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장 괴물 같은 고래 그림에 대하여
머지않아 나는 캔버스 없이 그릴 수 있는 한에서, 고래가 제 온몸 그대로 포경선 옆에 매여 있어 그 위에 제대로 올라설 수 있을 때 포경선원의 눈에 실제로 보이는 고래의 참모습 비슷한 것을 그대에게 그려 보이겠다. 그러므로 그에 앞서, 오늘날까지도 뭍사람의 믿음을 자신만만하게 요구하는 저 기묘한 상상의 고래 초상들을 짚어 두는 것도 보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고래 그림들이 모두 틀렸음을 증명하여 이 일에서 세상을 바로잡을 때가 되었다.
그 모든 그림의 미망은 아마 가장 오래된 힌두와 이집트와 그리스의 조각들 사이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창의적이지만 거리낌 없던 저 시대, 신전의 대리석 판벽과 조각상 받침대와 방패와 메달과 잔과 주화 위에 돌고래를 살라딘의 것 같은 사슬 갑옷 비늘을 입히고 성 게오르기우스의 것 같은 투구 쓴 머리를 붙여 그리던 그때부터, 그때부터 줄곧 고래를 그린 대부분의 대중적인 그림뿐 아니라 고래를 학술적으로 나타낸 많은 그림에서도 같은 종류의 제멋대로 하는 버릇이 얼마쯤 퍼져 있다.
그런데 어떻게 보아도, 어쨌든 고래를 그렸다고 하는 초상 가운데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인도의 이름난 엘레판타 동굴 사원에서 찾을 수 있다. 브라만들은 그 아득한 옛 사원의 거의 끝없는 조각들 속에 인간의 모든 직업과 일,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생업이 그 어느 것도 실제로 생겨나기 여러 시대 전에 미리 새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우리의 고귀한 포경업이 어떤 모양으로든 거기 미리 그려져 있었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힌두 고래는 벽의 따로 떨어진 한 구획에 나오는데, 학자들이 마츠야 아바타르라고 부르는, 리워야단의 모습을 한 비슈누의 화신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이 조각은 반은 사람이고 반은 고래여서 고래의 꼬리만 보여 주는데도, 그 작은 부분이 온통 틀렸다. 그것은 참된 고래의 장엄한 꼬리지느러미의 넓은 손바닥보다는 가늘어지는 아나콘다의 꼬리를 더 닮았다.
그러나 옛 화랑에 가서 이제 위대한 기독교 화가가 그린 이 물고기의 초상을 보라. 그도 대홍수 이전의 힌두인보다 조금도 낫지 않으니까. 귀도가 그린, 페르세우스가 바다 괴물, 곧 고래에게서 안드로메다를 구하는 그림이다. 귀도는 그런 기묘한 생물의 본을 어디서 얻었을까? 호가스도 같은 장면을 그린 자신의 「내려오는 페르세우스」에서 조금도 더 낫게 해내지 못했다. 저 호가스풍 괴물의 거대한 비만한 몸은 수면 위에서 물결치며 물에 1인치도 거의 잠기지 않는다. 등에는 일종의 코끼리 가마 같은 것을 얹고 있고, 물결이 굴러 들어가는 엄니 돋은 벌린 입은 템스강에서 물길로 런던탑에 이르는 반역자의 문으로 여길 만하다. 그다음에는 스코틀랜드의 옛 시볼드가 「서설」에 그린 고래들과, 옛 성경의 판화와 옛 초급 교본의 목판화에 그려진 요나의 고래가 있다. 이것들에 대해서는 무어라 해야 할까? 내려가는 닻의 자루에 포도 덩굴처럼 감긴 제본공의 고래로 말하자면, 낡은 책이든 새 책이든 많은 책의 등과 속표지에 찍히고 금박을 입힌 그것은 아주 그림 같지만 순전히 꾸며 낸 생물이다. 내 생각에는 옛 항아리에 그려진 비슷한 형상을 흉내 낸 것이다. 흔히 돌고래라고 불리지만 그래도 나는 이 제본공의 물고기를 고래를 그리려는 시도라고 부른다. 그 도안이 처음 나왔을 때 그런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15세기 무렵 학문 부흥기에 이탈리아의 옛 출판업자가 처음 썼다. 그리고 그 시절, 그리고 비교적 늦은 때까지도 사람들은 흔히 돌고래를 리워야단의 한 종으로 여겼다.
어떤 옛 책의 장식 컷과 그 밖의 꾸밈에서는 이따금 고래를 아주 기묘하게 그린 솜씨를 만날 것이다. 거기서는 온갖 물줄기, 분수, 뜨거운 샘과 찬 샘, 새러토가와 바덴바덴이 고래의 마르지 않는 머릿골에서 보글보글 솟아오른다. 「학문의 진보」 초판 속표지에서도 기묘한 고래 몇 마리를 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비전문적인 시도는 그만두고, 아는 사람들이 그렸다는, 착실하고 학술적인 묘사라는 리워야단 그림들을 훑어보자. 옛 해리스의 항해기 모음집에는 서기 1671년에 나온 네덜란드 항해기에서 뽑은 고래 판화가 몇 장 있다. 그 항해기의 제목은 「고래 속의 요나스호를 타고 떠난 스피츠베르겐 포경 항해, 선장 프리슬란트의 페테르 페테르손」이다. 그 판화 가운데 하나에서는 고래들이 거대한 통나무 뗏목처럼 얼음섬 사이에 누워 있고, 그 살아 있는 등 위로 흰곰들이 달려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다른 판화에서는 고래의 꼬리지느러미를 수직으로 그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그다음에는 영국 해군의 함장인 콜넷 선장이라는 사람이 쓴, 「경랍고래 포경업을 넓히기 위해 혼곶을 돌아 남해로 간 항해」라는 위풍당당한 사절판 책이 있다. 이 책에는 「피세테르, 곧 경랍고래 그림. 1793년 8월 멕시코 해안에서 잡아 갑판으로 끌어 올린 고래를 축척에 따라 그림」이라는 윤곽 그림이 실려 있다. 틀림없이 선장은 제 해병들을 위해 이 진실한 그림을 그리게 했으리라. 한 가지만 말하자면, 그 그림의 눈을 딸린 축척에 따라 다 자란 향유고래에게 대어 보면 그 고래의 눈은 길이 5피트쯤 되는 내닫이창이 될 것이다. 아, 나의 용감한 선장이여, 어째서 그 눈으로 내다보는 요나도 그려 주지 않았는가!
어리고 여린 이들을 위해 가장 양심적으로 엮은 박물지들도 같은 흉악한 잘못에서 자유롭지 않다. 저 인기 있는 책 「골드스미스의 생동하는 자연」을 보라. 1807년 런던 축약판에는 이른바 "고래"와 "일각고래"의 판화가 있다. 점잖지 못해 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이 볼품없는 고래는 다리를 잘라 낸 암퇘지와 무척 닮았다. 그리고 일각고래로 말하자면, 한 번 흘끗 보기만 해도 이 19세기에 그런 히포그리프가 지적인 학생 대중에게 진짜로 둔갑해 팔릴 수 있다는 데 누구든 놀라기에 충분하다.
그다음에는 1825년에 위대한 박물학자 라세페드 백작 베르나르 제르맹이 체계를 갖춘 학술적인 고래 책을 냈는데, 거기에는 리워야단의 여러 종을 그린 그림이 몇 장 실려 있다. 이 그림들은 모두 정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스티케투스, 곧 그린란드고래(말하자면 참고래)의 그림은 그 종에 관해 오래 경험을 쌓은 스코어즈비조차 자연에는 그와 맞는 것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이 모든 실수투성이 일에 마지막 볏단을 얹는 일은 이름난 남작의 아우인 학자 프레데리크 퀴비에에게 남겨져 있었다. 1836년 그는 「고래 박물지」를 냈는데, 거기에서 그가 향유고래 그림이라고 부르는 것을 내놓는다. 그 그림을 낸터킷 사람에게 보여 주기 전에, 낸터킷에서 재빨리 도망칠 채비부터 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마디로 프레데리크 퀴비에의 향유고래는 향유고래가 아니라 호박이다. 물론 그는 포경 항해를 해 볼 기회를 얻은 적이 없다(그런 사람들은 좀처럼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그 그림을 어디서 얻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같은 분야에서 그보다 앞선 학자 데마레가 제 믿을 만한 기형물 하나를 얻은 것처럼 얻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중국 그림에서. 그리고 그 중국 사람들이 붓을 든 얼마나 활기찬 녀석들인지는 많은 괴상한 찻잔과 받침 접시가 알려 준다.
기름 장수의 가게 위에 걸려 거리에서 보이는 간판장이의 고래들로 말하자면, 그것들에 대해서는 무어라 해야 할까? 그것들은 대개 낙타 같은 혹이 달린 리처드 3세 같은 고래이고, 아주 사납다. 뱃사람 파이 서너 개, 곧 선원을 가득 태운 포경 보트들을 아침으로 먹으며, 그 흉측한 몸뚱이가 피와 파란 물감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러나 고래를 그리는 이 숱한 실수가 따지고 보면 그리 놀랍지는 않다. 생각해 보라! 학술적인 그림 대부분은 바닷가에 올라앉은 고래를 보고 그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림은 등뼈가 부러진 난파선 그림이 선체와 돛대의 꺾이지 않은 온 위용을 지닌 그 고귀한 짐승, 곧 배 자체를 정확히 나타내는 만큼이나 정확하다. 코끼리들은 전신 초상을 위해 서 주었지만, 살아 있는 리워야단은 아직 한 번도 초상을 위해 제대로 떠 준 적이 없다. 온전한 위엄과 의미를 지닌 살아 있는 고래는 바닥 모를 바닷물 속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고 물에 뜬 그 거대한 몸뚱이는 진수한 전열함처럼 대부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원소 밖으로, 그 모든 힘찬 부풂과 굽이침을 그대로 지닌 채 고래를 통째로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것은 죽을 운명의 인간에게는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젖먹이 새끼 고래와 다 자란 플라톤적인 리워야단 사이에 윤곽의 차이가 크리라고 짐작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젖먹이 새끼 고래 하나를 배의 갑판에 끌어 올린 경우에도, 그때 그 생김새가 너무도 기괴하고 뱀장어 같고 흐늘흐늘하며 이리저리 바뀌어서, 그 정확한 표정은 악마 자신도 잡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바닷가에 올라앉은 고래의 앙상한 뼈대에서 그 참모습에 관한 정확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천만에. 이 리워야단에 관해 더 기묘한 점 가운데 하나는 그 뼈대가 전체 생김새에 관해 아주 조금밖에 알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러미 벤담의 뼈대는 그의 유언 집행인 가운데 한 사람의 서재에 촛대 삼아 걸려 있는데, 제러미의 다른 두드러진 개인적 특징들과 함께 이마가 우람한 공리주의자 노신사라는 인상을 정확히 전해 준다. 그러나 어떤 리워야단의 이어 맞춘 뼈에서도 이런 종류의 것은 아무것도 추론할 수 없다. 사실 위대한 헌터가 말하듯이, 고래의 단순한 뼈대와 온전히 옷 입고 속을 채운 고래의 관계는 곤충과 그것을 둥그렇게 감싼 번데기의 관계와 같다. 이 특이함은 머리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데, 이 책 어딘가에서 내친김에 보여 줄 것이다. 옆지느러미에서도 아주 기묘하게 드러난다. 그 뼈들은 엄지만 빼면 사람 손의 뼈와 거의 정확히 들어맞는다. 이 지느러미에는 집게손가락, 가운뎃손가락, 약손가락, 새끼손가락, 이렇게 반듯한 뼈 손가락이 네 개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사람 손가락이 인공 덮개 속에 들어 있듯이 살 덮개 속에 영원히 들어 있다. "고래가 때로는 우리를 아무리 무모하게 다룬다 해도," 하고 익살스러운 스터브가 어느 날 말했다. "놈이 정말로 장갑도 안 끼고 우리를 주무른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
그러니 이 모든 까닭으로, 어떻게 보든 그대는 거대한 리워야단이야말로 세상에서 끝까지 그려지지 않은 채 남을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생물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물론 어떤 초상은 다른 초상보다 과녁에 훨씬 가깝게 맞힐 수 있지만, 어느 것도 아주 상당한 정도로 정확하게 맞힐 수는 없다. 그러니 고래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알아낼 방법은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고래의 살아 있는 윤곽에 관해 그럭저럭 괜찮은 생각이라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대가 몸소 포경을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대는 고래에게 영원히 박살 나 가라앉을 위험을 적잖이 무릅쓰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보기에, 이 리워야단에 관한 호기심을 너무 까다롭게 따지지 않는 편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