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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장 에이해브 등장, 이어 스터브

며칠이 지나 얼음과 빙산을 모두 뒤로하자, 피쿼드호는 이제 눈부신 키토의 봄 속을 출렁이며 나아갔다. 바다에서는 그 봄이 열대의 영원한 8월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거의 늘 다스린다. 따스하면서도 서늘하고, 맑고, 낭랑하고, 향기롭고, 넘쳐흐르고, 차고 넘치는 나날은 장미수로 만든 눈을 수북이, 송이송이 쌓아 올린 페르시아 셔벗을 담은 수정 잔 같았다. 별이 총총하고 위엄 있는 밤들은 보석 박힌 벨벳을 입은 오만한 귀부인들 같았으니, 외로운 자존심을 품고 집에서, 정복하러 떠나 집에 없는 백작들, 곧 황금 투구를 쓴 해들의 기억을 보듬는 귀부인들이었다! 잠자는 사람에게는 그토록 매혹적인 낮과 그토록 유혹하는 밤 가운데 하나를 고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울 줄 모르는 그 날씨의 온갖 마법은 바깥 세계에만 새로운 주문과 힘을 빌려준 것이 아니었다. 그 마법은 안으로 영혼을 향해 돌아섰는데, 특히 저녁의 고요하고 온화한 시간이 다가오면 그랬고, 그러면 소리 없는 황혼에 맑은 얼음이 가장 잘 얼듯, 기억이 수정을 뻗어 냈다. 그리고 이 모든 미묘한 작용이 점점 더 에이해브의 바탕에 스며들었다.

늙음은 늘 잠이 없다. 삶과 오래 이어져 있을수록 죽음처럼 보이는 것과는 덜 엮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배의 지휘관들 가운데서도 수염이 하얗게 센 늙은이들이 밤의 망토를 두른 갑판으로 가려고 침상을 가장 자주 떠난다. 에이해브도 그랬다. 다만 요즘 들어 그는 바깥에서 사는 것 같았으므로,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는 선장실에서 갑판으로 나온다기보다 갑판에서 선장실로 다녀가는 셈이었다. "나 같은 늙은 선장이 무덤처럼 파인 침상으로 가려고 이 좁은 승강구를 내려가는 건," 그는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제 무덤 속으로 내려가는 기분이구나."

그래서 거의 스물네 시간마다, 밤 당직들이 정해지고 갑판의 무리가 아래 무리의 잠을 지키고, 앞갑판에서 밧줄을 끌어당겨야 할 때면 선원들이 낮처럼 거칠게 내던지지 않고 잠든 동료들을 깨울까 봐 조심조심 제자리에 내려놓을 때, 이런 한결같은 고요가 깔리기 시작할 때면, 말 없는 키잡이는 늘 선장실 승강구를 지켜보았다. 그러면 머지않아 노인이 불편한 걸음을 돕느라 쇠 난간을 움켜쥐고 나타났다. 그에게는 사람다운 배려 같은 것이 있었으니, 이런 때면 그는 대개 뒷갑판을 순찰하지 않았다. 그의 고래뼈 발꿈치에서 6인치도 안 되는 곳에서 휴식을 찾는 지친 항해사들에게, 그 뼈 다리 걸음이 쩡쩡 울리며 내는 소리와 소음은 그들이 상어의 으드득거리는 이빨 꿈을 꿀 만큼 요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은 그 기분이 너무 깊어서 흔한 배려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그가 통나무 같은 무거운 걸음으로 고물 난간에서 큰 돛대까지 배를 재고 있을 때, 고참 이등 항해사 스터브가 아래에서 올라와, 어딘가 자신 없고 양해를 구하는 듯한 익살을 섞어, 에이해브 선장이 갑판 위를 걷고 싶다면 아무도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소리를 죽일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말하면서, 삼 부스러기를 뭉친 공에 그 고래뼈 발꿈치를 끼우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를 흐릿하게, 머뭇거리며 내비쳤다. 아! 스터브, 그때 너는 에이해브를 몰랐구나.

"내가 대포알이냐, 스터브." 에이해브가 말했다. "나를 그렇게 솜뭉치로 틀어막겠다니? 그러나 네 길이나 가라. 내가 깜빡했구나. 네 밤의 무덤으로 내려가라. 너 같은 것들이 수의 사이에서 자면서 마침내 수의 하나를 채울 날에 몸을 길들이는 그곳으로. 내려가라, 개야, 개집으로!"

너무도 갑자기 경멸을 퍼붓는 노인의 뜻밖의 마지막 외침에 스터브는 흠칫 놀라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고는 흥분해서 말했다. "저는 그런 말을 듣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선장님. 그런 말은 반의반도 달갑지 않습니다, 선장님."

"그만!" 에이해브가 앙다문 이 사이로 내뱉고는, 무슨 격한 유혹이라도 피하려는 듯 거칠게 걸음을 옮겼다.

"아닙니다, 선장님. 아직 안 됩니다." 스터브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는 고분고분 개라고 불리지는 않겠습니다, 선장님."

"그럼 열 번 당나귀라고, 노새라고, 멍청한 나귀라고 불려라. 그리고 꺼져라, 안 그러면 세상에서 너를 치워 버리겠다!"

그렇게 말하며 에이해브가 위압적인 공포를 온 얼굴에 띠고 그에게 다가서자, 스터브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전에 이런 일을 당하고서 한 방 세게 먹이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스터브는 선장실 승강구를 내려가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중얼거렸다. "참 이상하네. 잠깐, 스터브. 어쩐지 지금, 돌아가서 그 사람을 한 대 칠지, 아니면, 그게 뭐였더라? 여기 무릎 꿇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그래, 내 속에서 올라온 생각이 그거였어. 하지만 그러면 내가 정말로 기도하는 건 처음이 되겠지. 이상해. 아주 이상해. 그리고 그 사람도 이상해. 그래, 이물부터 고물까지 따져 봐도, 그 사람은 스터브가 지금껏 같이 배를 탄 늙은이 가운데 제일 이상한 늙은이야. 나한테 어찌나 번쩍하던지! 눈이 꼭 화약 접시 같았어! 미친 걸까? 어쨌든 그 사람 마음에 무언가 있어. 갑판이 쩍 갈라질 때는 틀림없이 갑판 위에 무언가 있듯이 말이야. 게다가 그 사람은 스물네 시간 가운데 세 시간도 침상에 있지 않아. 그것도 자는 게 아니고. 급사 도우보이가 그러지 않았던가? 아침마다 가 보면 노인의 해먹 이부자리가 늘 온통 구겨지고 헝클어져 있고, 홑이불은 발치에 내려가 있고, 덮개는 거의 매듭이 지어지다시피 꼬여 있고, 베개는 구운 벽돌이라도 올려놓았던 것처럼 끔찍하게 뜨겁다고. 뜨거운 노인이로군! 뭍의 몇몇 사람들이 양심이라고 부르는 걸 가졌나 봐. 그건 무슨 틱돌리로우라는 병 같은 거라던데. 치통보다 더 지독하대. 뭐, 뭐,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주여, 나는 그걸 옮지 않게 해 주소서. 그 사람은 수수께끼투성이야. 도우보이가 짐작하기로는 밤마다 뒤쪽 선창으로 들어간다던데, 무엇 때문에 들어가는 걸까? 그게 무엇 때문인지 알고 싶네. 선창에서 누가 그 사람하고 만날 약속을 했나? 이제 보니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알 길이 없지. 늘 하던 수작이야. 자, 한숨 자러 가자. 제기랄, 그저 금세 곯아떨어지려고만 해도 세상에 태어날 만한 보람은 있다니까. 그러고 보니 갓난아기들이 맨 먼저 하는 일이 그거잖아. 그것도 좀 이상하네. 제기랄, 생각해 보면 모든 게 다 이상해. 하지만 그건 내 원칙에 어긋나지. 생각하지 말라, 이게 내 열한째 계명이고, 잘 수 있을 때 자라, 이게 내 열두째 계명이야. 자, 그러니 다시 자러 가자.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나한테 개라고 하지 않았나? 빌어먹을! 열 번 당나귀라고 하고, 그 위에 멍청한 나귀를 잔뜩 쌓아 올렸잖아! 차라리 나를 걷어차고 끝내는 편이 나았겠어. 어쩌면 정말로 나를 걷어찼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했는지도 몰라. 어쩐지 그 이마에 너무 질려서 그만 넋이 나갔으니까. 그 이마가 바랜 뼈처럼 번쩍했어. 도대체 나 왜 이러지? 다리로 똑바로 서 있지를 못하겠네. 그 노인하고 부딪치고 나니 어째 내가 뒤집혀 버린 것 같아. 맙소사, 그래도 꿈을 꾸었던 게 틀림없어.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하지만 유일한 길은 이걸 처박아 두는 거야. 그러니 다시 해먹으로 가자. 그리고 아침이 되면 이 망할 놈의 요술이 대낮에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떤지 봐야지."