 마는 잘못 말고는 나쁜 짓이라고는 아는 것이 없었으므로, 몇 해 동안이나 복수를 품고 감추어 두었다가 뉘우치는 마음 한 번 들지 않고 차근차근 계획대로 해 나갈 수 있는 그 시커먼 마음에 깜짝 놀랐다. 아가씨는 지금까지 배운 것과 생각한 것 어디에도 끼어들지 않았던 사람의 본성을 새로 보고 몹시 깊은 충격을 받은 듯해서, 에드거 나리는 그 이야기를 더 이어 갈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주인은 이 말만 덧붙였다. "우리 아가, 내가 왜 네가 그 집과 그 식구들을 멀리하기를 바라는지 나중에는 알게 될 거다. 이제 하던 공부와 놀이로 돌아가고, 그 사람들 생각은 더 하지 마라."

캐시는 아버지에게 입을 맞추고 여느 때처럼 두어 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 공부를 했고, 그러고 나서 아버지를 따라 영지로 나갔고 하루가 다른 날과 다름없이 지나갔지만, 저녁이 되어 아가씨가 제 방으로 들어간 뒤 내가 옷 벗는 것을 도우러 가 보니, 아가씨는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아이고, 참 어리석기도 하지!" 내가 소리쳤다. "정말 서러운 일을 겪었다면 이런 작은 언짢은 일로 눈물을 흘리는 게 부끄러울 거예요. 아가씨는 정말 슬픈 일이라고는 그림자도 겪어 본 적이 없어요, 캐시 아가씨. 잠깐만 이렇게 생각해 봐요. 주인 나리와 내가 죽고 아가씨가 이 세상에 혼자 남았다면, 그때는 어떤 마음이겠어요? 지금 일을 그런 슬픔에 견주어 보고, 더 많은 사람을 탐내지 말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고맙게 여겨요."

"나 때문에 우는 게 아니야, 엘렌." 아가씨가 대답했다. "그 애 때문이야. 그 애는 내일 나를 다시 만날 줄 알고 있는데, 그러면 얼마나 실망하겠어, 그 애는 나를 기다릴 텐데 나는 안 갈 거잖아!"

"말도 안 돼요!" 내가 말했다. "아가씨가 그 애를 생각하는 만큼 그 애도 아가씨를 생각했을 거라고 여기는 거예요? 그 애한테는 헤어턴이라는 말벗도 있잖아요? 고작 오후 두 번, 딱 두 번 만난 친척을 잃었다고 우는 사람은 백에 하나도 없을 거예요. 린턴은 무슨 사정인지 짐작하고는 아가씨 일로 더는 마음 쓰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왜 못 가는지 쪽지 한 장 써 보내면 안 돼?" 아가씨가 일어서며 물었다. "빌려주겠다고 약속한 책도 좀 보내고? 그 애 책은 내 책만큼 좋지 않아서, 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야기해 주니까 몹시 갖고 싶어 했거든. 안 돼, 엘렌?"

"안 되고말고요! 정말 안 돼요!" 나는 딱 잘라 대답했다. "그러면 그 애가 아가씨한테 답장을 쓸 테고, 그러면 끝이 없을 거예요. 안 돼요, 캐시 아가씨, 그 애하고는 아주 연을 끊어야 해요. 아빠가 그러기를 바라시니까, 나도 꼭 그렇게 되도록 지켜볼 거예요."

"그렇지만 쪽지 한 장 가지고 어떻게……" 아가씨는 애원하는 얼굴을 하고 다시 말을 꺼냈다.

"조용히 해요!" 내가 말을 끊었다. "쪽지 같은 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요. 어서 자요."

아가씨가 나에게 몹시 못된 눈길을, 처음에는 잘 자라는 입맞춤도 해 주고 싶지 않을 만큼 못된 눈길을 던졌으므로, 나는 몹시 언짢아하며 이불을 덮어 주고 문을 닫았다. 그러나 가다가 마음이 누그러져 살그머니 돌아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가씨는 빈 종이 한 장을 앞에 놓고 연필을 손에 든 채 탁자 앞에 서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죄지은 얼굴로 그것을 슬쩍 감추었다.

"그걸 써 봐야 가져다줄 사람이 없을 거예요, 캐시 아가씨." 내가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촛불을 끌 거예요."

나는 불 끄는 고깔을 불꽃에 씌웠고, 그러는 사이 손등을 한 대 얻어맞고 "심술쟁이!" 하는 짜증 섞인 소리를 들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다시 방을 나왔고, 아가씨는 더없이 고약하고 뾰로통한 기분으로 문빗장을 질렀다. 그 편지는 끝내 다 쓰여서, 마을에서 우유를 받으러 오는 아이 편에 보내졌지만, 나는 한참 뒤에야 그것을 알았다. 몇 주가 지나 캐시는 기분을 되찾았지만 혼자 구석에 숨어드는 것을 이상하리만큼 좋아하게 되었고, 아가씨가 책을 읽고 있을 때 내가 갑자기 다가가면 흠칫 놀라 책 위로 몸을 숙이는 일이 잦았는데, 그것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게 뻔했고, 나는 책장 사이로 낱장 종이 끝이 삐죽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아가씨는 또 아침 일찍 내려와서 무언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부엌 언저리를 서성이는 버릇이 생겼고, 서재 장식장에 조그만 서랍이 하나 있었는데 아가씨는 몇 시간씩 그 서랍을 만지작거렸고, 자리를 뜰 때는 그 열쇠를 꼭 빼 가지고 가는 데 각별히 마음을 썼다.

어느 날 아가씨가 이 서랍을 들여다볼 때, 나는 얼마 전까지 그 안에 들어 있던 장난감과 자잘한 장신구가 접은 종잇조각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과 의심이 일어서 나는 아가씨의 그 수수께끼 같은 보물을 슬쩍 보기로 마음먹었고, 밤에 아가씨와 주인이 위층으로 무사히 올라가자마자 뒤져 보았는데, 내 집 열쇠 꾸러미 가운데 그 자물쇠에 맞는 것을 쉽게 찾아냈다. 서랍을 열고 나는 그 안에 든 것을 몽땅 앞치마에 쏟아 담아서, 내 방에 가져가 찬찬히 살펴보았다. 짐작은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린턴 히스클리프가 아가씨가 보낸 글에 답해 보낸, 거의 날마다 오간 것이 틀림없는 한 무더기의 편지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날짜가 이른 것들은 쑥스러워하며 짧았지만 차츰 길게 늘어져 장황한 연애편지가 되었는데, 쓴 사람의 나이로 보아 당연하게도 어리석었지만, 군데군데 더 노련한 데서 빌려 온 듯한 구절이 섞여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중 몇 통은 뜨거운 열정과 김빠진 맛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어서 내 눈에 몹시 이상하게 보였는데, 처음에는 강한 감정으로 시작했다가 끝은 학교 다니는 사내아이가 머릿속으로 그려 낸 실체 없는 연인에게나 쓸 법한, 꾸민 듯 말만 많은 글투로 맺어져 있었다. 캐시가 그 편지들에 만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무 값어치도 없는 잡동사니였다. 나는 적당하다 싶을 만큼 뒤적거려 본 뒤, 그것들을 손수건에 싸서 한쪽에 치워 두고, 빈 서랍은 도로 잠가 두었다.

여느 때처럼 우리 아가씨는 아침 일찍 내려와서 부엌에 갔다. 나는 어떤 꼬마가 오자 아가씨가 문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젖 짜는 하녀가 그 아이의 통에 우유를 채우는 동안 아가씨는 아이의 웃옷 주머니에 무언가를 쑤셔 넣고 무언가를 꺼냈다. 나는 정원으로 돌아가서 그 심부름꾼을 기다렸다. 아이는 맡은 것을 지키려고 용감하게 싸웠고, 우리 둘이 실랑이하는 바람에 우유가 쏟아졌지만, 나는 그 편지를 빼앗는 데 성공했고, 냉큼 집에 가지 않으면 큰일 날 줄 알라고 으름장을 놓고 나서, 담장 밑에 서서 캐시 아가씨가 쓴 다정한 글을 읽어 보았다. 사촌의 편지보다 더 소박하고 더 말솜씨가 있었다. 아주 예쁘고 아주 어리석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에 잠긴 채 집으로 들어갔다. 비가 오는 날이라 아가씨는 영지를 거닐며 기분을 풀 수가 없었으므로, 아침 공부가 끝나자 그 서랍에서 위안을 찾으러 갔다. 아버지는 탁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나는 일부러 창 커튼의 풀리지 않은 술 장식을 손볼 일을 찾아서 아가씨가 하는 짓을 꼼짝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짹짹거리는 새끼들로 가득 차 있던 둥지를 떠났다가 털린 둥지로 돌아온 어떤 새도, 아가씨가 '아!' 하는 한마디와 조금 전까지 행복하던 얼굴을 딴판으로 바꾸어 놓은 변화로 드러낸 것만큼 완전한 절망을 괴로운 울음과 날갯짓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을 것이다. 린턴 씨가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니, 아가? 어디 다쳤니?" 주인이 말했다.

그 목소리와 표정을 보고 아가씨는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니에요, 아빠!" 아가씨는 숨을 몰아쉬었다. "엘렌! 엘렌! 위층으로 와. 속이 안 좋아!"

나는 그 부름에 따라 아가씨를 데리고 나갔다.

"아, 엘렌! 엘렌이 가져갔지." 단둘이 방에 들어가 문을 닫자마자 아가씨는 무릎을 꿇으며 말을 꺼냈다. "아, 돌려줘. 다시는, 다시는 안 그럴게! 아빠한테 말하지 마. 아빠한테 말 안 했지, 엘렌? 안 했다고 해 줘. 내가 몹시 못되게 굴었지만 다시는 안 그럴게!"

나는 엄하고 무게 있는 태도로 일어서라고 했다.

"그래요." 내가 소리쳤다. "캐시 아가씨, 보아하니 일이 꽤 많이 나갔네요. 그걸 부끄러워할 만도 하지요! 한가할 때 공부하는 게 참 훌륭한 잡동사니 꾸러미네요. 아니, 이건 책으로 찍어 낼 만해요! 그리고 내가 이걸 주인 나리 앞에 펼쳐 놓으면 나리가 어떻게 생각하실 것 같아요? 아직 보여 드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가씨의 그 어처구니없는 비밀을 지켜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요. 창피한 줄 알아요! 그리고 이런 터무니없는 걸 쓰기 시작한 건 틀림없이 아가씨가 먼저일 거예요. 그 애는 먼저 시작할 생각도 못 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해요."

"안 그랬어! 안 그랬다고!" 캐시가 가슴이 찢어질 듯 흐느꼈다. "그 애를 사랑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 그러다가……"

"사랑이라고요!" 나는 그 말을 될 수 있는 한 비웃듯이 내뱉으며 소리쳤다. "사랑이라니! 세상에 그런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있을까! 그럴 바에야 한 해에 한 번 우리 곡식을 사러 오는 방앗간 주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낫겠어요. 참 대단한 사랑이네요! 아가씨가 평생 린턴을 본 건 두 번 다 합쳐도 네 시간이 될까 말까 한데! 자, 여기 그 애들 장난 같은 잡동사니가 있어요. 이걸 가지고 서재로 갈 거예요. 그런 사랑을 두고 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는지 보자고요."

아가씨는 그 소중한 편지들에 달려들었지만 나는 그것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들었고, 그러자 아가씨는 그것을 차라리 태워 달라고, 보여 주지만 말고 무엇이든 해 달라고 미친 듯이 거듭 애원을 쏟아 냈다. 나도 사실 꾸짖고 싶은 만큼이나 웃고 싶었으므로, 그게 다 계집아이의 허영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마침내 얼마쯤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이렇게 물었다. "내가 이걸 태우는 데 동의하면, 다시는 편지도, 책도(아가씨가 그 애한테 책을 보낸 걸 알고 있으니까요), 머리카락 타래도, 반지도, 장난감도 보내지도 받지도 않겠다고 꼭 약속할래요?"

"우리는 장난감 같은 건 안 보내!" 수치심보다 자존심이 앞서서 캐시가 소리쳤다.

"그럼 아무것도요, 우리 아가씨?" 내가 말했다. "약속하지 않으면 나는 갈 거예요."

"약속할게, 엘렌!" 아가씨는 내 옷자락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아, 불 속에 넣어 줘, 제발, 제발!"

그러나 내가 부지깽이로 불 속에 자리를 내기 시작하자, 그 희생은 견디기에 너무 괴로웠다. 아가씨는 한두 통만 남겨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한두 통만, 엘렌. 린턴을 생각해서 간직할 수 있게!"

나는 손수건 매듭을 풀고 귀퉁이부터 편지를 불 속에 떨어뜨리기 시작했고, 불꽃이 굴뚝 위로 말려 올라갔다.

"한 통은 가질 거야, 이 잔인한 사람아!" 아가씨는 비명을 지르며 불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고, 손가락을 데어 가며 반쯤 탄 종잇조각 몇 개를 끄집어냈다.

"좋아요. 그럼 나도 아빠한테 보여 드릴 걸 좀 가질 거예요!" 나는 나머지를 도로 꾸러미에 털어 넣고 다시 문 쪽으로 돌아서며 대답했다.

아가씨는 시커멓게 그은 조각들을 불꽃 속에 쏟아 넣고, 나더러 그 제물 태우기를 마저 끝내라고 손짓했다. 일은 끝났고, 나는 재를 휘저어 석탄 한 삽 밑에 묻었고, 아가씨는 몹시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얼굴로 말없이 제 방으로 물러갔다. 나는 내려가서 주인에게 아가씨의 메스꺼움은 거의 가셨지만 한동안 누워 있는 게 좋겠다고 아뢰었다. 아가씨는 저녁을 먹지 않으려 했지만, 차 마실 때는 창백한 얼굴에 눈가가 빨개진 채 다시 나타났는데, 겉보기에는 놀라우리만큼 얌전해져 있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그 편지에 쪽지 한 장으로 답장을 했다. "히스클리프 도련님께서는 린턴 아가씨에게 더는 편지를 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가씨는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 뒤로 그 꼬마는 빈 주머니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