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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제3장 양파 한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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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양파 한 뿌리

그루셴카는 읍에서 가장 번화한 곳, 대성당 광장 근처에 있는 상인의 과부 모로조바의 집에 살았는데, 그 집 마당의 작은 목조 곁채를 세내어 쓰고 있었다. 모로조바의 집은 크고 돌로 지은 2층짜리였는데, 낡고 겉보기에 퍽 볼품이 없었고, 그 집에는 늙은 여자인 안주인이 역시 꽤 나이 든 처녀인 조카딸 둘과 함께 바깥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살았다. 안주인은 마당의 곁채를 세놓을 필요가 없었지만, 그가 그루셴카를 세입자로 들인 것은(벌써 네 해쯤 전 일이다) 오로지 친척인 상인 삼소노프, 곧 그루셴카를 드러내 놓고 돌보던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질투 많은 노인이 제 "애첩"을 모로조바의 집에 들인 것은 처음에는 새 세입자의 행실을 살피라고 노파의 날카로운 눈을 염두에 두었다고들 했다. 그러나 날카로운 눈은 곧 쓸모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고, 끝내는 모로조바가 그루셴카와 마주치는 일조차 드물어져, 나중에는 아무런 감시로도 그를 성가시게 하지 않게 되었다. 하기야 노인이 현청 소재지에서 열여덟 살 먹은 계집아이를, 겁 많고 수줍고 가냘프고 여위고 생각에 잠기곤 하는 슬픈 아이를 이 집으로 데려온 지 벌써 네 해가 지났고, 그동안 많은 물이 흘러갔다. 그렇지만 우리 읍에서는 이 계집아이의 내력을 잘 알지 못했고, 알아도 뒤죽박죽이었다. 근래에도, 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가 네 해 사이에 변한 그런 "절세미인"에게 아주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조차, 더 알게 된 것은 없었다. 그 애가 아직 열일곱 살 계집아이였을 때 누군가에게, 무슨 장교라던가 하는 사람에게 속았다가 곧바로 버림받았다는 소문이 있었을 뿐이다. 그 장교는 떠나 어딘가에서 장가를 들었고, 그루셴카는 치욕과 가난 속에 남았다나. 하기야 그루셴카가 정말로 가난 속에 있다가 그 노인에게 거두어진 것은 맞지만, 집안은 정직했고 어딘가 성직자 신분 출신으로, 직책 없는 어느 보제의 딸이거나 그 비슷한 무엇이었다고들 했다. 그런데 네 해 만에 상처받기 쉽고 모욕당한 가엾은 고아 계집아이에게서 혈색 좋고 살집 있는 러시아 미인이 나왔는데, 대담하고 단호한 성격에 거만하고 뻔뻔한 여자, 돈의 이치를 알고 재물을 모을 줄 아는 여자, 인색하고 조심스러운 여자, 옳은 수로든 그른 수로든 사람들 말로는 벌써 제 몫의 작은 밑천을 꽤 모아 둔 여자였다. 모두가 확신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그루셴카에게 다가가기는 어렵고, 그를 돌보는 노인 말고는 네 해 내내 그의 호의를 얻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굳은 사실이었다. 그 호의를 얻으려고 나선 사냥꾼들이, 특히 마지막 두 해 동안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시도는 허사로 돌아갔고, 구애자 가운데 몇몇은 성깔 있는 이 젊은 여인의 단호하고 비웃음 섞인 퇴짜 덕분에 우스꽝스럽고 창피한 꼴로 물러서기까지 해야 했다. 사람들은 또 이 젊은 여인이 특히 지난 한 해 동안 이른바 "게셰프트"라는 것에 뛰어들었고, 이쪽으로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 마침내 많은 사람이 그를 영락없는 유대 계집이라고 불렀다는 것도 알았다. 그가 돈을 이자로 꾸어 준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테면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와 짜고 한동안 정말로 어음을 헐값에, 1루블짜리를 10코페이카에 사들였다가, 그 어음 가운데 몇몇에서는 10코페이카마다 1루블씩 벌어들였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다. 병든 삼소노프는 지난 한 해 동안 부어오른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홀아비로, 다 큰 아들들에게는 폭군이었고, 10만 루블을 가진 큰 부자였으며, 인색하고 가차 없는 사람이었는데도, 제가 거둔 이 여자에게 크게 휘둘리게 되었다. 처음에 그는 이 여자의 고삐를 바짝 죄고 험하게 부렸으며, 당시 입이 건 사람들 말마따나 "기름기 하나 없이" 먹였다. 그러나 그루셴카는 그 굴레에서 벗어났고, 그러면서도 자기는 그에게 한결같이 충실하다는 끝없는 믿음을 그에게 심어 주었다. 큰 장사꾼이던 이 노인은(지금은 죽은 지 오래다) 역시 대단한 성격이었고, 무엇보다 부싯돌처럼 인색하고 단단했다. 그래서 그루셴카에게 홀딱 빠져 그 여자 없이는 살 수도 없게 되었는데도(이를테면 마지막 두 해는 정말 그랬다), 그는 그래도 그 여자에게 크고 넉넉한 재산을 떼어 주지는 않았다. 설령 그 여자가 아주 버리고 떠나겠다고 을러댔더라도 그는 그때도 꿈쩍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작은 밑천은 떼어 주었고, 그 일이 알려지자 그것조차 모두를 놀라게 했다. "너는 만만한 계집이 아니니," 그는 그 여자에게 8천 루블쯤을 떼어 주며 말했다. "네가 알아서 굴려 봐라. 그러나 알아 둬라, 내가 죽을 때까지 예전처럼 해마다 주는 생활비 말고는 나한테서 더는 아무것도 못 받는다. 유언장에도 더는 아무것도 떼어 주지 않을 거다." 그는 정말 그 말을 지켰다. 죽으면서 모든 것을, 평생 아내와 아이들까지 딸린 채 하인과 다름없이 곁에 붙잡아 두던 아들들에게 남겼고, 그루셴카에 대해서는 유언장에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은 나중에 알려졌다. 그렇지만 "제 밑천"을 어떻게 굴릴지에 대해서는 그는 그루셴카에게 조언으로 적잖이 도왔고, 그 여자에게 "일거리"를 일러 주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가 처음에는 어떤 우연한 "게셰프트" 때문에 그루셴카와 얽혔다가, 저 자신도 전혀 뜻밖에 그 여자에게 정신없이, 마치 넋이라도 잃은 듯이 반해 버리고 말자, 그때 이미 숨이 간당간당하던 삼소노프 노인은 그를 몹시 비웃었다. 눈여겨볼 만한 일은, 그루셴카가 서로 알고 지낸 내내 이 노인에게만은 아주 솔직했고, 마치 진심으로 솔직하기까지 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세상에서 오직 이 사람 하나에게만 그랬던 것 같다. 아주 최근에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까지 제 사랑을 들고 불쑥 나타나자 노인은 웃기를 그쳤다. 오히려 한번은 그루셴카에게 진지하고 엄하게 충고했다. "기왕 둘 가운데서, 아비냐 아들이냐 고르겠다면, 늙은이를 골라라. 다만 그 늙은 비열한 놈이 반드시 너하고 혼인하고, 그 전에 밑천이라도 좀 떼어 문서로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그리고 대위하고는 어울리지 마라, 앞길이 없다." 이것이 그때 벌써 제 죽음이 가까웠음을 느끼고, 정말로 이 충고를 하고 다섯 달 뒤에 죽은 늙은 호색가가 그루셴카에게 한 바로 그 말이었다. 지나가는 김에 하나 더 적어 두겠다. 그때 우리 읍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루셴카를 두고 벌어진 카라마조프 부자, 아버지와 아들의 어처구니없고 흉한 경쟁을 알고 있었지만, 그 여자가 두 사람, 노인과 아들에게 정말로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그때 알던 사람은 드물었다. 그루셴카의 두 하녀조차(그 뒤에 터진 파국, 이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할 것이 남아 있다) 나중에 법정에서, 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가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를 맞아들인 것은 오직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그가 "죽이겠다고 을러댔기" 때문이라나 하고 진술했다. 하녀는 둘이었는데, 하나는 아직 그 여자의 친정에서부터 데려온, 병들고 거의 귀가 먹은 아주 늙은 식모였고, 또 하나는 그 노파의 손녀로 스무 살쯤 된 생기 있는 젊은 처녀, 그루셴카의 몸종이었다. 그루셴카는 아주 인색하게, 전혀 넉넉하지 않은 살림 속에서 살았다. 곁채에는 방이 셋뿐이었고, 안주인이 들여놓은 낡은 마호가니 가구, 1820년대 양식의 가구가 놓여 있었다. 라키틴과 알료샤가 들어섰을 때는 벌써 날이 아주 저물었지만, 방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그루셴카는 제 응접실에서, 등받이를 마호가니처럼 칠한, 딱딱하고 가죽을 씌운 크고 투박한 소파 위에 누워 있었는데, 그 가죽은 오래전에 닳고 구멍이 나 있었다. 그 여자의 머리 밑에는 제 침대에서 가져온 하얀 깃털 베개 두 개가 받쳐져 있었다. 그 여자는 꼼짝하지 않고 반듯이 몸을 뻗은 채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 끼고 누워 있었다. 그 여자는 누구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검은 비단 옷을 차려입고, 머리에는 무척 잘 어울리는 가벼운 레이스 머리 장식을 얹었으며, 어깨에는 레이스 숄을 걸쳐 묵직한 금 브로치로 여몄다. 정말로 그 여자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얼굴은 조금 창백해지고 입술과 눈은 뜨거운 채, 마치 애태우며 조바심치듯 누워서 오른발 끝으로 조바심치며 소파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라키틴과 알료샤가 나타나자마자 작은 소동이 일 뻔했다. 그루셴카가 소파에서 재빨리 벌떡 일어나더니 갑자기 겁에 질려 "거기 누구야?" 하고 소리치는 것이 현관에서 들렸다. 그러나 손님을 맞은 것은 하녀였고, 하녀는 곧바로 마님에게 대답했다.

"그분들이 아니에요, 마님, 다른 분들이에요, 이분들은 괜찮아요."

"저 여자한테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지?" 라키틴이 알료샤의 손을 잡고 응접실로 이끌며 중얼거렸다. 그루셴카는 아직도 겁에 질린 사람처럼 소파 옆에 서 있었다. 짙은 아마빛 머리채 한 가닥이 갑자기 머리 장식 밑에서 빠져나와 오른쪽 어깨에 흘러내렸지만, 그 여자는 손님들을 자세히 보고 누군지 알아볼 때까지 그것을 알아채지도, 바로잡지도 못했다.

"아, 너였어, 라키트카? 나 정말 간 떨어질 뻔했잖아. 누구랑 왔어? 너랑 같이 온 게 누구야? 맙소사, 누구를 데려왔담!" 그 여자는 알료샤를 알아보고 외쳤다.

"아무튼 초나 좀 내오라고 해!" 라키틴이 그 집에서 이것저것 시킬 권리까지 있는 아주 가까운 사이, 허물없는 사람처럼 넉살 좋게 말했다.

"초…… 그래, 초…… 페냐, 이 사람한테 초 좀 갖다줘…… 아니, 하필 이런 때 이 사람을 데려오다니!" 그 여자는 알료샤 쪽으로 고개를 까딱하며 다시 외쳤다. 그러고는 거울 쪽으로 돌아서서 두 손으로 재빨리 머리채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어쩐지 못마땅한 눈치였다.

"마음에 안 들었어?" 라키틴이 거의 그 자리에서 기분이 상해 물었다.

"네가 나를 놀라게 했다고, 라키트카, 그 얘기야." 그루셴카가 미소를 띠고 알료샤 쪽으로 돌아섰다. "나를 무서워하지 마, 귀여운 알료샤, 네가 와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뜻밖의 내 손님. 그런데 라키트카, 너는 나를 놀라게 했어. 나는 미탸가 쳐들어오는 줄 알았거든. 있잖아, 나 아까 그 사람을 속였어. 나를 믿으라고 그 사람한테서 맹세까지 받아 놓고는 거짓말을 했어. 쿠지마 쿠지미치한테, 우리 영감한테 가서 저녁 내내 밤늦게까지 같이 돈을 셀 거라고 했어. 나는 정말로 주마다 그 영감한테 가서 저녁 내내 셈을 맞추거든. 문을 걸어 잠그고, 영감은 주판알을 튕기고, 나는 앉아서 장부에 적어. 영감은 나 하나만 믿어. 미탸는 내가 거기 있는 줄 믿었지만, 나는 이렇게 집에 틀어박혀 앉아서 소식 하나를 기다리고 있어. 그런데 페냐가 어떻게 너희를 들여보냈담! 페냐, 페냐! 대문으로 뛰어가서 열고 둘레를 살펴봐, 어디 대위 나리가 없는지! 숨어서 엿보고 있을지도 몰라, 무서워 죽겠어!"

"아무도 없어요, 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 방금 둘레를 다 살펴봤어요. 저도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틈마다 다가가 줄곧 내다보고 있어요."

"덧문은 잠갔어, 페냐? 휘장도 내려야지, 이렇게!" 그 여자가 손수 무거운 휘장을 내렸다. "안 그러면 불빛을 보고 그 사람이 곧장 날아들 테니까. 알료샤, 나 오늘은 너희 형 미탸가 무서워." 그루셴카는 불안해하면서도, 그러면서도 어쩐지 거의 들뜬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왜 그렇게 미텐카가 무서운데?" 라키틴이 캐물었다. "그 사람 앞에서 겁먹는 편이 아니잖아, 그 사람은 네 피리 소리에 맞춰 춤추는데."

"말했잖아, 소식을 기다린다고, 금쪽같은 소식 하나를 말이야. 그러니 지금은 미텐카 따위는 아예 없어도 돼. 게다가 내가 쿠지마 쿠지미치한테 갔다는 말도 그 사람은 안 믿었어, 그건 느낌으로 알아. 아마 지금쯤 거기, 표도르 파블로비치네 뒤뜰에 앉아서 나를 지키고 있을 거야. 거기 버티고 있다면 여기는 안 올 테니 그게 더 낫지! 그런데 나 정말로 쿠지마 쿠지미치한테 다녀왔어. 미탸가 바래다주기까지 했어. 자정까지 있을 테니 자정에 꼭 와서 집까지 바래다 달라고 했지. 그 사람이 가고 나서 나는 영감 곁에 10분쯤 앉아 있다가 다시 이리로 왔어. 휴, 무서웠어. 그 사람하고 마주칠까 봐 뛰어왔다니까."

"그런데 어디 가려고 이렇게 차려입었어? 이것 봐라, 무슨 모자가 이렇게 신기해?"

"너야말로 참 신기한 인간이다, 라키틴! 말했잖아, 그런 소식 하나를 기다린다고. 소식이 오면 벌떡 일어나 날아갈 거야. 그러면 너희가 나를 본 것도 이게 마지막이지. 그래서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차려입고 앉아 있는 거야."

"그럼 어디로 날아갈 건데?"

"너무 많이 알면 빨리 늙어."

"이것 봐라. 기쁨으로 온통 들떴네…… 너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 무도회에라도 가는 것처럼 차려입었어." 라키틴이 그 여자를 훑어보았다.

"네가 무도회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럼 너는 많이 알아?"

"나는 무도회를 봤어. 재작년에 쿠지마 쿠지미치가 아들을 장가보낼 때 나는 위층 회랑에서 내려다봤거든. 그런데 라키트카, 여기 이런 공작님이 서 계신데 내가 너하고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야? 이런 손님이 다 있나! 알료샤, 귀여운 사람, 너를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아. 맙소사, 네가 어떻게 우리 집에 나타났담! 솔직히 말하면 기다리지도 짐작하지도 못했어. 전에도 네가 올 수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믿지 않았어. 지금은 때가 좋지 않지만, 그래도 네가 와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소파에 앉아, 여기, 그래 이렇게, 내 젊은 초승달 같은 사람. 정말이지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겠어…… 에이, 라키트카, 네가 이 사람을 어제나 그저께 데려왔더라면!…… 뭐, 이래도 기뻐. 어쩌면 그저께가 아니라 지금, 이런 순간에 온 게 더 나을지도 몰라……"

그 여자는 날렵하게 알료샤 곁, 그의 바로 옆 소파에 앉아 그를 넋을 잃은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말로 기뻐했다. 그렇게 말할 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여자의 눈은 빛났고 입술은 웃고 있었는데, 착하고 즐겁게 웃고 있었다. 알료샤는 그 여자의 얼굴에서 이렇게 선한 표정을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어제까지는 그 여자를 거의 만난 적이 없었고, 그 여자에 대해 무시무시한 생각을 품고 있었으며, 어제는 그 여자가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에게 한 악의적이고 간교한 짓에 몹시 충격을 받았기에, 지금 갑자기 그 여자에게서 전혀 다른, 뜻밖의 존재를 보고 무척 놀랐다. 그리고 그는 제 슬픔에 아무리 짓눌려 있었어도 저도 모르게 그 여자를 주의 깊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 여자의 몸가짐도 모두 어제와는 아주 딴판으로 좋아진 것 같았다, 어제처럼 말끝을 달착지근하게 늘이는 투가 거의 없었고, 그 나긋나긋하고 꾸민 몸짓도 없었다…… 모든 것이 소박하고 꾸밈이 없었으며, 몸짓은 빠르고 곧고 스스럼없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몹시 들떠 있었다.

"맙소사, 오늘은 정말 별일이 다 이루어지네." 그 여자가 다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료샤, 내가 왜 이렇게 네가 반가운지 나도 모르겠어. 물어봐, 그래도 나는 몰라."

"어이구, 무엇 때문에 기쁜지도 모른다고?" 라키틴이 피식 웃었다. "전에는 무엇 때문인지 나한테 데려와 달라, 데려와 달라 하고 졸랐잖아. 목적이 있었던 거지."

"전에는 다른 목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지나갔어, 그럴 때가 아니야. 너희한테 대접을 해야겠다, 그게 할 일이야. 나 지금은 마음이 착해졌어, 라키트카. 너도 앉아, 라키트카, 왜 서 있어? 아니, 벌써 앉았어? 라키투시카가 저를 잊을 리 없지. 봐, 알료샤, 저 사람 지금 우리 맞은편에 앉아서 토라져 있어. 내가 왜 너보다 먼저 자기한테 앉으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휴, 우리 라키트카는 잘 토라져, 잘 토라져!" 그루셴카가 웃음을 터뜨렸다. "화내지 마, 라키트카, 오늘은 나 착해. 그런데 왜 그렇게 시무룩하게 앉아 있어, 알료셰치카, 나를 무서워하는 거야?" 그 여자가 즐겁게 놀리며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이 애는 슬픈 일이 있어. 승진을 못 했거든." 라키틴이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승진?"

"이 애 장로가 냄새를 풍겼어."

"냄새를 풍기다니? 너 또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무슨 더러운 소리를 하려는 거지. 입 다물어, 바보야. 알료샤, 네 무릎에 좀 앉게 해 줄래, 이렇게!" 그러고는 갑자기 그 여자는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웃으면서 응석 부리는 고양이처럼 그의 무릎 위로 폴짝 뛰어올라, 오른손으로 다정하게 그의 목을 감았다. "내가 너를 즐겁게 해 줄게, 하느님밖에 모르는 내 귀여운 소년! 아니, 정말로, 내가 네 무릎에 앉아 있어도 괜찮겠어, 화 안 낼 거지? 내려가라고 하면 내려갈게."

알료샤는 잠자코 있었다. 그는 움직이기가 두려워 앉아 있었고, "내려가라고 하면 내려갈게" 하는 그 여자의 말을 들었지만, 얼어붙은 듯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안에 있던 것은, 이를테면 제자리에서 음탕하게 지켜보던 라키틴 같은 사람이 지금 그에게서 기대하고 상상할 수 있었을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의 영혼의 큰 슬픔이 그의 마음에 생겨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삼켜 버렸고, 만약 그가 이 순간 자신을 온전히 돌아볼 수 있었다면, 지금 자기가 온갖 유혹과 시험을 막는 더없이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마음 상태가 온통 막연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었는데도, 그를 짓누르는 그 모든 슬픔에도, 그의 마음속에 생겨나는 어떤 새롭고 이상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놀랐다. 이 여자가, 이 "무서운" 여자가 지금 그를 예전의 두려움으로, 예전에 여자에 대한 공상이 영혼 속에 스칠 때마다 그의 안에 생겨나던 두려움으로 겁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가 누구보다 두려워하던 이 여자가, 그의 무릎에 앉아 그를 끌어안고 있는 이 여자가 지금 갑자기 그의 안에 전혀 다른, 뜻밖의 각별한 느낌을, 그 여자를 향한 어떤 비상하고 더없이 크고 더없이 순진한 호기심의 느낌을 불러일으켰고, 이 모든 것이 이제는 아무 두려움도 없이, 예전의 공포라고는 조금도 없이 일어났다. 바로 이것이 요점이었고, 바로 이것이 저도 모르게 그를 놀라게 했다.

"아무튼 헛소리는 그만들 지껄여." 라키틴이 소리쳤다. "그보다 샴페인이나 내와, 너 빚이 있잖아, 너도 알지!"

"정말 빚이 있어. 알료샤, 나 저 사람한테 너를 데려오면 다른 것 말고도 샴페인까지 주겠다고 약속했거든. 샴페인 가져와, 나도 마실 거야! 페냐, 페냐, 우리한테 샴페인 가져와, 미탸가 두고 간 그 병, 얼른 뛰어가. 내가 인색하기는 해도 한 병은 내놓을게. 라키트카, 너 때문이 아니야, 너는 버섯 나부랭이지만 이 사람은 공작님이니까! 지금 내 영혼이 가득 찬 건 그런 것이 아니지만, 될 대로 되라지, 나도 너희하고 같이 마실 거야, 실컷 놀아 보고 싶어!"

"그런데 너 무슨 순간이 왔다는 거야, 그리고 그 '소식'이라는 게 대체 뭔지 물어봐도 돼, 아니면 비밀이야?" 라키틴이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손가락 튕기기 같은 핀잔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 척 온 힘을 다해 시늉하며 다시 호기심에 끼어들었다.

"에이, 비밀은 아니야, 너도 알잖아." 그루셴카가 갑자기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 여자는 라키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알료샤에게서 조금 몸을 젖혔지만, 여전히 그의 무릎에 앉아 한 팔로 그의 목을 감고 있었다. "장교가 와, 라키틴, 내 장교가 오고 있어!"

"온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벌써 그렇게 가까이 왔어?"

"지금 모크로예에 있어. 거기서 이리로 급사를 보내겠다고 자기가 직접 썼어, 아까 편지를 받았거든. 앉아서 급사를 기다리고 있어."

"이것 봐라! 왜 모크로예야?"

"얘기하자면 길어, 너는 이만큼만 알면 돼."

"그러니 이제 미텐카는, 아이고, 아이고! 그 사람은 알아, 몰라?"

"알긴 뭘 알아! 전혀 몰라! 알았다면 죽이려 들었을 거야. 그렇지만 나는 이제 그런 건 전혀 안 무서워, 이제 그 사람 칼이 무섭지 않아. 입 다물어, 라키트카, 나한테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얘기는 꺼내지도 마.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짓이겨 놨어. 그리고 이 순간에는 그런 건 하나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알료셰치카라면 생각할 수 있어, 나는 알료셰치카를 보고 있어…… 그래, 나 보고 웃어 줘, 귀여운 사람, 기운 내, 내 어리석음을, 내 기쁨을 보고 웃어 줘…… 아, 웃었다, 웃었어! 봐, 얼마나 다정하게 보는지. 있잖아, 알료샤, 나는 네가 그저께 일 때문에, 그 아가씨 일 때문에 나한테 화가 났다고 줄곧 생각했어. 나는 개였어, 그래…… 그렇지만 그래도 그렇게 된 게 잘된 거야. 나쁘기도 했고 잘되기도 했어." 그루셴카가 갑자기 생각에 잠겨 피식 웃었고, 그 웃음에 갑자기 어떤 잔인한 빛이 스쳤다. "미탸가 그러는데 그 아가씨가 '저런 건 채찍으로 다스려야 해!' 하고 소리쳤다더라. 그때 내가 그 아가씨를 정말 단단히 모욕했어. 나를 불러다 이기고 싶어 했지, 제 초콜릿으로 나를 홀리려고 했어…… 아니, 그렇게 된 게 잘된 거야." 그 여자는 다시 피식 웃었다. "그래도 네가 화났을까 봐 자꾸 겁이 나……"

"정말 그렇네." 라키틴이 갑자기 진지하게 놀라며 끼어들었다. "알료샤, 이 여자가 정말로 너를 무서워해, 너 같은 병아리를."

"너한테나 이 사람이 병아리지, 라키트카, 그래…… 너한테는 양심이 없으니까, 그래! 있잖아, 나는 이 사람을 영혼으로 사랑해, 그래! 알료샤, 내가 너를 온 영혼으로 사랑한다는 걸 믿어?"

"아이고, 이런 뻔뻔한 여자 봤나! 알렉세이, 이 여자가 너한테 사랑을 고백하고 있어!"

"그럼 뭐 어때서, 사랑해."

"그럼 장교는? 모크로예에서 올 금쪽같은 소식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참 계집다운 소리 나왔네!"

"나 화나게 하지 마, 라키트카." 그루셴카가 뜨겁게 말을 받았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나는 알료샤를 다르게 사랑해. 맞아, 알료샤, 전에는 너한테 음흉한 생각을 품었어. 나는 천하고 사나운 여자니까. 그런데 또 어떤 때는, 알료샤, 너를 내 양심처럼 보곤 했어. 늘 생각했어. '저런 사람은 나같이 더러운 여자를 지금쯤 얼마나 경멸할까.' 그저께도 아가씨한테서 이리로 뛰어오면서 그 생각을 했어. 나는 오래전부터 너를 그렇게 눈여겨봤어, 알료샤. 미탸도 알아, 그 사람한테 말했거든. 미탸는 그걸 알아들어. 믿겠어? 어떤 때는, 정말이야, 알료샤, 너를 보면 부끄러워, 나 자신이 온통 부끄러워……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서 너를 생각하게 되었는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어, 기억도 안 나……"

페냐가 들어와 탁자 위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쟁반에는 마개를 딴 병 하나와 가득 따른 잔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샴페인 왔다!" 라키틴이 소리쳤다. "너 들떴어, 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 제정신이 아니야. 한 잔 마시면 춤추러 나가겠다. 에이, 이것도 제대로 못 했네." 그는 샴페인을 살펴보며 덧붙였다. "부엌에서 노파가 따랐구먼, 병은 마개도 없이 가져왔고, 미지근하기까지 해. 뭐, 이렇게라도 줘."

그는 탁자로 다가가 잔을 들어 단숨에 비우고 또 한 잔을 따랐다.

"샴페인은 자주 걸리는 게 아니거든." 그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자, 알료샤, 잔 들어, 솜씨 좀 보여 줘. 무엇을 위해 마실까? 천국의 문을 위해서? 그루샤, 잔 들어, 너도 천국의 문을 위해 마셔."

"무슨 천국의 문?"

그 여자는 잔을 들었다. 알료샤도 제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아니, 안 마시는 게 낫겠어!" 그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큰소리치더니!" 라키틴이 소리쳤다.

"그럼 나도 안 마실래." 그루셴카가 말을 받았다. "마시고 싶지도 않아. 라키트카, 너 혼자 한 병 다 마셔. 알료샤가 마시면 그때 나도 마실게."

"송아지 같은 응석이 시작됐군!" 라키틴이 놀려 댔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 애 무릎에 앉아 있고! 이 애는 슬픈 일이 있다 치자, 그런데 너는 뭐야? 이 애는 제 하느님께 반역을 일으켜서 소시지를 처먹으려 들었다고……"

"어째서?"

"이 애 장로가 오늘 죽었어, 조시마 장로가, 성인 말이야."

"그럼 조시마 장로님이 돌아가셨구나!" 그루셴카가 외쳤다. "맙소사, 나는 그것도 몰랐네!" 그 여자는 경건하게 성호를 그었다. "맙소사, 그런데 나는 뭐야, 지금 이 사람 무릎에 앉아 있다니!" 그 여자는 갑자기 겁에 질린 듯 펄쩍 놀라더니 순식간에 무릎에서 뛰어내려 소파로 옮겨 앉았다. 알료샤는 놀란 눈으로 그 여자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무언가가 빛나는 것 같았다.

"라키틴." 그가 갑자기 크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내 하느님께 반역했다고 나를 놀리지 마. 나는 너한테 앙심을 품고 싶지 않아, 그러니 너도 좀 더 착하게 굴어 줘. 나는 너는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보물을 잃었어, 그러니 너는 지금 나를 심판할 수 없어. 그보다 여기, 이 사람을 봐.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아껴 주었는지 봤지? 나는 사악한 영혼을 찾으러 여기 왔어, 내가 비열하고 사악했으니까 나 스스로 그쪽으로 끌렸던 거야, 그런데 나는 진실한 누이를 찾았어, 보물을 찾았어, 사랑하는 영혼을…… 이 사람은 방금 나를 아껴 주었어…… 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 네 이야기야. 너는 방금 내 영혼을 되살려 주었어."

알료샤의 입술이 떨렸고 숨이 막혔다. 그는 말을 멈추었다.

"꼭 이 여자가 너를 구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네!" 라키틴이 심술궂게 웃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너를 삼키려고 했어, 너 그거 알아?"

"그만해, 라키트카!" 그루셴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둘 다 입 다물어. 이제 내가 다 말할게. 알료샤, 너는 입 다물어, 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부끄러워지니까, 나는 착한 게 아니라 사악하니까. 나는 그런 여자야. 그리고 라키트카, 너는 거짓말을 하니까 입 다물어. 이 사람을 삼키고 싶었던 비열한 생각이 있기는 했어. 그렇지만 지금 너는 거짓말을 하는 거야,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 그리고 다시는 네 말을 내 귀에 들리게 하지 마, 라키트카!" 그루셴카는 이 모든 말을 비상하게 흥분해서 했다.

"이것 봐라, 둘 다 미쳐 날뛰네!" 라키틴이 두 사람을 놀라서 살펴보며 쉿쉿거렸다. "미친 사람들처럼, 꼭 내가 정신 병원에 들어온 것 같아. 둘이 같이 맥이 풀렸어, 곧 울기 시작하겠군!"

"그래, 울 거야, 울 거야!" 그루셴카가 되뇌었다. "이 사람이 나를 제 누이라고 불렀어, 나는 앞으로 그걸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다만 이것만은 알아 둬, 라키트카, 나는 사악해도 그래도 양파 한 뿌리는 준 적이 있어."

"무슨 양파 한 뿌리? 쳇, 제기랄, 정말로 미쳤구먼!"

라키틴은 두 사람의 들뜬 모습에 놀랐고, 언짢아하며 성을 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마침 인생에서 흔치 않게 영혼을 뒤흔들 만한 모든 일이 한꺼번에 겹쳤다는 것쯤은 그도 헤아릴 수 있었을 텐데도. 그러나 제 자신에 관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무척 예민하게 알아차리던 라키틴은 이웃의 감정과 느낌을 알아차리는 데는 몹시 둔했는데, 얼마쯤은 젊어서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고, 얼마쯤은 그의 커다란 이기심 때문이었다.

"있잖아, 알료셰치카." 그루셴카가 갑자기 그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양파 한 뿌리를 준 적이 있다고 내가 라키트카한테 자랑했지만, 너한테는 자랑하지 않을게, 너한테는 다른 뜻으로 이 얘기를 할게. 이건 그냥 옛이야기야. 그렇지만 좋은 옛이야기야. 내가 아직 어린애였을 때 지금 우리 집 식모로 있는 마트료나한테서 들었어. 들어 봐, 이래. '옛날에 아주아주 심술궂은 아낙이 하나 살다가 죽었어. 그런데 그 여자가 죽고 나서 착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았어. 악마들이 그 여자를 붙잡아 불바다에 던졌어. 그러자 그 여자의 수호천사가 서서 생각해. 하느님께 말씀드릴 만한, 그 여자가 한 무슨 착한 일을 떠올릴 수 없을까. 천사가 생각해 내고 하느님께 말해. 그 여자가 텃밭에서 양파 한 뿌리를 뽑아 거지 여자에게 준 적이 있습니다, 하고. 그러자 하느님이 대답하셔. 그럼 너는 바로 그 양파 한 뿌리를 가져다 불바다 속 그 여자에게 내밀어라, 그 여자가 붙잡고 끌려 나오게 해라, 네가 그 여자를 불바다 밖으로 끌어내면 천국에 가게 하고, 양파가 끊어지면 그 아낙은 지금 있는 그곳에 남아야 한다, 하고. 천사가 아낙에게 달려가 양파 한 뿌리를 내밀었어. 자, 아낙아, 이걸 붙잡고 따라 올라오너라, 하고. 그러고는 조심조심 그 여자를 끌어당기기 시작해서 거의 다 끌어냈는데, 불바다 속 다른 죄인들이 그 여자가 끌려 나가는 걸 보고는 저희도 함께 끌려 나가려고 모두 그 여자에게 매달리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 아낙은 아주아주 심술궂은 여자라 그들을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어. "끌려 나가는 건 나지 너희가 아니야, 이건 내 양파지 너희 양파가 아니야." 그 여자가 이 말을 하자마자 양파가 끊어져 버렸어. 아낙은 불바다에 떨어져 오늘날까지 불타고 있어. 천사는 울면서 떠나갔어.' 이게 그 옛이야기야, 알료샤. 나는 이걸 외워 두었어, 내가 바로 그 심술궂은 아낙이니까. 라키트카한테는 양파 한 뿌리를 준 적이 있다고 자랑했지만, 너한테는 다르게 말할게. 나는 평생 겨우 무슨 양파 한 뿌리쯤을 준 게 다야, 나한테 있는 착한 일은 그것뿐이야. 그러니 그다음부터는 나를 칭찬하지 마, 알료샤, 나를 착한 여자로 여기지 마. 나는 사악해, 아주아주 심술궂어. 네가 칭찬하면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거야. 에이, 다 털어놓고 뉘우칠래. 들어 봐, 알료샤. 나는 너를 우리 집에 꾀어 들이고 싶어서 라키트카를 얼마나 졸랐는지, 너를 데려오면 25루블을 주겠다고까지 약속했어. 거기 서, 라키트카, 기다려!" 그 여자는 빠른 걸음으로 탁자로 다가가 서랍을 열고 지갑을 꺼내더니, 거기서 25루블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이런 헛소리가! 이런 헛소리가!" 어리둥절해진 라키틴이 외쳤다.

"받아, 라키트카, 빚이야. 설마 마다하지는 않겠지, 네가 달라고 했잖아." 그러고는 그 여자가 지폐를 그에게 던졌다.

"마다할 리가 있나." 라키틴이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눈에 띄게 당황했지만 짐짓 대범한 척 부끄러움을 감추었다. "이건 우리한테 심히 쓸모가 있겠군. 바보들은 똑똑한 사람한테 이득을 주려고 있는 거니까."

"그럼 이제 입 다물어, 라키트카.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다 네 귀를 위한 게 아니야. 저 구석에 앉아서 입 다물고 있어. 너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니 입 다물어."

"내가 무엇 때문에 너희를 사랑해야 하는데?" 라키틴이 이제는 앙심을 숨기지도 않고 쏘아붙였다. 25루블짜리 지폐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지만, 알료샤 앞에서 그는 정말로 부끄러웠다. 그는 알료샤가 알지도 못하게 나중에 삯을 받을 셈이었는데, 이제 부끄러움 때문에 화가 치밀었다. 이 순간까지 그는 그루셴카가 아무리 핀잔을 주어도 그 여자에게 크게 맞서지 않는 것이 무척 현명하다고 여겼다. 그 여자가 그를 어떤 힘으로 쥐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도 화가 났다.

"사랑하는 데는 무슨 까닭이 있는 거야. 그런데 너희 둘이 나한테 해 준 게 뭐야?"

"너는 아무 까닭 없이 사랑해 봐, 알료샤가 사랑하듯이."

"그럼 저 애가 무엇으로 너를 사랑하고, 너한테 무슨 대단한 걸 보여 줬길래 네가 이렇게 야단이야?"

그루셴카는 방 한가운데 서서 뜨겁게 말했다. 그 여자의 목소리에 히스테리 섞인 가락이 들렸다.

"입 다물어, 라키트카, 너는 우리 사이를 아무것도 몰라! 그리고 앞으로 감히 나한테 반말하지 마, 허락하지 않을 테니. 어디서 그런 배짱이 생겼어, 그래! 구석에 앉아서 내 하인처럼 입 다물고 있어. 자, 이제 알료샤, 너 하나한테만 숨김없는 진실을 다 말할게, 내가 얼마나 몹쓸 년인지 네가 알 수 있게! 라키트카가 아니라 너한테 말하는 거야. 나는 너를 망치고 싶었어, 알료샤, 이건 커다란 진실이야, 아주 그렇게 마음먹었어. 라키트카를 돈으로 매수해서 너를 데려오게 할 만큼 그러고 싶었어.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마음먹었을까? 알료샤, 너는 아무것도 몰랐어, 나한테서 고개를 돌렸어, 지나가다가도 눈을 내리깔았지.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너를 백 번이나 쳐다봤고, 모두에게 네 이야기를 묻기 시작했어. 네 얼굴이 내 마음에 남았어. '저 사람은 나를 경멸해, 나를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을 거야' 하고 생각했지. 그러다 마침내 그런 마음이 들어서, 나 자신이 놀랄 지경이었어. 내가 왜 저런 소년을 무서워하지? 통째로 삼켜 버리고 웃어 줄 테다. 아주 독이 올랐어. 믿겠어? 여기서는 아무도 그런 못된 일로 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를 찾아올 엄두를 내거나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해. 나한테는 그 영감 하나뿐이야, 나는 그 영감한테 묶여 있고 팔려 있어, 사탄이 우리 혼례를 올려 줬지. 그 대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데 너를 보고는 마음먹었어. 저 사람을 삼켜 버리겠다고. 삼키고 웃어 줄 테다. 봐, 네가 누이라고 부른 내가 이렇게 사악한 개야! 이제 나를 모욕한 그 사람이 왔어. 지금 나는 앉아서 소식을 기다려. 그런데 그 사람이 나한테 무엇이었는지 알아? 다섯 해 전에 쿠지마가 나를 이리로 데려왔을 때, 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사람들한테서 숨어 앉아 있곤 했어, 가냘프고 어리석은 계집애가 앉아서 흐느끼고, 밤새도록 잠도 못 자고 생각했지. '나를 모욕한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을까? 아마 다른 여자하고 나를 비웃고 있겠지. 두고 봐, 그 사람을 보기만 하면, 언젠가 만나기만 하면, 그때는 갚아 줄 거야, 꼭 갚아 줄 거야!' 밤에 어둠 속에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며 이 모든 걸 곱씹었어, 일부러 내 마음을 찢었고, 앙심으로 그 마음을 달랬어. '두고 봐, 두고 봐, 갚아 줄 거야!' 어둠 속에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곤 했어. 그러다 갑자기, 나는 그 사람한테 아무것도 못 하는데 그 사람은 지금 나를 비웃고 있다는 게, 아니 어쩌면 아주 잊어버려서 기억도 못 한다는 게 생각나면, 침대에서 바닥으로 몸을 던져 힘없는 눈물을 쏟으며 새벽까지 떨고 또 떨었어. 아침에 일어나면 개보다 더 사나워져서 온 세상을 삼켜 버리고 싶었어. 그다음엔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나는 밑천을 모으기 시작했고, 인정사정없어졌고, 살이 붙었어, 철이 들었다고 생각하겠지, 응? 그런데 아니야, 온 세상에서 아무도 그걸 보지도 알지도 못하지만, 밤의 어둠이 내리면 다섯 해 전 계집애였을 때와 똑같이 어떤 때는 누워서 이를 갈며 밤새 울어. '두고 봐, 두고 봐!' 하고 생각하면서. 이 얘기 다 들었지? 그럼 이제 나를 어떻게 이해해? 한 달 전에 갑자기 바로 그 편지가 나한테 왔어. 그 사람이 온다는 거야, 홀아비가 되어서 나를 만나고 싶다는 거야. 그때 나는 숨이 턱 막혔어, 맙소사, 그러다 갑자기, 그 사람이 와서 휘파람 한 번 불며 나를 부르면 나는 매 맞은 강아지처럼, 죄 지은 강아지처럼 그 사람한테 기어갈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어. '나는 비열한가, 아닌가, 그 사람한테 달려갈까, 안 달려갈까?' 그리고 이 한 달 내내 나 자신한테 어찌나 화가 났는지, 다섯 해 전보다 더 지독했어. 이제 알겠어, 알료샤, 내가 얼마나 사납고 얼마나 독한 여자인지, 너한테 진실을 다 털어놓았어! 그 사람한테 달려가지 않으려고 미탸를 가지고 놀았어. 입 다물어, 라키트카, 네가 나를 심판할 일이 아니야, 너한테 한 말이 아니야. 너희가 오기 전에 나는 여기 누워서 기다리며 생각했어, 내 운명을 다 결정하고 있었어. 그때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너희는 절대 모를 거야. 그래, 알료샤, 네 아가씨한테 그저께 일로 화내지 말라고 전해 줘!…… 그리고 내가 지금 어떤지 온 세상에서 아무도 몰라, 알 수도 없어…… 어쩌면 나는 오늘 거기 칼을 가지고 갈지도 모르니까, 아직 그건 정하지 않았어……"

이 "가엾은" 말을 내뱉고 나자 그루셴카는 갑자기 견디지 못하고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파의 베개에 몸을 던져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었다. 알료샤는 자리에서 일어나 라키틴에게 다가갔다.

"미샤." 그가 말했다. "화내지 마. 이 사람이 너를 모욕했지만 화내지 마. 방금 이 사람 말 들었지? 사람의 영혼한테 그렇게 많은 걸 요구하면 안 돼, 좀 더 자비로워야 해……"

알료샤는 걷잡을 수 없이 북받치는 마음으로 이 말을 했다. 그는 마음을 털어놓아야 했고, 그래서 라키틴에게 말을 건넸다. 라키틴이 없었다면 그는 혼자서라도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라키틴이 비웃듯 바라보았고, 알료샤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너 아까 네 장로한테서 장전을 받아 와서 이제 네 장로를 나한테 쏘아 댄 거야, 알료셴카, 하느님의 귀여운 사람아." 라키틴이 증오 어린 미소를 띠고 말했다.

"웃지 마, 라키틴, 비웃지 마, 돌아가신 분 얘기는 하지 마. 그분은 땅 위에 있었던 누구보다 높은 분이야!" 알료샤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너를 심판하는 사람으로 말하려고 일어선 게 아니야, 나 자신이 피고 가운데 가장 못한 자로서 말하는 거야. 이 사람 앞에서 내가 뭐야? 나는 파멸하려고 여기 왔어, 그리고 '될 대로 되라, 될 대로 되라!' 하고 말했어. 그것도 내 비겁함 때문에. 그런데 이 사람은 다섯 해를 괴로워하고서도, 누군가 처음으로 와서 진실한 말 한마디를 해 주자마자 다 용서하고 다 잊고 울고 있어! 이 사람을 모욕한 사람이 돌아와서 부르니까, 이 사람은 그 사람을 다 용서하고 기뻐하며 그 사람한테 서둘러 가고, 칼은 가져가지 않을 거야, 가져가지 않을 거야! 아니, 나는 그렇지 못해. 미샤, 네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해! 나는 오늘, 방금 이 가르침을 받았어…… 이 사람은 사랑으로 우리보다 높아…… 이 사람이 지금 이야기한 걸 전에 이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어? 아니, 못 들었지. 들었다면 벌써 오래전에 다 알아들었을 거야…… 그리고 그저께 모욕당한 다른 사람도, 그 사람도 이 사람을 용서해 주었으면! 그리고 알게 되면 용서할 거야…… 그리고 알게 될 거야…… 이 영혼은 아직 화해하지 못한 영혼이야, 아껴 주어야 해…… 이 영혼에는 보물이 있을지도 몰라……"

알료샤는 숨이 끊겨 말을 멈추었다. 라키틴은 온갖 앙심에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얌전한 알료샤에게서 이런 긴 열변이 나오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

"이것 봐라, 변호사가 나셨네! 너 이 여자한테 반하기라도 한 거야? 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 우리 금욕 수도자가 정말로 너한테 반했어, 네가 이겼어!" 그가 뻔뻔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그루셴카는 베개에서 고개를 들고, 방금 흘린 눈물로 어쩐지 갑자기 부어오른 얼굴에 환히 피어난 감동한 미소를 띠고 알료샤를 바라보았다.

"내버려 둬, 알료샤, 내 케루빔.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봤잖아, 말할 상대를 잘도 골랐네. 미하일 오시포비치." 그 여자는 라키틴을 돌아보았다. "너를 욕한 걸 용서해 달라고 빌려고 했는데, 이제 다시 그러기 싫어졌어. 알료샤, 이리 와, 여기 앉아." 그 여자는 기쁜 미소를 띠고 그를 손짓해 불렀다. "그래, 이렇게, 여기 앉아. 나한테 말해 줘." (그 여자는 그의 손을 잡고 미소 지으며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말해 줘.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해, 안 해? 나를 모욕한 그 사람을, 사랑해, 안 해? 너희가 오기 전에 나는 여기 어둠 속에 누워서 줄곧 내 마음한테 물었어.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해, 안 해? 알료샤, 네가 정해 줘, 때가 왔어. 네가 정하는 대로 될 거야. 그 사람을 용서할까, 말까?"

"벌써 용서했잖아." 알료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말로 용서했네." 그루셴카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이 얼마나 비열한 마음인지! 내 비열한 마음을 위해!" 그 여자는 갑자기 탁자에서 잔을 낚아채 단숨에 마시고는 높이 쳐들었다가 힘껏 바닥에 내던졌다. 잔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졌다. 그 여자의 미소에 어떤 잔인한 빛이 스쳤다.

"그런데 어쩌면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지도 몰라." 그 여자는 땅으로 눈을 내리깐 채, 혼자서 저 자신에게 말하듯 어쩐지 위협하듯 말했다. "어쩌면 마음이 이제 겨우 용서하려는 참인지도 몰라. 아직 그 마음하고 더 싸워 볼 거야. 있잖아, 알료샤, 나는 다섯 해 동안 흘린 내 눈물을 무척 사랑하게 되었어…… 어쩌면 나는 그 사람이 아니라 내 모욕만 사랑하게 된 건지도 몰라!"

"아이고, 그 사람 처지가 되고 싶지는 않구먼!" 라키틴이 쉿쉿거렸다.

"되지도 못할 거야, 라키트카, 너는 절대 그 사람 처지가 되지 못해. 너는 나한테 신발이나 지어 줄 거야, 라키트카, 너는 그런 일에나 부려 먹을 거야. 나 같은 여자는 너한테는 절대 차례가 안 와…… 어쩌면 그 사람한테도 안 올지 몰라……"

"그 사람한테도? 그럼 왜 차려입었어?" 라키틴이 짓궂게 놀렸다.

"옷 가지고 나를 나무라지 마, 라키트카, 너는 아직 내 마음을 다 몰라! 내키면 옷을 찢어 버릴 거야,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찢어 버릴 거야." 그 여자가 낭랑하게 소리쳤다. "이 옷이 무엇 때문인지 너는 몰라, 라키트카! 어쩌면 그 사람한테 나가서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 '이런 나를 본 적 있어, 아직 없어?' 그 사람은 열일곱 살, 가냘프고 폐병 앓는 울보인 나를 버리고 갔어. 그러니 그 사람 곁에 앉아서 홀리고 애태우게 해 줄 거야. '지금 내가 어떤지 봤지?' 하고 말할 거야. '그럼 그대로 계세요, 나리. 수염만 적시고 입에는 한 방울도 못 넣은 채로!' 어쩌면 이 옷은 바로 그걸 위한 건지도 몰라, 라키트카." 그루셴카가 심술궂게 웃으며 말을 맺었다. "나는 사나워, 알료샤, 독해. 내 옷을 찢고, 내 몸을, 내 아름다움을 망가뜨리고, 얼굴을 불로 지지고 칼로 그어 버리고, 동냥하러 나갈 거야. 내키면 이제 아무 데도, 아무한테도 가지 않을 거야. 내키면 내일 당장 쿠지마가 나한테 준 걸 모두, 그 사람 돈까지 몽땅 돌려보내고, 나는 평생 날품팔이 일꾼으로 살 거야!…… 내가 그렇게 못 할 것 같아, 라키트카, 그럴 엄두도 못 낼 것 같아? 할 거야, 할 거야,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어, 나를 약 올리지만 마…… 그리고 그 사람은 쫓아 버릴 거야, 그 사람한테는 주먹 감자를 먹여 줄 거야, 그 사람은 나를 다시는 못 볼 거야!"

마지막 말을 그 여자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소리쳤지만, 다시 견디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베개에 몸을 던져 또다시 흐느끼며 몸을 떨었다. 라키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 시간이야." 그가 말했다. "늦었어, 수도원에서 안 들여보내 줄 거야."

그루셴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너 가려는 거야, 알료샤!" 그 여자가 비통하게 놀라며 외쳤다. "그럼 너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나를 온통 일깨워 놓고, 갈가리 찢어 놓고, 그런데 또 이 밤이 오고, 또 나 혼자 남아야 하잖아!"

"설마 이 애가 너희 집에서 자고 가겠어? 하기야 이 애가 원하면 그러라지! 나는 혼자 갈게!" 라키틴이 빈정거리며 농담을 던졌다.

"입 다물어, 사악한 인간아." 그루셴카가 사납게 소리쳤다. "너는 이 사람이 와서 나한테 해 준 그런 말을 한 번도 해 준 적이 없어."

"이 애가 너한테 대체 무슨 말을 했는데?" 라키틴이 짜증스럽게 투덜거렸다.

"나도 몰라, 모르겠어, 이 사람이 나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내 마음에 와닿았어, 이 사람이 내 마음을 뒤집어 놓았어…… 처음으로, 단 한 사람, 이 사람이 나를 불쌍히 여겨 주었어, 그래! 내 케루빔, 너는 왜 진작 오지 않았어?" 그 여자는 갑자기 넋이 나간 듯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평생 너 같은 사람을 기다렸어, 언젠가 그런 사람이 와서 나를 용서해 주리라는 걸 알았어. 누군가 나를, 이 더러운 여자를, 치욕 때문만이 아니라 사랑해 주리라고 믿었어!……"

"내가 너한테 뭘 해 줬다고?" 알료샤가 감동해 미소 지으며 그 여자에게 몸을 숙이고 다정하게 그 여자의 두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나는 너한테 양파 한 뿌리를 주었을 뿐이야, 아주 작은 양파 한 뿌리를, 그것뿐이야, 그것뿐이야!……"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 자신도 울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갑자기 현관 쪽에서 소란이 일더니 누군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루셴카는 몹시 겁에 질린 듯 벌떡 일어났다. 페냐가 소란스럽게 소리치며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마님, 마님, 아이고 마님, 급사가 말을 달려왔어요!" 하녀가 즐겁게,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모크로예에서 마님을 모시러 포장마차가 왔어요. 마부 티모페이의 트로이카예요. 곧 새 말로 바꿔 맬 거예요…… 편지요, 편지, 마님, 여기 편지요!"

편지는 하녀의 손에 있었고, 하녀는 소리치는 내내 편지를 허공에 흔들어 댔다. 그루셴카는 하녀에게서 편지를 낚아채 촛불에 갖다 댔다. 그것은 몇 줄밖에 안 되는 쪽지일 뿐이었고, 그 여자는 순식간에 그것을 읽었다.

"불렀어!" 그 여자가 온통 창백해져서, 병적인 미소로 얼굴이 일그러진 채 소리쳤다. "휘파람을 불었어! 기어가라, 강아지야!"

그러나 그 여자가 망설이듯 서 있었던 것은 한순간뿐이었다. 갑자기 피가 머리로 몰려 그 여자의 두 뺨을 불처럼 물들였다.

"갈 거야!" 그 여자가 갑자기 외쳤다. "내 다섯 해! 안녕히들! 잘 있어, 알료샤, 운명은 정해졌어…… 가, 가, 이제 다들 나한테서 가, 내가 다시는 너희를 보지 않게!…… 그루셴카는 새 삶으로 날아갔어…… 라키트카, 너도 나를 나쁘게 기억하지 마. 어쩌면 나는 죽으러 가는지도 몰라! 휴! 꼭 술 취한 것 같아!"

그 여자는 갑자기 두 사람을 내버려 두고 제 침실로 달려갔다.

"뭐, 이제 저 여자는 우리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지!" 라키틴이 투덜거렸다. "가자, 안 그러면 또 그 계집 같은 울부짖음이 시작될 테니까. 그 눈물 바람 섞인 울부짖음에는 이제 진저리가 나……"

알료샤는 기계처럼 이끌려 나갔다. 마당에는 포장마차가 서 있었고, 말을 풀고, 등불을 들고 다니며 부산을 떨었다. 열린 대문으로 새 트로이카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알료샤와 라키틴이 현관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갑자기 그루셴카의 침실 창문이 열리더니, 그 여자가 알료샤의 뒤에 대고 낭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알료셰치카, 네 형 미텐카한테 안부 전해 줘, 그리고 자기를 망친 나를 나쁘게 기억하지 말라고 해. 그리고 내 말 그대로 이렇게도 전해 줘. '그루셴카는 고귀한 당신이 아니라 비열한 놈 차지가 됐어요!' 그리고 이것도 덧붙여 줘. 그루셴카가 그 사람을 한 시간 동안 사랑했다고, 딱 한 시간만 사랑했다고. 그러니 그 사람이 이제부터 평생 그 한 시간을 기억하라고, 그루셴카가 평생 당신한테 그렇게 당부했다고!……"

그 여자는 울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창문이 쾅 닫혔다.

"흠, 흠!" 라키틴이 웃으며 우물거렸다. "형님 미텐카의 목을 따 놓고 평생 기억하라고까지 하는구먼. 이런 육식성이라니!"

알료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치 듣지도 못한 것 같았다. 그는 몹시 서두르기라도 하듯 라키틴 곁에서 빠르게 걸었고, 넋이 나간 듯 기계처럼 걸었다. 라키틴은 갑자기 무언가에 찔린 듯했다. 마치 누가 그의 생생한 상처를 손가락으로 건드린 것 같았다. 그가 아까 그루셴카와 알료샤를 맞붙여 줄 때 기대한 것은 전혀 이런 일이 아니었고, 그가 무척 바라던 일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다.

"폴란드인이야, 그 여자의 그 장교라는 놈은."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는 감정을 누르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장교도 아니야. 시베리아 어디, 중국 국경 근처 세관에서 관리로 일했대. 틀림없이 비리비리한 폴란드 녀석이겠지. 자리를 잃었다더군. 이제 그루셴카한테 밑천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돌아온 거야. 기적이라는 게 고작 그거야."

알료샤는 또 듣지도 못한 것 같았다. 라키틴은 참지 못했다.

"그래, 죄 많은 여자를 회개시켰냐?" 그는 알료샤에게 심술궂게 웃었다. "창녀를 진리의 길로 돌려세웠어? 일곱 귀신을 쫓아냈냐, 응? 아까 기다리던 우리 기적이 여기서 일어났구먼!"

"그만해, 라키틴." 알료샤가 영혼 속 고통을 안고 대답했다.

"너 지금 아까 받은 25루블 때문에 나를 '경멸하는' 거지? 진실한 친구를 팔아넘겼다, 이거지. 그래도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나는 유다가 아니야."

"아, 라키틴, 정말이야, 나는 그 일을 잊고 있었어." 알료샤가 외쳤다. "네가 방금 일깨워 주었지……"

그러나 라키틴은 이제 완전히 화가 났다.

"제기랄, 너희 모두 하나하나 다 꺼져 버려라!" 그가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젠장, 내가 왜 너하고 얽혔담! 이제부터 너하고는 알고 지내고 싶지도 않아. 혼자 가, 저기 네 길이 있어!"

그러고는 홱 돌아서서 다른 거리로 들어가 버리고, 알료샤를 어둠 속에 혼자 남겨 두었다. 알료샤는 읍을 벗어나 들판을 지나 수도원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