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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제1장 어렴풋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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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어렴풋한 것들

이슈메일이라고 불러 다오. 몇 해 전, 정확히 얼마나 되었는지는 묻지 말기를. 지갑에는 돈이 거의 아니 아예 없었고 뭍에는 딱히 마음을 끄는 일도 없어서, 나는 잠시 배를 타고 나가 세상의 물로 된 부분을 둘러보리라 마음먹었다. 그것이 내가 울적한 기분을 쫓아내고 피가 제대로 돌게 하는 방법이다. 입가가 험악하게 굳어 갈 때마다, 내 영혼에 축축하고 진눈깨비 내리는 11월이 찾아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관 파는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마주치는 장례 행렬마다 맨 뒤에 따라붙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울증이 나를 단단히 휘어잡아서 일부러 거리로 걸어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자를 하나하나 쳐서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굳건한 도덕 원칙이 필요할 지경이 될 때마다, 나는 되도록 서둘러 바다로 나갈 때가 왔다고 여긴다. 이것이 내게는 권총과 총알을 대신한다. 카토는 철학자다운 멋을 부리며 제 칼 위로 몸을 던졌지만, 나는 조용히 배에 오른다.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할 뿐, 거의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정도로, 언젠가 한 번쯤은, 바다를 두고 나와 거의 같은 감정을 품는다.

자, 여기 그대들의 섬 도시 맨해토스가 있다. 인도의 섬들이 산호초에 둘러싸이듯 이 도시는 부두에 빙 둘러싸여 있고, 상업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도시를 에워싼다. 오른쪽으로 가든 왼쪽으로 가든 거리는 그대를 물가로 데려간다. 도시의 맨 끝 시내에는 배터리 공원이 있는데, 그곳의 웅장한 방파제는 파도에 씻기고, 몇 시간 전만 해도 뭍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를 불던 산들바람에 식는다. 거기 모여 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라.

꿈결 같은 안식일 오후에 이 도시를 한 바퀴 돌아보라. 콜리어스 훅에서 코엔티스 슬립까지 가고, 거기서 화이트홀을 지나 북쪽으로 가 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말 없는 보초처럼 도시 둘레 곳곳에 자리 잡고, 바다를 꿈꾸며 넋을 잃은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서 있다. 더러는 말뚝에 기대어 있고, 더러는 부두 끝에 앉아 있고, 더러는 중국에서 온 배의 뱃전 너머를 내다보고, 더러는 바다 쪽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보려고 애쓰는 듯 돛대 밧줄 높이 올라가 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뭍사람이다. 평일에는 욋가지와 회반죽으로 지은 벽 안에 갇혀 계산대에 묶이고, 걸상에 못 박히고, 책상에 꽉 붙들려 지내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푸른 들판이 사라졌단 말인가? 저들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런데 보라! 사람들이 또 몰려온다. 곧장 물가로 걸어오는데 아무래도 물에 뛰어들 작정인 것 같다. 이상한 일이다! 저들은 뭍의 맨 끝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한다. 저기 창고 건물들이 드리운 그늘 아래서 어슬렁거리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그렇다. 물에 빠지지 않는 한 할 수 있는 데까지 물에 바싹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거기 저들이 서 있다. 몇 마일씩, 몇 리그씩 늘어서서. 모두 내륙 사람들인데, 좁은 길과 골목에서, 거리와 큰길에서, 동서남북 사방에서 온다. 그런데도 여기서 모두 하나가 된다. 말해 보라, 저 모든 배에 실린 나침반 바늘의 자력이 저들을 그리로 끌어당기는 것인가?

하나 더 보자. 그대가 시골에 있다고 해 보자. 호수가 많은 어느 높은 고장에 있다고 하자. 어느 길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골라 걸어 보라. 십중팔구 그 길은 그대를 골짜기로 이끌어 내려가 개울이 고인 웅덩이 곁에 데려다 놓을 것이다. 거기에는 마법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넋이 빠진 사람을 가장 깊은 몽상에 잠기게 해 두고, 그 사람을 일으켜 세워 발을 떼게 해 보라. 그 고장 어딘가에 물이 있기만 하면 그는 틀림없이 그대를 물가로 이끌 것이다. 언젠가 아메리카의 큰 사막에서 목이 마르거든, 그대의 대상(隊商)에 마침 형이상학 교수가 끼어 있다면 이 실험을 해 보라. 그렇다, 누구나 알듯이 명상과 물은 영원히 짝지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 화가가 한 사람 있다. 그는 소코 골짜기를 통틀어 가장 꿈결 같고, 가장 그늘지고, 가장 고요하고, 가장 매혹적인 낭만의 풍경 한 조각을 그대에게 그려 주고 싶어 한다. 그가 쓰는 가장 중요한 재료는 무엇인가? 저기 그의 나무들이 서 있다. 나무마다 줄기가 비어 있어 그 속에 은자와 십자가가 들어 있을 것만 같다. 여기에는 그의 풀밭이 잠들어 있고 저기에는 그의 소들이 잠들어 있으며, 저쪽 오두막에서는 졸음에 겨운 연기가 피어오른다. 구불구불한 길이 먼 숲 깊숙이 감돌아 들어가, 산비탈의 푸른빛에 잠긴 채 겹겹이 포개진 산줄기에 닿는다. 그러나 그림이 이처럼 넋을 잃은 듯 고요하고, 이 소나무가 이 양치기의 머리 위로 한숨을 나뭇잎처럼 흔들어 떨어뜨린다 해도, 양치기의 눈길이 그의 앞을 흐르는 마법의 개울에 머물러 있지 않다면 모든 것이 헛되리라. 6월에 대초원에 가 보라. 수십 마일, 또 수십 마일을 참나리 사이로 무릎까지 빠지며 헤치고 걷게 될 텐데, 거기에 없는 매력 하나는 무엇인가? 물이다. 거기에는 물이 한 방울도 없다! 나이아가라가 모래 폭포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대는 그것을 보려고 천 마일을 여행하겠는가? 테네시의 가난한 시인은 느닷없이 은화를 두 줌 손에 쥐게 되자, 몹시 아쉽던 외투를 한 벌 살지 아니면 그 돈을 들여 로커웨이 해변까지 걸어서 다녀올지 왜 망설였을까? 몸이 튼튼하고 건강하며 그 안에 튼튼하고 건강한 영혼을 지닌 소년이라면 거의 누구나 언젠가 한 번은 바다로 나가고 싶어 안달하는데, 왜 그럴까? 그대도 처음 승객으로 배를 탔을 때 이제 그대와 그대의 배가 뭍이 보이지 않는 곳에 나왔다는 말을 처음 듣고는, 왜 그토록 신비로운 떨림을 느꼈는가? 옛 페르시아 사람들은 왜 바다를 신성하게 여겼는가? 그리스 사람들은 왜 바다에 따로 신을 두고, 그 신을 제우스의 친형제로 삼았는가? 이 모든 것에 틀림없이 뜻이 있다. 나르키소스 이야기에는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있다. 그는 샘물에 비친 애타게 하는 부드러운 모습을 붙잡을 수 없자 그 속으로 뛰어들어 빠져 죽었다. 그런데 바로 그 모습을 우리도 모든 강과 바다에서 본다. 그것은 붙잡을 수 없는 삶의 환영이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것을 푸는 열쇠다.

그런데 내가 눈앞이 흐릿해지기 시작하고 폐가 지나치게 의식되기 시작할 때마다 바다로 나가는 버릇이 있다고 해서, 승객으로 바다에 나간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말기를. 승객으로 가려면 지갑이 있어야 하는데, 지갑이란 안에 무언가 들어 있지 않으면 걸레 조각일 뿐이다. 게다가 승객들은 뱃멀미를 하고, 걸핏하면 다투고, 밤에 잠을 못 자고, 대체로 그다지 즐겁게 지내지 못한다. 그러니 나는 승객으로는 절대 가지 않는다. 또 내가 바다 물을 꽤 먹어 본 사람이긴 해도 함대 사령관이나 선장이나 요리사로 바다에 나가는 일도 결코 없다. 그런 직책에 따르는 영광과 명예는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넘겨준다. 나로 말하자면, 명예롭고 남부끄럽지 않은 온갖 수고와 시련과 고난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질색이다. 배며 바크선이며 브리그선이며 스쿠너선이며 그 밖의 무엇이든 돌보지 않고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다. 요리사로 가는 일로 말하자면, 요리사는 배에서 일종의 간부이니 거기에 상당한 영광이 따른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어쩐지 나는 닭을 굽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일단 구워서 버터를 알맞게 바르고 소금과 후추를 신중하게 뿌린 구운 닭이라면, 그 닭을 나보다 더 정중하게, 아니 경건하게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옛 이집트 사람들이 구운 따오기와 구운 하마를 우상처럼 떠받들었기에, 오늘날 그 거대한 빵 굽는 집인 피라미드 속에서 그 짐승들의 미라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바다로 나갈 때면 평범한 선원으로 간다. 돛대 바로 앞, 앞갑판 선원실 바닥까지 곧장 내려갔다가 맨 꼭대기 돛대 끝까지 올라가는 선원으로. 물론 사람들은 나를 이리저리 부려 먹고, 5월 풀밭의 메뚜기처럼 이 활대에서 저 활대로 뛰어다니게 만든다. 처음에는 이런 일이 꽤나 불쾌하다. 명예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이 땅에 오래 뿌리내린 가문, 이를테면 밴렌슬리어 가나 랜돌프 가나 하디카누트 가 출신이라면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타르 통에 손을 넣기 바로 전까지 시골 학교 교사로 거드름을 피우며 키 큰 사내아이들까지 쩔쩔매게 만들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장담하건대 학교 교사에서 선원으로 넘어가는 일은 몹시 쓰라리며, 그것을 웃으며 견디려면 세네카와 스토아 철학자들을 진하게 달인 약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어떤 고약한 늙은 선장이 나더러 빗자루를 들고 갑판을 쓸라고 한들 그게 어떻단 말인가? 그런 모욕이, 그러니까 신약 성경의 저울에 달아 본다면, 얼마나 되겠는가? 그 경우에 내가 그 고약한 늙은이의 말을 즉시 공손하게 따른다고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를 조금이라도 덜 대단하게 여길 것 같은가? 노예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 말해 보라. 그렇다면 늙은 선장들이 나를 아무리 부려 먹든, 나를 아무리 치고 쥐어박든, 나는 그것이 다 괜찮다는 것을 알기에 흡족하다. 다른 사람도 모두 이렇게든 저렇게든 거의 같은 대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육체의 관점에서든 형이상학의 관점에서든. 그렇게 보편의 주먹질은 돌고 돌며, 모든 사람은 서로의 어깨뼈를 문질러 주고 만족해야 한다.

또 나는 늘 선원으로 바다에 나간다. 선원에게는 수고한 대가를 꼬박꼬박 치러 주지만, 승객에게는 내가 듣기로 한 푼도 치러 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승객은 스스로 돈을 내야 한다. 그리고 돈을 내는 것과 돈을 받는 것 사이에는 천지 차이가 있다. 돈을 내는 일은 아마 과수원의 두 도둑이 우리에게 물려준 고통 가운데 가장 불편한 것일 터이다. 그러나 돈을 받는 일, 그것에 무엇을 견주겠는가? 우리가 돈을 이 세상 모든 악의 뿌리라고 그토록 진지하게 믿고, 돈 많은 사람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믿는 것을 생각하면, 사람이 돈을 받을 때 보이는 그 공손하고 날렵한 몸놀림은 참으로 놀랍다. 아! 우리는 얼마나 기꺼이 스스로를 지옥에 넘기는가!

끝으로, 나는 늘 선원으로 바다에 나간다. 앞갑판에서 몸에 좋은 운동을 하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는 뒤에서 부는 바람보다 맞바람이 훨씬 잦으니(그러니까 피타고라스의 격언을 결코 어기지 않는다면), 뒷갑판의 함대 사령관은 대개 앞갑판의 선원들을 한 번 거친 공기를 마시게 된다. 사령관은 자기가 그 공기를 맨 먼저 들이마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와 거의 마찬가지로 다른 많은 일에서도 평민이 지도자를 이끄는데, 지도자는 그런 줄을 꿈에도 모른다. 그런데 상선 선원으로 여러 차례 바다 냄새를 맡아 본 내가 왜 이번에는 포경 항해를 떠날 마음을 먹었는지, 그 물음에는 운명의 여신들이 보낸 보이지 않는 경관이 누구보다 잘 대답할 수 있다. 그는 늘 나를 감시하며 몰래 뒤를 밟고, 영문 모를 힘으로 나를 움직인다. 그리고 내가 이번 포경 항해를 떠난 것은 틀림없이 오래전에 짜 둔 섭리의 거대한 공연 계획표의 한 대목이었다. 그것은 더 큰 공연들 사이에 끼워 넣은 짤막한 막간극이자 독주쯤이었다. 그 공연 안내문의 이 부분은 아마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미합중국 대통령 선거, 대접전." "이슈메일이라는 자의 포경 항해."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투."

다른 사람들은 고상한 비극의 장엄한 역이나 점잖은 희극의 짧고 쉬운 역이나 소극(笑劇)의 유쾌한 역을 맡았는데, 왜 하필 무대 감독인 운명의 여신들이 나에게는 포경 항해라는 이 초라한 역을 맡겼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정확히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때의 사정을 모두 떠올려 보면, 갖가지 가면을 쓰고 교묘하게 나타나 내가 맡은 역을 하도록 이끈 원동력과 동기를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그것들은 그 선택이 편견 없는 내 자유 의지와 분별 있는 판단에서 나왔다는 착각까지 내게 슬그머니 심어 주었다.

그 동기 가운데 으뜸은 거대한 고래 그 자체라는 압도적인 생각이었다. 그토록 불길하고 신비로운 괴물이 내 호기심을 송두리째 일깨웠다. 다음으로는 그 고래가 섬 같은 덩치를 뒤척이는 거칠고 머나먼 바다, 고래가 불러오는 피할 수 없고 이름 없는 위험, 이런 것들이 파타고니아의 수많은 경이로운 광경과 소리와 어우러져 내 소망 쪽으로 나를 기울게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아마 이런 것들에 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 말하자면, 먼 것을 향한 끝없는 근질거림에 늘 시달린다. 나는 금지된 바다를 항해하고 야만의 해안에 내리기를 좋아한다. 좋은 것을 모른 체하지는 않지만 끔찍한 것을 재빨리 알아보고, 그래도 그것과 사귈 수 있다. 저쪽에서 허락만 한다면. 묵고 있는 곳의 식구들과 모두 사이좋게 지내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런 까닭으로 포경 항해는 반가웠다. 경이로운 세계의 거대한 수문이 활짝 열렸고, 나를 그 목적으로 기울게 한 거친 공상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고래의 행렬이 둘씩 둘씩 내 영혼 가장 깊은 곳으로 떠 들어왔다. 그리고 그 모든 행렬 한가운데에, 하늘에 걸린 눈 덮인 언덕 같은, 두건을 쓴 거대한 환영 하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