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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제53장 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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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장 갬

에이해브가 우리가 말을 주고받은 포경선에 오르지 않은 겉으로 드러난 까닭은 이것이었다. 바람과 바다가 폭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해도, 그 뒤 비슷한 경우에 그가 한 행동으로 판단하건대, 소리쳐 묻는 과정에서 제가 던진 물음에 아니라는 대답을 얻었다면 그는 결국 그 배에 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드러났듯이, 그는 자기가 그토록 골똘히 찾는 정보를 얼마라도 내줄 수 있는 선장이 아니면 어떤 낯선 선장과도 단 5분이라도 어울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바다에서, 특히 같은 어장에서 포경선들이 서로 만날 때의 독특한 관습에 관해 여기서 무언가 말해 두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뉴욕주의 파인배런스를, 혹은 그만큼 황량한 영국의 솔즈베리 평원을 건너던 낯선 두 사람이 그렇게 사람을 반기지 않는 황야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이 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인사하기를, 잠시 멈춰 소식을 주고받기를, 그리고 어쩌면 잠시 함께 앉아 쉬기를 피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하물며 바다의 끝없는 파인배런스와 솔즈베리 평원 위에서, 외딴 패닝섬이나 멀리 떨어진 킹스밀 제도 앞바다 같은 땅끝에서 서로를 알아본 두 포경선이, 말하자면 그런 상황에서 이 배들이 소리쳐 인사를 주고받을 뿐 아니라 더욱 가깝고 더 다정하고 사교적으로 어울리는 것은 얼마나 더 자연스러운 일이겠는가. 그리고 특히 같은 항구에 선적을 둔 배들, 선장과 항해사들과 적지 않은 선원들이 서로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이고, 따라서 이야기할 온갖 정다운 집안일이 있는 배들의 경우라면 이것은 더욱 당연한 일로 보이리라.

오래 떠나 있던 배를 위해, 바깥으로 나가는 배는 어쩌면 편지를 싣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배는 상대 배의 흐릿하고 손때 묻은 철에 있는 마지막 신문보다 한두 해 뒤의 날짜가 찍힌 신문 몇 부는 틀림없이 넘겨줄 것이다. 그리고 그 친절의 보답으로 바깥으로 나가는 배는, 자기가 가게 될지도 모르는 어장에서 나온 가장 새로운 포경 소식을 받을 것이다. 그 배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이 모든 것은 어장 자체에서 서로의 항로를 가로지르는 포경선들에게도 들어맞는다. 둘 다 똑같이 고향을 오래 떠나 있다 해도 말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금은 멀리 떨어진 제삼의 배에게서 편지를 넘겨받았을지도 모르고, 그 편지 가운데 몇 통은 지금 만나는 배의 사람들에게 가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포경 소식을 주고받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들은 뱃사람끼리의 온갖 공감만이 아니라, 같은 일을 하고 궁핍과 위험을 함께 나누는 데서 생기는 온갖 남다른 마음의 통함도 함께 품고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가 다르다고 해서 아주 본질적인 차이가 생기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미국인과 영국인처럼 양쪽이 같은 말을 쓰는 한 그렇다. 물론 영국 포경선은 수가 적어서 그런 만남이 아주 자주 일어나지는 않고, 일어나더라도 둘 사이에 일종의 서먹함이 끼기 쉽다. 영국인이란 좀 말수가 적은 사람이고, 양키란 그런 태도를 저 말고 남이 보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국 포경선들은 이따금 미국 포경선들에게 일종의 수도 사람다운 우월감을 내보인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시골 말투를 쓰는 길쭉하고 깡마른 낸터킷 사람을 일종의 바다의 농사꾼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양키들이 하루 동안 모두 합쳐 죽이는 고래가 영국인 모두가 열 해 동안 합쳐 죽이는 고래보다 많은 것을 보면, 영국 포경선원들의 이 우월함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는 말하기 어려우리라. 그러나 이것은 영국 고래 사냥꾼들의 해롭지 않은 작은 약점이고, 낸터킷 사람은 그것을 그리 마음에 두지 않는다. 아마 자기에게도 약점이 몇 가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보듯이, 따로따로 바다를 항해하는 모든 배 가운데 포경선이야말로 사교적일 까닭이 가장 많고, 실제로 사교적이다. 반면에 대서양 한복판에서 서로의 항적을 가로지르는 어떤 상선들은 서로 알아보는 말 한마디 없이 지나쳐 가는 일이 잦다. 브로드웨이의 멋쟁이 한 쌍처럼 넓은 바다 위에서 서로 모른 체하며, 어쩌면 그동안 내내 서로의 삭구를 두고 까다롭게 흠을 잡으면서. 군함으로 말하자면, 바다에서 우연히 만나면 먼저 어리석은 절과 굽신거림을 줄줄이 늘어놓고 함기를 그렇게 내렸다 올렸다 하니, 거기에는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난 호의와 형제애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노예선끼리 만나는 경우로 말하자면, 그들은 엄청나게 서두르느라 되도록 빨리 서로에게서 달아나 버린다. 그리고 해적으로 말하자면, 우연히 서로의 엇갈린 뼈 깃발을 엇갈려 지나칠 때 첫 인사는 "해골이 몇 개요?"다. 포경선들이 "몇 배럴이오?" 하고 인사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물음에 한번 대답하고 나면 해적들은 곧장 키를 돌려 갈라선다. 양쪽 다 지옥의 악당들이라 서로의 악당 같은 닮은꼴을 지나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건하고 정직하고 뽐내지 않고 손님을 반기며 사교적이고 허물없는 포경선을 보라! 포경선이 그럭저럭 괜찮은 날씨에 다른 포경선을 만나면 무엇을 하는가? 갬을 한다. 다른 모든 배에게는 너무도 알려지지 않아서 그 이름조차 들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다 그 이름을 듣는다 해도 그들은 씩 웃기만 하고 "물 뿜는 놈들"이니 "지방 끓이는 놈들"이니 하는 장난스러운 소리와 그런 고운 외침을 되풀이할 뿐이다. 모든 상선 선원과 모든 해적과 군함 수병과 노예선 선원이 어째서 포경선을 그토록 경멸하는 감정을 품는지, 이것은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이를테면 해적의 경우, 나는 그들의 그 직업에 무슨 남다른 영광이 있는지 알고 싶다. 그 직업은 실로 이따금 보기 드물게 높이 올라가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교수대에서만 그렇다. 게다가 사람이 그런 묘한 모양으로 높이 올라가면, 그 높은 위치를 받쳐 줄 제대로 된 바탕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해적이 포경선원보다 자기가 높이 올라 있다고 뽐낼 때, 그 주장에는 딛고 설 단단한 바탕이 없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갬이란 무엇인가? 사전의 단을 위아래로 훑느라 집게손가락이 닳아 없어져도 그 낱말은 찾지 못하리라. 존슨 박사는 그런 학식에 이르지 못했다. 노아 웹스터의 방주에도 그 말은 실려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 표현력 있는 낱말은 이제 여러 해 동안 만 오천 명쯤 되는 토박이 양키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쓰여 왔다. 분명히 그 말에는 정의가 필요하고, 사전에 올려야 한다. 그런 뜻에서 내가 학자답게 그 말을 정의해 보겠다.

갬. 명사. 포경선 두 척(또는 그 이상)의 사교적인 만남. 대개 어장에서 이루어진다. 서로 소리쳐 인사를 주고받은 뒤 보트 선원들을 보내 서로 방문하며, 그동안 두 선장은 한 배에, 두 일등 항해사는 다른 배에 머문다.

갬에 관해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작은 항목이 하나 더 있다. 모든 직업에는 저마다 자잘한 특이점이 있다. 포경업도 그렇다. 해적선이나 군함이나 노예선에서는 선장이 제 보트를 타고 어디론가 저어 갈 때, 늘 고물 자리의 편안한, 때로는 방석까지 깐 자리에 앉고, 화려한 끈과 리본으로 꾸민, 모자 가게에서나 볼 법한 예쁘장한 키 손잡이로 몸소 키를 잡을 때가 많다. 그러나 포경 보트에는 고물에 앉을 자리도, 그런 소파 따위도, 키 손잡이도 전혀 없다. 포경선 선장들이 통풍 걸린 늙은 시의원처럼 특허 의자에 앉아 바퀴를 굴리며 물 위를 돌아다닌다면 실로 좋은 시절이겠다. 그리고 키 손잡이로 말하자면, 포경 보트는 결코 그런 나약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갬을 할 때는 보트 선원 전원이 배를 떠나야 하고, 따라서 보트 키잡이, 곧 작살잡이도 그 무리에 들므로 그 아랫사람이 그때의 키잡이가 되고, 선장은 앉을 자리가 없어 소나무처럼 꼿꼿이 선 채로 방문하러 저어 간다. 그리고 그대는 이 선 선장이 두 배의 뱃전에서 눈에 보이는 온 세상의 눈길이 제게 쏠려 있음을 의식하여, 제 다리를 지킴으로써 제 위엄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리 쉬운 일도 아니다. 그의 뒤에는 엄청나게 튀어나온 키잡이 노가 있어 이따금 그의 허리를 치고, 앞에서는 고물 쪽 노가 맞장구치듯 그의 무릎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앞뒤로 완전히 끼여 있어서, 다리를 벌리고 주저앉듯 버티는 것으로만 옆으로 몸을 넓힐 수 있다. 그러나 보트가 갑자기 세차게 앞뒤로 기울면 그는 자주 거의 넘어질 지경이 된다. 바탕은 길이가 있어도 그에 걸맞은 너비가 없으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장대 두 개를 벌어진 각으로 세워 보기만 해도 그것들을 세워 둘 수 없다. 게다가 세상의 눈길이 쏠린 뻔한 자리에서, 다리를 벌리고 선 이 선장이 손으로 무언가를 붙잡아 조금이라도 몸을 가누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안 될 일이다. 말하자면 결코 안 될 일이다. 실로 제가 완전히, 가뿐하게 자신을 다스리고 있다는 표시로 그는 대개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그러나 대개 아주 크고 무거운 손이므로, 어쩌면 바닥짐 삼아 거기 넣고 다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선장이 보기 드물게 결정적인 한두 순간, 이를테면 갑작스러운 돌풍 때, 가장 가까운 노잡이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죽을힘을 다해 매달린 것으로 알려진 경우가, 그것도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경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